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행방불명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 / 고정희

무릇 너희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에서 나온 말씀으로 거듭나니라, 수수께끼를 주신 하느님, (중략) 하느님, 당신은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교회의 창고부터 열어야 합니다// 이 곤궁한 시대에/ 교회는 실로 너무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교회는 너무 많은 재물을 가졌고 너무 많은 거짓을 가졌고/ 너무 많은 보태기 십자가를 가졌고/ 너무 많은 권위와 너무 많은 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파당과 너무 많은 미움과/ 너무 많은 철조망과 벽을 가졌습니다/ 빼앗긴 백성들이 갖지 못한 것을 교회는 다 가졌습니다/ 잘못된 권력이 가진 것을 교회는 다 가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벙어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장님입니다(후략)

― 시집『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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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고정희 시인이 지리산에서 실족사한 지 1주기를 맞은 1992년, 유작을 정리해 출판한 시집에 수록되었지만 80년대 후반에 쓴 작품이다. 노태우 정권 때이고 미국은 아버지 부시의 집권기였다. 교회와 민중적 세계 인식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행방불명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이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유효하게 읽히는 까닭은 무얼까. 기독교뿐 아니라 지금 한국의 모든 종교가 총체적인 위기와 불신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들 종교들이 처한 위기와 불신의 내용을 알아채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나 노력이 필요치 않다. 최근 발간된 며칠 치의 신문, 인터넷 기사 몇 개, 방송된 프로그램 몇 건만 훑어보아도 한국 종교가 직면한 문제가 무언지 그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이렇게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들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일이 까발리기에도 벅찬 추문들은 오래전부터 만연해왔다. 어쩌면 ‘예배당에 갔더니 눈 감아라 해놓고 신발 오배 가더라’는 풍문이 나돌 때부터 뿌리 깊은 종교계의 적폐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종교인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신실하게 주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려는 참된 목동이 더 많으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성직자 개개인의 스캔들에서 나아가 종교 조직과 지도자의 권력 다툼에 이르기까지 한국 종교가 맞고 있는 위기는 총체적이다. 성직자들의 잇단 아름답지 못한 일탈 행위들로 인해 종교계가 멍들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심각한 현실이다.

성직자들에 의한 비리와 범죄들이 연일 보도됨에 따라 종교에 대한 사회적 공신력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 결과 3대 종교 공히 신자 증가율이 감소하거나 정체상태에 있다고 한다. 하느님을 실종케 하고 자본의 악령이라는 우상을 섬기면서 종교를 상품으로 타락시킨 교회를 시인은 예언자적 직관으로 고발한다. ‘이 시대의 아벨’에 비유되기도 하는 고정희 시인은 하느님의 백성을 저버리고 권력과 자본에 심취한 교회를 매섭게 질타하였다. ‘빼앗긴 백성들이 갖지 못한 것을’ ‘잘못된 권력이 가진 것을’ 교회는 다 가졌다고 목청을 높인다. 시인이 30년 전에 출소장을 보내며 기성 교회를 탄핵했건만 변한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마하트마 간디는 교회를 짓기 전에 먼저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보라고 했다. 그런 겸허한 경청이 있었더라면 오늘날의 교회와 성당과 사찰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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