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

“물건 하나 제대로 살 줄 몰랐던 숫기없던 10살 뺨 때리신 아버지 그가 가르치려 한 건 무엇이었을까 ”

2016.03.17

신재호
경북대 응용생명학부 교수


아버지에게서 딱 한 번 뺨을 맞은 일이 있다.

산격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혼자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2부제 학교의 오후반을 다니던 때였으니까 아마도 3학년 아니면 4학년 때의 일인 것 같다.

웬일인지 엄마가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어느 날, 한일합섬에 다니시던 아버지는 출근하시면서 누나와 같이 대도시장에 가서 새 신발을 한 켤레씩 사오라고 하셨다.

누나는 금방 자기가 신을 새 에나멜 구두를 골랐지만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워낙 숫기가 없어서 산교육이 필요하다는 선생님의 의견이 적힐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던 나였다.

신발가게 주인에게 운동화를 달라고 하고 마음에 드니 마니 결정을 하는 일이 내겐 너무나도 진땀이 나는 일이었다.

거의 기절하기 직전까지 가서야 누나의 도움으로 하얀 운동화 한 켤레를 겨우겨우 들고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처음 신어보니 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누나에게 큰 치수로 바꿔와 달라고 했지만 들은 체 만 체 하기에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저녁에 퇴근하신 아버지가 새 신을 신어보라고 하셨다.
억지로 발을 구겨 넣어 운동화 앞코에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올 정도였지만 끝까지 잘 맞는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내 누나가 “부끄러워서 바꾸러 못 가는 거예요”라고 이르고 말았고 그 순간 왼쪽 뺨이 화끈해지며 불꽃이 번쩍했다.

아버지에게 꿀밤 한 대도 맞아본 일이 없었기에 따귀를 맞았다는 것이 너무 놀라고 슬퍼서 어떻게 신발을 바꿔왔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다음날은 아버지가 일하러 가지 않고 나와 단둘이 88번 버스를 타고 앞산공원에 갔다.
아마도 솜사탕 하나쯤은 먹었으리라. 버스는 타는 일이 많지 않았을 때라 돌아오는 버스에서 하얗게 멀미가 나고 말았다.

몇 년? 아니 근 20년이 지나고 알게 되었지만 그 날은 엄마가 병원에서 자궁암 수술을 하시던 날이었다.

낮에는 풍국주정을 다니시기도 하고, 일이 없을 때는 수박이나 잡다한 채소를 팔기도 하셨고, 밤에는 가족들 빨래며 청소며 찬거리 마련이며 한 번도 쉬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엄마였다.

병원에서 같이 기다리다가 너무 긴 수술시간이 답답하고 초조해서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앞산을 가셨던 거다.
왜 앞산공원에 간 기억과 솜사탕을 먹은 기억, 차멀미한 기억은 있는데 엄마의 수술에 대한 기억은 까맣게 없을까? 아버지는 어쩌면 닥칠지 모르는 엄마의 부재를 준비하고 자식들에게도 미리 대비를 시키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수술은 잘 되어서 엄마는 아직 건강하시지만, 아버지는 훨씬 먼저 병석에 누우셨고 지금은 병원 침대 위에서 온종일 꼼짝도 못 하신다.
중증 치매에도 병문안을 들었다가 나올 때면 꼭 나더러 차멀미를 조심하라고 하신다.

어떻게 그 기억은 남아 있으신 걸까? 아버지란 그런 것일까? 물건 하나를 제대로 살 줄 모르던 10살의 내 뺨을 때리면서 아버지가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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