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발행일 2017-05-31 20:21:2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선생님, 우리 딸한테 큰일이 났어요, 어쩌면 좋아요?”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얼마 전 우리 병원에서 눈 주름살 제거수술을 했던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수술했던 어머니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내심 다행이기는 했지만……. “아, 글쎄 우리 딸이 나 몰래 이마와 눈에 주사를 맞고 왔는데, 눈이 떠지지 않는다고 난리가 났어요”라고 하는 것이다.대학생이 된 딸이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부모 몰래 필러 시술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눈을 뜨지 못하게 되어 울고불고 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술을 한 병원을 어머니와 함께 찾아갔지만 병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원하는 대로 이마를 동그랗게 만들어주지 않았느냐? 우리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고 시간이 지나도록 기다려라”는 말을 듣고 낙담하고 있다고 한다. 아는 사이에 모른 체할 수는 없고, 일단 병원으로 찾아오라고 하고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다음날, 어머니와 딸이 함께 찾아왔다. 어머니의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있는 딸의 모습인데, 이마와 눈썹 사이가 많이 어색하게 보였다. 이마는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고 눈썹은 아래로 축 처져 내려와 있었다. 흔히 말하는 강남 스타일의 이마와 눈썹의 모양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눈이 잘 떠지지 않아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으니 하지 않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딸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필러전문 클리닉이라는 곳을 찾아가서 필러를 맞았다고 한다.

병원코디로부터 강남 스타일의 동그랗게 튀어나온 이마가 요즘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아무 부작용이 없이 금방 끝날 수 있으니 안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별다른 생각 없이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마가 동그랗게 튀어나온 것이 보기에 좋아서 마음에 들었는데, 시술 후 시간이 흐를수록 눈이 잘 떠지지 않는 것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부기는 그대로 남아있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작아진 눈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좋아질 수 있을까요?”“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아무튼 최선을 다해 봐야죠.” 환자를 통해 필러의 성분을 확인해 보니 분해가 어느 정도 가능한 필러였다. 그래서 필러가 가장 많이 들어간 부위 주변으로 작은 절개를 해서 필러를 최대한 제거하고 필러를 분해할 수 있는 주사제를 사용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두 차례 제거작업해서 대부분의 필러를 제거하고 나니, 눈썹을 짓누르고 있었던 필러는 대부분 없어졌고 눈썹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제는 눈썹을 올려주어야 할 차례다. 미간이나 이마에 사용하는 보톡스는 아래로 처져 내려가도록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위로 당겨져 올라가게 할 수도 있다. 이마와 눈썹을 아래로 당겨 내리는 근육을 세심하게 확인하고 눈썹이 다시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보톡스를 살짝 주사해주었다.

“일주일 정도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2∼3일쯤 지나고 나자 이마가 위로 당겨져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일주일째 되는 날, 마침내 예전처럼 눈이 잘 뜰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좋아졌습니다. 앞으로는 무엇이든 자신의 얼굴에 잘 어울리도록 적당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마가 꺼져 보인다고 동그랗게 튀어나오도록 해 달라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다. 이런 환자들의 이마를 보면 눈썹 위쪽의 뼈와 근육 조직이 두툼하게 튀어나와 있고 그 위쪽의 이마가 꺼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눈 처짐이 동반된 것을 예상하고 교정해 주어야 하는데, 꺼진 부위를 모두 필러나 지방이식으로 채워주었다가는 이처럼 고생을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이마 모양은 살짝 납작한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을 너무 많이 교정하려고 동그랗게 나오도록 하게 되면 눈썹이 아래로 눌려서 오히려 하지 않느니만 못한 인공적인 얼굴의 모습으로 돌변하게 된다. 과유불급. 지나침은 오히려 약간 모자람보다 더 못하다는 말이 생각나는 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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