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긴급동의 “먹고 합시다”

발행일 2016-12-23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전 국민 정치에 매달려있는 형국 여유 없는 이는 먹고 사는 일 우선이제 결정은 헌법재판소에 맡기자 ”



오래 전인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 상을 당했을 때, 아버지를 여읜 슬픔에도 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지금 이 판국에 밥이 넘어 가느냐고 누군가가 추궁했다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넘어간다. 먹어야 하잖아.” 그것이 현실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사실 배도 고프니까. 슬프다고, 그렇다고 굶으란 말이냐.세월호가 새파란 목숨들을 수장시키던 날, 구조 현장을 찾은 당시 교육부장관이 진도실내체육관 내 의전용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진도체육관은 세월호에서 구조된 사람뿐 아니라 자식의 생환을 기다리던 유족들도 체육관 바닥에서 휴식을 취하며 자원봉사자들이 끓여준 국밥으로 허기를 달랬던 곳이다. 생뚱맞게 라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떤 상황에서건 산 사람은 때가 되면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출은 1조 달러를 돌파하지 못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한 가지 더 늘어났다. 기업들의 경영이 나빠질수록 가정 살림살이도 어려워질 것이다. 나라 살림살이가 어려워질수록 가계는 허리를 조여야 하고 식탁 반찬 수를 줄여야 할 형편이다. 시내버스 요금도 오른다. 그런데 100만 원도 못되는 돈으로 한 달을 사는 가계가 전체 가구의 13%라고 한다. 7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거다. 각종 통계 수치보다 실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훨씬 심각하다.

나라 형편도 그렇다. 미국은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게 된다. 우리의 최대 우방이자 우리 안보와 직접 연결돼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고 세계가 떠들썩한데 우리는 정상회담조차 준비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배가 기울면서 생사가 엇갈리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중에도 연회장 악단의 연주는 계속되고 있었다. 영화여서 저럴 것이라고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무서운 직업의식에서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 인생이 영화 속이나 다를 것이 없고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역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에서 농부는 내년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수확이 끝났으면 과실나무에는 감사 거름을 주고 가지를 치고 새해에 대비하는 것이다. 농부만 그런가. 불이 나 상가가 몽땅 타버린 대구 서문시장 4지구 상인들은 불 난 현장에서 건져 낸 물건들을 길바닥에 펼쳐놓고 전을 폈다. 아직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복구에는 몇 년이 걸린다고 한다. 대체상가 문제부터 생계 터전이 해결 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전국이 두 달째 들끓고 있다. 전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한쪽에서는 탄핵 인용을, 다른 쪽에서는 탄핵 기각을 외치고 있다. 가족들과, 연인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기쁜 얼굴로 맞아야 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거리에서 구호로 맞게 될 국민들을 생각하니 씁쓸하다.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이건 반대하는 사람이건 모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을 갖고 있을 터.

정치가 제 자리를 잡지 못하니까 전 국민이 정치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을 옹호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 대리인의 탄핵 심판 답변서가 촛불을 다시 지필 것이라는 여론도 있지만 탄핵 당한 쪽의 입장으로서 그만한 주장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날마다 거리로 나가 자기주장만 외친다고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살아야 한다. 당장은 목구멍에 먹을 것을 넣어야 하고 또 그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그 결정은 이제 헌법재판소에 맡겨두자. 적어도 연말연시만큼은. 먹을 것을 많이 쌓아 둔 사람들이야 주말마다 집회에 나서도 좋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야 우선 먹고 사는 일이 우선 아니겠나 해서 하는 말이다. 긴급동의합니다. 먹고 합시다.

이경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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