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

담요 한 장 속에 / 권영상

2017.05.10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 시선집『우리나라 대표동시 100선』(지경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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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처음부터 순연치 않은 관계로 설정되어 전개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시종 순탄치 않게 엉켜 있다가 막판에서야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영화 <사도>가 그렇듯이 비극적 파국으로 막을 내리는 부자관계도 있다.
해피엔딩의 경우일지라도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고 관계개선을 위해 애쓰는 쪽은 항상 아버지였으며, 아들은 원망과 분노를 쉬 내려놓지 못하다가 오랜 주저 뒤에야 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비록 아버지가 무능하고 가정을 잘 지켜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느 시기에 가서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이 생겨난다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내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세상을 한참 겪은 뒤 같은 남자로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품이 생겼기에 가능한 노릇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요즘의 젊은 ‘아빠’들과는 달리 우리가 통과한 시대에는 별 파란이 없는 평범한 아버지라 할지라도 소통이 쉽지 않았고 늘 어렵기만 했다.
내게도 아버지가 계셨으나 5분 이상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기억이 평생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 동시에서 그려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워 아무 말 없이 서로 꼼지락거리며 나누는 무언의 대화는 참 정겹고 따습다.
가난을 배경으로 암시한듯하지만 한밤중에 ‘내 발을 덮어주시는’ 아버지는 참으로 자애롭다.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에는 진득한 사랑이 배어있고, 아버지의 대수로울 것 없는 몸짓과 음성이 바로 사랑이란 것을 어린 아들도 가슴으로 듬뿍 느끼고 있다.
진정 순연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이렇게 출발해서 이어지면 오죽이나 좋을까만 현실은 자주 그러지 못하다.
문제는 각자의 세계로 관심이 기울면서 벌어지는 대화 단절이고 소통의 부재다.
오래전 통계청의 한 발표를 보자면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아버지와 자주 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생의 경우 대화를 자주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절반 남짓인데, 그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았다.
자식이 공부 잘하기를 바란다면 자식과의 대화에 신경 쓰고 대화 분위기를 먼저 조성하라는 조언이다.

성적뿐 아니라 순탄한 부자지간을 위해서 특히 아들과의 대화는 꼭 필요하다.
이처럼 담요 한 장을 덮고 함께 누워보는 설정도 나쁘지 않겠다.
내겐 참으로 야속하고 덤덤하기만 했던 그 아버지가 요즘 많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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