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로 언덕 벤치

“세상을 끝낼때 한가지 장면을 가져간다면도시락 배달하며 땀에 젖어 환하게 웃던집사람의 얼굴을 주저없이 택하겠다”

2015.11.12

신재호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경북대 법대 건물과 백양로 사이 작은 언덕 숲에는 얼기설기한 기억이 존재한다.

그날 콘크리트 벤치가 있던 그 언덕에는 아주 작은 시냇물이 흘렀다.
아니, 냇물이란 말도 과장일 정도였을까? 물줄기는 흐르지 못하고 백양로 직전에서 흩어져 토양에 스며들고 있었다.
오히려 그 덕택에 떨어진 낙엽이 오후의 햇살에 젖어 반짝이는 떡갈나무 숲 전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 풍경을 벤치에서 나란히 바라보던 그 장소에 이르게 되면 시간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 체험적으로 알게 된다.
그 숲에서는 내 시간이 멈추어 있다.

같은 학년이었지만 누나 같은 느낌이 들던 그녀와 그 벤치에 앉았던 기억은 왜 잊히지 않는 것일까? 마치 슬라이드처럼 남아있는 시절, 그날의 숲 속, 냇물, 햇빛, 반짝이던 나뭇잎. 콘크리트 벤치에 앉아 그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던 단발머리 그녀의 옆얼굴, 그리고 발견한 어깨 단추가 떨어진 그녀의 니트. 그녀는 소년이 꿈꾸던 소녀가 아닌 현실의 동갑내기일 뿐이란 것을 깨달은 것은 어깨 장식이 부재한 니트를 입은 그녀를 발견했던 그 순간이었으리라.
선지원 후시험의 학력고사 날에는 집에서 터벅터벅 새벽을 걸어와서 법대 현관문 옆 교실에서 시커멓게 웅크려서 시험을 쳤다.

2교시 후에 주어진 30분의 시간에 그 숲에 나가니, 어떤 놈이 재주도 좋게 쇼트닝 깡통에 나뭇가지와 낙엽을 넣어 불을 지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수험생이었다.
같은 교실 앞줄이었는데 자기가 도대체 왜 여기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업어져 처 자던 놈이었다.
곁에서 불을 쬐며 담배를 꼬나물자 말을 걸어왔다.
자기는 이 시험 상관없이 어차피 붙을 거라고. ‘부조리 같은 놈’ 속으로 침을 뱉었다.
나중에 학과에 들어와 보니 과연 붙었다.
체육 특기자였다.

그놈과 선배들 눈치 보지 않고 막걸리를 먹고 담배를 피기 위해 늘 잠입했던 곳이 백양로 건너 풀숲의 장윤덕의사 순국 기념탑이었지만, 법대 아래 언덕으로는 가지 않았다.

졸업하면 미국에서 살자 싶어 영어를 배우러 어학당에 다니던 대학원 시절, 집사람과 주머니 얇은 데이트를 하던 백양로, 그 저녁에 초로의 캐나다인 영어강사 가이를 마주쳤다.
4인치짜리 흑백필름으로 백양나무의 푸름을 담는다고 했다.
흑백에 푸름을? 한참을 대화해나가는 나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집사람을 느끼며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집사람은 한 달에 30만원 벌이도 못되던 내가 돈을 들여 다니던 어학당을 마칠 때쯤이면, 굳이 그 땀 차는 대구의 여름에도 저녁 도시락을 싸와서 백양로 언덕 벤치에서 같이 나누곤 했다.

에어컨도 없던 신혼집에서 가스불을 올려 장만한 도시락을 들고, 첫째를 임신해 열이 많은 만삭의 몸에도 앞이마의 솜털까지 땀에 젖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긴 도로가를 걸어 올라오면, 시커멓고 무뚝뚝하고 ‘시근’ 없는 남편이 백양로 언덕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세상을 끝낼 때, 한 가지 장면을 품고 갈 수 있다면, 도시락 배달 온 그 새하얗고도 발갛게 땀에 젖어 빛나며 환하게 웃던 집사람의 얼굴을 주저 없이 택하겠다.

세월은 가고 땅은 남지만, 기억들은 사라진다.
기억들을 쓴 글조차 사라져서, 도대체 기억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르도록 사라지고 나면, 일어난 일이나 일어나지 않은 일을 구별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내가 내 삶을 스스로 굴리며 이 길이 바른 방향이라 믿고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 하루가 행복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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