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상황에 대한 각종 지표가 충격적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10년 이후 8년여 만의 최악이다. 청년 실업률은 10.5%로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이다. 급기야 경제부총리가 ‘충격적’이란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기업과 구직자가 동시에 직면하고 있는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귀를 의심할 뉴스를 접하고 충격을 금할 길이 없다.
검찰은 전국 6개 주요 은행의 채용비리에 대한 8개월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은행들은 특정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채용자격 조건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점수 조작을 일삼았다. 부행장의 자녀와 이름과 생년월일이 같은 응시자를 위해 논술점수를 조작해 필기전형에서 합격시켰다가 면접 과정에서 부행장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탈락시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임원인 아버지가 딸을 면접한 뒤 최고점수를 주고 합격시키는 기상천외한 일까지 있었다. 가히 채용 비리의 백화점이다. 민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이 이 정도라면 권력의 입김에 더 민감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기업의 채용은 어떨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 기록을 갈아 치우는 가운데 수많은 청년은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불안 속에 구직시장에서 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횡행하는 채용비리는 취업준비생은 물론 그 가족까지 좌절하게 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힘 있는 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회의 평등을 허물어뜨리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나.
해외사업 분야에 오랜 기간 몸담아왔고 대학에서 국제경영학을 강의했던 필자로서는 이즈음에서 우리 은행들의 국제경쟁력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왜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금융기업을 갖지도 못하고 금융시스템은 후진국 수준인가. 작금의 은행 채용비리를 보면서 이런 기대는 애초부터 일장춘몽이었던가 싶다.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