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That’s my Pleasure!

발행일 2017-01-27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그 나라의 생활양식 배우는 일 기분 좋은 말 ‘댓츠 마이 플레저’”

월마트에 다녀왔다. 당장 필요한 물건들을 한 군 데서 사기에 좋은 곳이다. 고급스러운 매장은 아니지만 부엌용품이나 욕실용품 등 살림에 필요한 물건 대부분을 살 수 있다. 동네의 식료품을 파는 알버슨 같은 매장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물건을 사려면 대형 창고형 매장에 갈 수밖에 없다. 그런 곳은 조립식 물품을 팔고 그래서 좀 싸기도 하다. 나는 책꽂이와 간이 옷장을 마련하기 위해 월마트에 갔는데, 고개를 꺾어야 위를 볼 수 있을 만큼 대형선반이 벽과 통로마다 놓여 있었다.

나는 책꽂이 재료가 있는 통로에 서서 선반에 붙여진 이름들을 훑기 시작했다. 길이별로 책꽂이를 만들 수 있는 나무판들이 상자에 묶여 있는데, 내가 찾는 나무판 묶음이 내 키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손은 닿았지만 무게가 있어서 잘못했다가는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백인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다. 청년들은 둘이 양쪽을 잡고 물건을 내려서 내 카트에 옮겨 실어 주었다. 나는 정말로 고마워서 인사를 했고 그들은 “댓츠 마이 플레저(That’s my Pleasure!)”라며 유쾌하게 손을 흔들고 떠났다.

어떤 언어에는 있고 어떤 언어에는 없는 표현들이 있다. 이런 부분이 통역이나 번역의 어려움일 것이다. ‘댓츠 마이 플레저’를 번역하면 무엇이 될까 생각해 보았다. 직역하면 ‘그건 나의 기쁨입니다’이지만 우리말로 그렇게 말을 한다면 매우 어색한 일이다. 같은 상황에서 한국 사람이었다면 아마 겸손해하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도를 했을 것이다.

언어에는 그 나라 국민성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영어 종주국인 영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은 참으로 유쾌하다. 그들은 상황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왜곡이 적다. 번역 작품을 읽다가 그 뜻이 애매하게 이해될 때 한국어를 제치고 영역을 확인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나쁜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하니 일상에 밝음이 유지된다. 한국 사람은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소리 내어 웃는다. 평소 거리의 표정은 미국인들보다 어둡다. 근심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언어생활이나 일상생활이나 참으로 비슷해 보인다. 영어의 ‘댓츠 마이 플레저’는 상대방을 얼마나 기분 좋게 하는가.

같은 문화권이라고 해도 한국어와 일본어 역시 각자의 국민성을 반영하고 있다. 영어와 달리 한국어와 일본어에는 존칭어가 발달해 있다. 동양문화권에 속하는 한국과 일본은 경로사상이 생활 깊숙이 작동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존대법을 구사하는 방법은 많이 다르다. 일본어의 존대어 체계는 정중어, 존경어, 겸양어로 나뉜다. 이 중 상대방에 대한 극존칭의 형태로 겸양어법을 사용하는데, 이 어법 속에서 일본의 국민성을 엿보게 된다. 문장을 한 번 보자. ‘(わたしの ことに) かいてくださいますか (와타시노코토니)카이테쿠다사이마스까?’ 단어를 그대로 나열하면 ‘(저에게) 메모를 하게 하여/시켜서 받으시겠습니까?’이다. 겸양 표현에 사역형을 사용함으로써 극존칭보다는 극겸양에 가까운 느낌이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어로는 ‘제게 메모를 시키시겠습니까?’ 또는 ‘제가 (메모를) 해 드릴까요?’ 정도면 되는 것을 일본어는 한 번 더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게 되어 있다.

이런 언어생활은 일본인들의 행동양식과도 면밀히 닿아 있다. 그들은 감사나 존경을 표현할 때 과하다 싶을 만큼 굽실거린다. 이런 태도는 사람을 가벼워 보이게 한다. 서양인들이 ‘일본인은 친절하다’고 느끼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한국어의 존대법은 객체존대와 상대존대가 있을 뿐이다. 객체존대란 문장의 주어를 높이는 것이고 상대존대란 일정한 종결어미를 선택함으로써 상대방을 예우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감사나 존경을 표현할 때 이중높임이나 이중낮춤을 사용하지 않고 다만, 정중함을 유지한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의 생활양식을 배우는 것인가 보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도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때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How are you?”하면서 영어로 인사를 건넬 때는 생긋거리며 표정을 나눈다. 네덜란드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뺨에 세 번 키스하는 전통인사법이 있다고 한다. 화란어를 배우게 된다면 낯선 사람과 뺨에 키스를 나누는 일을 무한 반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뿐 아니다. 사랑을 속삭일 때는 불어로 하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사람의 로맨틱한 성격이 프랑스어에도 잘 배어 있기 때문이 테다.

나는 그들이 지나간 후 “댓츠 마이 플레저”를 흉내 내어 보았다. 미국 속으로 한 발 들어온 듯했다.이성숙미국 크리스천헤럴드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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