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제물 없는 제단

발행일 2018-06-21 19:26:4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한국당, 선거 후 반성에도 신뢰 잃어 당 대표 사퇴 등 반복 진심 안 보여 지역 의원들 희생 각오한 책임 필요 ”



제단에는 제물이 필요하다. 깨끗해야 하고 귀한 것일수록 효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물 간 상한 제물을 올려놓고 복을 빌고 영험을 기대하는 것은 염치없다. 더구나 냉수도 없는 제단이라니. 그래서야 어느 귀신인들 감응하겠나.

6ㆍ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보수의 한국당이 국민으로부터 탄핵당했다며 무릎을 꿇고 반성한다고 그랬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구태보수를 청산하고 노욕에 쩔은 수구기득권, 자유한국당의 해체를 통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 눈은 그러나 “더 이상 속지 않는다”는 냉정함으로 돌아섰다. 몇 차례 써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논의하지만 또다시 말 뿐인 반성이라면 결과도 뻔할 것이라는 반응일 것이다.

제석천이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려고 일부러 시장기가 돈다고 했다. 저마다 도 통했다고 자신한 여우와 원숭이와 토끼는 모두 그동안 자신들이 수행한 그릇을 준비했다. 여우는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원숭이는 도토리를 따서 바쳤다. 그러나 토끼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진심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제석천 앞에 나선 토끼는 나뭇가지를 모아놓고 불을 지폈다. 그리고는 자신을 그 위에 던졌다. 자기 몸을 통째로 구워 제석천에게 올린 것이다. 감동한 제석천은 후대 사람들이 그 형상이라도 추앙할 수 있도록 토끼를 달에 옮겨 심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의 참패는 예견됐다. 이미 여러 차례 전조를 보여 줬으니 정치에도 하인리히 법칙이 통용되는 것일까. 한참 잘 나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은 20대 4ㆍ13총선에서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유승민 의원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려고 시작한 진박 논쟁은 선거 이후 지금까지 한국당의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한 초선 의원에게 “국회의원 한 번만 하겠다는 각오로 임하면 국민에게 욕은 먹지 않을 것”이라고 했더니 “국회의원은 당선되는 날부터 재선 운동하라고 충고하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누구도, 어떤 책임도, 희생도 없는, 말잔치로 끝난 한나라당의 반성은 촛불 민심을 거쳐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탄핵 이후 대국민 사과를 하고는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대통령선거에서 참패한다.

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패배한다. 대구와 경북에서 단체장을 당선시켰고 시장 군수 구청장을 배출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국적인 민주당의 바람 앞에 후보 역량과는 상관없이 격전지 아닌 곳이 없었을 지경이었다.

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홍준표 당 대표가 사퇴했다. 그러나 그의 사퇴는 한국당의 패배만큼이나 예고됐던 시나리오였고 제물로는 중량감에서나 선도에서 격이 떨어진다. 김무성 전 대표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이야기하고 대구의 정종섭 의원을 비롯한 초선 몇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이야기하지만 아직 국민의 마음을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홍 대표가 ‘마지막 막말’로 끝내 내치지 못해 후회된다고 했던 “비양심적이고 계파 이익을 우선하는 당내 일부 국회의원들”은 홍 대표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원외의 홍 전 대표에게 악역과 함께 선거 패배의 책임까지 맡겼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지역구 관리나 하면서 차기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당이 어려울 때면 더욱 입을 다물고 몸을 사렸다. 민심이 보수 쪽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회를 엿보며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차기 선거를 대비한 조직 관리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공천 파동도 증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역에서는 “이번 선거 후 친박 의원부터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구호만으로 보수의 심장이 살아나지 않는다. 한국당 의원으로 보수의 가치를 이야기한다면 내가 책임지고 희생하겠다는 지역 의원들의 각오가 필요하다. 제단은 깨끗한 제물을 요구한다. 여당 발목이나 잡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앉은뱅이 야당 노릇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이경우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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