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담배를 다시 피워야 하나

발행일 2017-03-09 20:13:5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담배 권할지해원과 승복의 연기가 되길 바란다”



갑자기 버스가 다니던 노선을 바꿨다. 길이 막힌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라는 시위대가 중앙로를 점용한 채 행진을 하고 있었다. 갈 길이 바쁜데, 친구들이 기다릴 텐데, 왜 시위를 해서 길을 막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지 부아가 치밀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토요일인 그날 낮에는 탄핵을 기각하라는 반대 시위대가 또 이곳을 막았다고 했다. 오래전에 끊은 담배라도 한 대 태웠으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다.

“정부의 적극적인 금연 정책에 결국은 나도 버텨낼 수가 없었다.” 친구의 항복 선언이었다. 그러니까 지난겨울, 친구는 아내와 함께 열차여행을 갔다고 그랬다. 6시에 출발하는 동해행 열차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잠을 설쳐가며 택시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에 도착해서도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동안 한 가치도 피우지 못한 담뱃갑을 만져봤지만 피울 곳이 마땅찮았다. 열차가 쉴 때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주위 모두가 감시의 눈초리 같아 담배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영주를 지나 동해까지 도착하니 낮 12시가 훌쩍 넘었더라고 했다. 7시간 이상을 단 한 모금의 담배도 피울 수 없었으니 그동안 인고의 성과는 순전히 자기 의지가 아닌 정부 정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동진역에서 찾아낸 끽연실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댕겼다. 깊이 한 모금 들이켜고는 바닷가를 향해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제야 비로소 여유를 챙기고 주위를 돌아보니, 아뿔싸, 이곳은 내가 올 곳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녀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야 이미 익숙한 풍경이지만 며느리 같고 딸 같은 젊은 여성들이 꽁초에 빨간 루주를 묻혀가며 담배를 빨아 당기는 모습에 눈 둘 곳을 몰랐다. 그들과 함께 담배를 피울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는 거다. 몇 시간을 참았는데, 앞으로도 안 피우면 될 것 같은 자신도 생기더란다. 그 순간부터, 나는 왜 못 끊나 하면서 담배를 끊었다고 털어놨다. 친구는 담배를 끊은 이유를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사회적 금연 열풍 탓으로 돌렸지만 내게는 아이들과 같이는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는 유치한 투정쯤으로 들렸다.

우리가 처음 담배를 배웠을 때는 담배가 사회생활의 한 과정이었다. 담배는 어른들만 피우는 것이었다. 처음 담배를 피울 때도 그래서였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담배를 피웠다. 담배가 건강을 해치는 마약 같은 악마의 유혹이었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담배가 주는 많은 것들에 비하면 시시한 것들이었다.

손님을 만나면 담배를 권하는 것이 첫 인사였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담배 얻어 피우는 것은 허물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급자에게는 담배를 달라고 해도 안 되고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었다. 맞담배질하는 것은 맞먹는 것이었고 그래서 직장에서도 상급자 앞에서는 담배를 돌아서서 피워야 했다.

속이 상하거나 화가 날 때 열을 식혀주고 자기 최면을 거는 신경안정제는 담배가 주는 덤이었다. 지금처럼 버스가 길이 막혀 장기 정차하고 있었다면 버스 안 승객들이 일제히 담배를 뽑아 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담배가 항의와 분노의 표시라는 면에서 친구의 금연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걱정한다며 요란한 금연 캠페인을 벌이고 혐오스런 금연 광고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담뱃값을 올려 세수를 메우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흡연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오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담배를 권할지, 그들이 피우는 담배가 답답함을 풀어 줄 해원과 승복의 연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주말마다 대구를 비롯한 전국 도심에서 벌여왔던 탄핵 찬반집회도 이젠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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