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영어는 우리의 모국어가 아니다

“어린 시기 영어에 과잉 투자 아까워 사고·논리력 등 지적 발달 우선되면 언어능력 기본교육으로도 발전 가능 ”



대학시절 미국인과 1대1 회화수업을 한 적이 있다. 더듬더듬한 실력으로 대화하던 중 대구 캠프 워커 근처의 한 식당에 들르게 되었고, 몸빼이(고무줄 바지)를 입은 식당 아주머니의 엄청난 회화실력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공부하고 암기한 어려운 단어를 아주머니가 알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화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유창함 그 자체였고, 지금까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 장면이 각인되어 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공교육의 정상화와 선행학습에 따른 부작용을 막고자 초교 1,2학년 영어수업을 전면 금지하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수업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조기교육을 막는다고 해서 그 폐해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탁상공론일 뿐이다. 대학입시, 국가시험, 입사시험에 영어점수가 당락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공교육을 막으면 풍선효과로 사교육 시장이 반드시 꿈틀거릴 것이고, 이것은 오히려 더 심한 교육의 불균등을 발생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입사시험은 어쩔 수 없지만 우선 대학입시라도 영어의 점수비율을 줄이면 되는데,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의 글로벌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 진퇴양난의 어려운 문제같이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근대화 초기에 서구의 엄청난 문화적, 과학적 능력을 본 일본사람들은 아예 일본어를 없애고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주장을 하였고 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외국어를 익히는데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 전문가만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하고 이들이 번역한 서구의 지식을 전파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대신 정부기관 내에 ‘번역국’을 설치하여 서양 근대기술문명의 모든 결과물들과 순수학문 분야까지도 모조리 번역하여 영어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근대적 지식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본 국민은 근대화 시기부터 지금까지 선진기술과 정보에 더 넓고 깊이 개방되어 현재 경제뿐만 아니라 순수학문, 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며 노벨상의 강국이 되었다.

학문적으로 어릴수록 언어습득의 능력이 뛰어나고 5∼6세가 지나면 언어습득 능력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사춘기가 지나면 급격히 줄어든다고 한다. 그리고 언어는 학습보다는 주변의 조건과 자연스러운 사용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유지되고 강화된다. 외국에서 돌아와 시간이 흐르면 언어능력이 급속하게 줄어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가끔 외국인들이 방송에서 우리나라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뭔가 어둔해 보이고 한국인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한국인이 외국에서 영어로 말할 때 우리가 보기에는 잘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영어 사용자들은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국어교육을 희생해서 영어교육을 강화하여도 결국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에게는 영어의 활용에서 뒤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린 시기가 언어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모든 지적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다른 학습능력 발달도 같이 이루어지는 시기라는 점이다. 이 중요한 시기를 또 하나의 언어를 위해 지금같이 과잉으로 투자하는 것은 너무나 아깝다. 언어능력의 발달은 그 사람의 지식과 사고 능력의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지식과 논리력 등의 지적 발달이 우선 계발된다면 학습자는 더 높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국민이 제2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쓰면서 자국의 언어 정체성을 지켜내고, 선진국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은 이상주의에 매몰된 정책이다. 국어와 지적 발전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저급한 실용회화 능력 함양보다는 추후에 영어실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토대로서의 영어의 기본적인 교육을 분명하고 철저하게 하는 것이 국제화 시대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손창용부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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