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도 약에 쓰려니 없다’는 속담이 있다. 평소에는 흔하던 것이 막상 쓰려고 구하면 없다는 뜻이지만 굳이 숨은 뜻을 해석할 것도 없이, 문자 그대로 똥을 약에 쓰는 시대가 왔다. 물론 개똥은 아니고 건강한 사람의 대변 이야기이다. ‘씨디프(C.diff) 장염’이란 질병이 있다. 세균의 일종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Clostridium difficile) 감염으로 생기는 배앓이 병인데, 2002년 캐나다의 한 병원에서 집단으로 발병한 이후 북미와 유럽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배앓이 정도야 엄마 손으로 살살 문지르고 따뜻한 꿀물 한 번 마시면 나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에서는 정확한 통계가 있는 2011년에만도 약 45만3천 명이 이 병으로 고통받았으며, 그중 약 3만 명은 목숨을 잃었다. 또 매일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증상을 못 견뎌 자살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하니 절대 만만하게 볼 병은 아닌 듯하다. 물론, 병원에서 잘 치료를 받으면 낫는 병이긴 하지만, 약 20% 정도의 환자는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라서 항생제나 면역 요법 치료로도 낫지 않고 지속적인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약 10년 전부터 서구의 몇몇 별난 의사들이 난치성 씨디프증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해 치료에 성공한 이후로 최근에는 거의 90%에 가까운 치료율을 보인다고 한다. 심지어 2014년에는 MIT 공대의 교수와 대학원생이 함께 오픈바이옴(OpenBiome)이라는 대변 은행(은행이라 쓰지만, 사실은 벤처기업)을 설립해서 대변 이식을 원하는 사람에게 대변을 판매하기까지 하였다.
사실 대변으로 병을 치료하는 일은 꽤 오래전부터 발견된다. 사람은 약 30조 개 정도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 대략 30조에서 300조 정도 되는 미생물이 피부나 구강, 장기, 심지어 눈알에서까지 살아가며 사람과 공생하는 것이다. 이들을 인체미생물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필자를 포함한 일부 과격한 학자들은 이 미생물들을 사람을 구성하는 일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고문서의 기록에는 뼈가 부러지거나 멍이 들면 뒷간의 묽은 똥물을 마시거나, 탁주를 좀 섞어 똥술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러 문헌이나 구전설화 등에 이런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효과가 꽤 있었던 모양이다.
해외토픽에서나 듣곤 했던 대변 이식을 이제는 세브란스분변미생물이식센터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병원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의 장내미생물은 앞서 예를 든 씨디프증 이외에도 염증성대장염이나 과민성대장증후군 등의 장과 관련한 질병은 물론이고, 위장병, 간질환, 천식, 아토피, 대머리, 심지어 우울증과도 관계가 있으며, 대변 이식으로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장내미생물이 인간의 활동을 지배한다는 수많은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똥을 약으로 쓰기 위해 많은 의사와 한의사, 그리고 미생물학자가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필자도 최근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 해군사관학교 생도들과 해군 장병 중에서 자원한 사람들의 건강한 대변을 분석하여 젊고 건강한 한국인 장내미생물 표준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구가 성공해서 앞으로는 마치 혈액형을 판정하는 것처럼 누구나 대변을 분석해서 자신의 표준 건강 대변형을 알게 되고, 아침에 볼일을 보면 변기가 자동으로 대변을 분석해서, 건강한 대변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식단이나 식품미생물 처방으로 아침 식사를 차리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를 해 본다.신재호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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