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운전면허, 더 까다로워도 괜찮다

발행일 2017-11-23 20:39:2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면허 발급시 법규준수는 물론 예의·배려심도 함께 교육해야 총이나 칼만 흉기가 아니다”



15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10분이 채 지났을까.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곧바로 새 운전면허증을 건네줬다. 2027년까지 앞으로 10년 동안 유효한 1종보통 운전면허증이 산뜻한 사진이 코팅된 채로 내 손에 건네지기까지 대략 30분이면 충분했다.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면허증 갱신을 위해 도로교통안전공단을 찾아 적성검사서를 작성했다. ‘질병ㆍ신체에 관한 신고서’를 자신이 자가진단 하는 거다. 치매나 정신분열증, 조울증 등 정신병으로 치료받은 적이 있는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등으로 단속받은 사실이 있는지를 묻는다. 또 손가락이나 손ㆍ발의 기능 장애로 치료받은 적이 있는지도 검사자가 스스로 진단하는 것이다. 거짓 답변해도 그만이다. 시력 검사도 운전 가능한 0.8 이상인지 간단히 확인한다. 검사비용 5천 원이면 신체검사도 끝이다. 면허증 발급수수료 1만2천500원과 함께 제출하고 10분 여를 기다리자 새 운전면허증이 나왔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는 것이 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은 “사고가 나면 운전자 자신의 책임”이라는 뜻일 것이다.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 병력이 있거나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위험하니 알아서 운전면허를 내지 말라는 거다. 그러니 도로는 무법천지가 되고 자동차는 흉기가 될 수도 있으니 운전자 스스로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이 우리 운전면허제 같다.

지난달 창원 터널에서 기름 담은 드럼통을 싣고 가던 트럭이 사고를 내 운전자를 포함한 8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대형 교통사고가 났다. 자동차가 운행하다 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지만 이런 사고를 보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피해자들은 정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런 사고가 처음도 아니다.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이지만 사고를 분석해보면 어처구니없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76세였다. 아무리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반응 속도가 느린 노인임은 틀림없다. 2006년 화물차 운수업을 시작한 그는 지난 11년간 46번이나 교통사고를 냈다. 자신의 차를 회사에 등록하고 자신이 사업자였으니 회사에서 안전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최근 2년 동안 10건의 사고를 냈다니 그러고도 운전대를 잡고 위험물을 싣고 영업행위를 한 배포 또한 가관이다.

그의 낡은 5t 화물트럭에는 산업용 윤활유와 방청유가 7.8t이나 실려 있었다. 그것도 200ℓ짜리 22개와 20ℓ짜리 174개 등 196개의 드럼통으로 싣고 있었다. 과적인데다 제대로 묶지도 않아 사고가 나자 중앙선 너머 반대편 차선으로 화약 같은 기름통이 나뒹굴어 억울한 죽음을 만들었다. 사고 지점은 평소에도 다른 곳보다 사고가 자주 나는 곳이라니 도로 구조에는 문제가 없는지 세밀한 조사와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국가의 책임이다. 세금은 그런 곳에 쓰라고 내는 거 아닌가. 운전자의 안전 의식을 강조하고 사고 나면 운전자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사전에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필요하면 제어하고 규제해야 한다. 운전면허 발급과 갱신이 편리함만 추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것이 한 번 발급되면 10년씩이나 유효한데 너무 쉽게 발급해주는 것 아닌가? 10년 만에 한 번씩 갱신하는데 좀 까다로우면 어떤가?

장애인 주차구역을 지키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터널 내에서 차선 변경을 단속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안전운전에 대한 의식과 운전 에티켓이다. 아슬아슬 화물을 기우뚱 싣고 내달리는 짐차들. 어떻게 도로변에 다른 차의 운행을 방해하면서 버젓이 차를 주차할 수 있는가. 어떻게 다른 차를 위협해가면서 과속하고 길게 기다리고 있는데 새치기할 수 있는가. 어떻게 짐을 실은 트럭이 제대로 묶거나 덮지도 않고 흙먼지나 쓰레기를 도로 위로 휘날리며 내달릴 수 있는가. 운전면허를 발급할 때 도로운행에 대한 법규 준수는 물론 자동차 운행에 따른 예의와 배려심도 함께 교육해야 한다. 총이나 칼만 흉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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