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이젠 친박계가 답할 차례다

발행일 2017-10-19 19:48:3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팔아 국회의원 되었노라 선언하고의원직 내놓고 국민심판 받아야 ”



피고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드디어 말문을 텄다. 구속돼 재판이 시작되고 6개월 동안, 아니 그 이전 탄핵될 때부터 국민들이 답답해하며 기다리던 그의 입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늦었다고. 그러나 지금이라도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그러니 이젠 소위 친박들이 답할 차례다. 지금이야말로 무언가 보여 주어야 할 때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80차 공판에서 정치보복을 주장하며 사실상 재판을 거부했다. 재판부에 대한 불신감을 표시하고 앞으로의 재판은 재판부에 맡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구속 연장에 반발한 이번 폭탄 발언은 재판부는 물론 정부ㆍ여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헌법유린이라는 죄명에 당치않다는 비난이야 감수해야겠지만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새로운 하나의 신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 지금의 상황에까지 몰고 오기에는 몇 차례 반전의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놓쳤다고 정치평론가들은 분석한다. 지난해 국회에서 탄핵 결의할 때나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 때, 또는 특검 수사 과정이나 구속영장이 신청됐을 때 말이다. 그런 과정을 앞두고 대통령직을 던졌더라면, 그리고 지금처럼 “내 탓이니 정치적으로 내게 모든 책임을 지워라. 그리고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재판정에서 수하 부하나 민간인들과 나란히 피고인석에 서서 “이름은?” “박근혜입니다.” “직업은?” “전직 대통령입니다.” 이런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는 고사하고 자연인으로서 인격마저 매장당하고도 지금까지 재판정에 출석한 것이 죄 없기를 바라서였다면 참으로 안타깝고 비참하기까지 하다. 모든 걸 잃어버린 박 전 대통령에게 지금 죄가 문제냐.

이런 판에 박 전 대통령의 이번 법정 반발은 본인은 물론, 국정농단으로 재판받고 있는 피고인들을 비롯해서 지리멸렬해진 이 땅의 보수에게도 새로운 변곡점으로 삼을 만하다. 지금까지의 악수를 단번에 만회할 신의 한 수이기에는 시기나 내용 면에서 부족하지만. 특히 자유한국당의 소위 친박들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나 계백 장군이 무사로서 전장에서 죽었듯, 정치인으로서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박 전 대통령이 만들어 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면 탄핵되었을 때나 구속되었을 때 도끼를 메고 가서 바른말을 해야 했었다. 그러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행동해야 한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팔아 국회의원이 되었노라고 선언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의원직을 내놓고 지역민들에게 사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심판받아 당당히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친박이라 자처한다면 그런 결단을 보여야 한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말처럼 박 전 대통령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예쁘게 보여 국회의원 되었다면, 지금까지 국회의원 한 것으로도 감사해 할 일이지 않은가. 국회의원 연금 나오고 전직 국회의원으로 대우받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국민의 선택을 받아 새로 깨끗한 국회의원으로 탄생하면 되지 않느냐 말이다.

지금 배지 달고 국회 내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로 체면치레하는 것으로는 보수를 재건할 수 없다. 그건 동네 주먹들도 다 하는 짓이다. 적어도 전국구 주먹이라면 주먹을 내지를 때나 거둬들일 때를 알아야 한다. 자기들이 이야기하는 보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여론재판으로 만신창이가 됐고 촛불로 국민에게서 버림받아 헌재에서 탄핵됐으며 특검에 구속된 피고인 신세다. 지난 선거에서 친박을 자처했다면, 그래서 국회의원이 됐다면 지금 결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보수고 이전에 대한민국의 지도자라 할 것이다.

남의 말이라고 너무 쉽게 한다고? 아니다. 국회의원 아닌가. 선거 때는 국민의 공복이 되겠노라고, 심부름꾼이 되겠노라고, 민의를 따르겠노라고 했잖아. 내놓고 얘기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도장을 찍으려고 노력했다면 이젠 갚아야지. 그게 지도자다. 의리다. 그게 친박이고 보수다.이경우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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