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아메리칸 드림

발행일 2017-02-03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서른 넘은 늦깎이 유학생 단군씨뒷받침 해준 아내 덕에 변호사로 이제 그 사랑 갚는 일만 남았다 ”



단군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 변호사를 꿈꾸며 이곳에 왔다. 텍사스에서 7월의 시멘트 포장길을 걷는 것은 붉게 달아오른 양철지붕 위를 맨발로 걷는 것과 같다. 아스팔트 위에서 계란프라이 만들기 시합을 할 정도다. 어제도 단군씨는 도서관 간이의자에서 잠을 잤나 보다.

이곳 텍사스주립대학 로스쿨 재학생 중에 한국인은 일곱 명뿐이다. 단군씨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온 늦깎이 유학생이다. 어제는 로 1년차인 유나가 도서관 로비를 지나가며 “단군 오빠! 학교 앞에 방 하나 얻으세요!”라고 면박을 주었다.

좋은 학벌로 대기업 신입사원이었던 단군씨, 그러나 그곳이 단군씨가 꿈꾸던 직장이 아니라는 걸 느끼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보다 회의 시간이 길었고, 몇 시간에 걸친 회의 후에도 생산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되거나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결정은 찾기 힘들었다. 답답한 조직문화에 단군씨는 지쳐갔고 어느 날 사표를 내고 말았다. 효율성 없는 조직을 떠난 것이지만 세상은 오히려 단군씨를 낙오자로 몰아갔다. 그 후 재취업은 쉽지 않았고 자존심도 남김없이 구겨졌을 즈음, 단군씨는 인생에 중대한 결단을 내리기로 한다.

캠퍼스를 녹여버릴 것 같던 한낮의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기가 무섭게 한기를 몰고 온다. 사막에서 얼어 죽는다더니 그럴 법하다. 법대 도서관은 유일하게 저녁에 난방해 주는 건물이다. 이곳에서 먹고 자는 단군씨는 병역필로 한국의 명문대를 졸업한 예비역에다, 약사 아내를 두고 있다. 궁핍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집 없이 유학생활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에게 자꾸 핀잔을 준다.

학교 근처 원베드룸 아파트를 빌리라고 해도 부자나라에서 돈을 왜 쓰느냐며 도서관에서 새우잠을 잔다. 단군씨는 자칭 애국자에 국수주의자다. 김단군! 그 이름도 부모님들이 단군왕검께 빌려온 것이란다. 단군씨 자부심의 원천임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주에 중간고사가 있었다. 까다로운 재산법 시험이었는데, 시험장을 나서는 단군씨의 표정은 여유 있어 보였다. K는 교실을 빠져나가는 단군씨를 쫓아갔다. 이슈 스팟(논점)을 몇 개나 찾았는지 물어봤더니, 단군씨는 K보다 5개나 더 찾아 쓴 것 같았다. 숫기가 없어서 수업시간에는 말도 잘 안 하는 사람인데, 시험은 놀랍도록 잘 본 모양이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단군씨가 비닐로 싸인 빙과를 빨고 있다. 그대로 사진을 찍어 두면 노숙인 포스다. 재산법 교수는 깡마른 깐깐한 백인 남자다. 검은 테 안경을 들어 올리며 출석부를 살피더니 탄쿤? 미스터 탄쿤? 하며 단군씨를 부른다.

창가 자리에서 빙과를 빨고 있던 단군씨가 느릿느릿 빙과를 감추며 졸린 듯한 저음으로 “여기 있습니다” 하고 오른손을 위로 쭈욱 뻗는다. 교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꽂혔다. 교수는 시험에 나왔던 질문을 단군씨에게 던졌다. 단군씨가 유창함이 떨어지는 완벽한 문법으로 대답을 완료하자 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K가 단군씨와 함께 학교를 다닌 건 2년 전이다. 단군씨와는 입학 동기였지만 K가 JD과정(법학 박사, 보통 3년 과정으로 변호사가 되는 실무 과정)을 2년 만에 속성 졸업하는 바람에 학교를 일찍 떠났고, 단군씨는 여전히 기괴한 생활을 하면서 1년을 더 다녔다. K는 서부의 중심도시인 로스 엔젤레스에 와서 캘리포니아 바(Bar) 시험을 봤고, 지적재산권 분야의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11월, 일간지의 바 시험 합격자 한인 명단에 단군씨 이름이 들어 있다. 단군씨가 캘리 바를 본 모양이다.

단군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K는 엘에이에서 활동하는 친구들 몇 명에게 연락하여 오랜만에 단군씨와 만났다. 그는 검정색 세단까지 몰고 나왔다. 단군씨의 단정한 모습에 동창생들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단군씨는 이미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법률보조재단에 자원봉사자로 나가고 있었다. 그의 완벽한 변신 앞에서 친구들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왜 그 모양이었어요?

혈기만으로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온 후 취직이 되지 않았다. 준수한 외모와 학벌 덕에 약대를 졸업한 아내를 만났지만 1년 넘게 집에서 빈둥거리게 된 단군씨는 하루하루 피폐해져 갔다. 그대로 나이를 먹다가는 폐인이 될 게 뻔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아내에게 무릎 꿇고 부탁을 했더란다. 학비를 좀 대 달라, 실망시키지 않겠다. 고맙게도 아내는 그의 유학을 인정해 주었고, 학비를 보내 주었다. 단군씨는 그런 아내를 실망시킬 수가 없고, 아내가 보내준 돈을 함부로 쓸 수도 없어서 학교 도서관 주변에서 노숙하다시피 생활했던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제 변호사가 되었고, 한국에 있는 로펌에도 당당히 합격을 했으니 이제 돌아가서 아내에게 그 사랑을 갚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우리의 순정남, 단군씨 만세다.이성숙미국 크리스천헤럴드편집국장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