말 무덤(言塚)과 말에 얽힌 이야기

발행일 2019-01-16 19:38:4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상섭객원 논설위원전 경북도립대교수

경북 예천의 한대마을 어귀에는 고분 형태의 대형무덤이 하나 있다. 말(馬)이 아닌 말(言)을 묻은 무덤 즉, 언총(言塚)이고 유래는 오래됐다.

4~5백년 전 이 마을에는 성씨가 다른 여러 문중이 모여 살았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문중 간의 싸움이 바람 잘 날 없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마을 어른들이 그 원인과 처방책을 찾던 중, 지나가던 과객이 일러 준 대로 말싸움의 발단이 되는 온갖 말들을 사발에 담아 무덤을 만든 후에야 마을이 평온해졌다는 이야기이다.

무덤 주변엔 ‘말은 적을수록 좋다. 말이 말을 만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과 관련된 격언들이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그간 말을 참 많이 하면서 살았다. ‘S’전자와 공기업, 국회와 대학에 있을 때도 맡은바 업무 특성상 말을 많이 해야만 했다. 이 가운데 6년간 지구당위원장을 맡았을 때가 피크였다. 눈만 뜨면 사람을 만나 밤늦도록 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할 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정치는 허업인데도 죽기 살기로 올인 했으니 참 어리석었다. 그러나 명분은 옳았기에 아프지만 후회는 없다.

학교로 되돌아와서도 그랬다. 강의는 그 흔한 PPT 한번 사용하지 않고 칠판에 제목만 적어 놓고 강의를 했다. 이해를 도우려고 오대양 육대주를 한 학기에 몇 번씩 오고 가면서 쉽게 설명한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쉬지 않고 100여 분씩 했으니 말이다.

옛말에 말 잘하면 변호사고, 말 많으면 약장수라고 했다. 말은 못 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분명 낫다. 그러나 말을 너무 잘하고 많이 하다 보면 왠지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

말로서 말을 합리화시키려고 기교를 부리며 우기는 말장난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 바꾸기나 ‘내로남불’도, 김태우와 신재민을 향해 여과 없이 쏟아내는 청와대와 여당의 인격 살인적인 언행도 그렇게 보인다.

요상한 게 말이다. 말은 처음에는 그냥 말이었다. 그러나 입에서 나와 상대방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큰일을 낸다.

말 한마디가 닫힌 남의 마음을 열게도, 기쁘게도 슬프게도, 사랑하게도 미워하게도 한다.

법정에 불려나온 용의자가 억울한 혐의를 벗는가 하면, 죄가 드러나 심판을 받기도 하고, 사기꾼의 말에 속아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 말에서 기인한다.

말이 갖는 위력은 내 운명의 결정권을 송두리째 맡기는 ‘선거’라는 행위에서 극에 달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말을 마구 쏟아낸다. 그 말에 속아 권력을 위임했더니 정책이란 미명하에 세금을 멋대로 쓰면서, 턱도 없는 자들을 엄청난 자리에 앉히니 정책은 실패하고, 혈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니 세금폭탄이 뒤따른다. 말로는 국민이 먼저라면서 하는 짓은 정반대다.

무능한 권력은 오만까지 더해져 모든 걸 거덜 내곤 추락해 소멸한다. 혹세무민에 역천자망이란 말이 있다.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믿은 것은 그의 말뿐이었기에 자승자박인 셈이다.

말은 사람에게 물과 공기와 같다. 어떤 사람을 평가하고 관계 지속 여부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성공과 실패도 그렇다. 혹자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백 마디보다 상대방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말 한마디를 남기며 살라”고 한다.

이처럼 말은 개인과 가정은 물론이고 국가의 흥망도 결정짓는 마력을 지녔기에 냉철히 잘 듣고 결정하고 책임도 져야 한다.

특히 ‘공짜공약’이다. 무심코 뱉어놓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이 없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거나 천 냥을 벌지는 못해도 천 냥을 빚지는 막말은 삼가야겠다. 이제 와 이 나이에 깨닫는다. 이상섭 객원 논설위원 전 경북도립대교수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