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담쟁이 가지 정리의 교훈

발행일 2018-01-18 19:33:0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적폐청산은 과거로의 회귀일 뿐지금부터 법·정의대로 시행해야믿고 기다려주는 사회가 오기를”



과거 테슬라는 미래가치는 있으나 수익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되었다. 테슬라는 아직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나 전기차 상용화를 위해 꾸준히 기술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테슬라를 성장시키는 힘은 믿어주는 투자자와 정직한 경영진, 이들을 즐겁게 지켜보는 소비자라 하겠다. 수익이 불안정한 테슬라가 미래가치를 인정받아 주식시장에 상장된 것을 두고 테슬라식 상장이라는 말이 생겼다.

테슬라 상장을 보면서 미국인답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사회는 신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돌아간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정치가든 연예인이든 신용을 잃으면 그것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 기간이 필요하고 심한 경우 사회에서 추방되기도 한다. 회사를 공개하고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중에서도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적자인 회사에 투자를 결정하는 일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6월, 테슬라는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적자를 뒷받침할 수 있었던 요인은 면밀한 미래청사진과 함께 정직한 경영진에 대한 믿음이었다. 지난해 말 한국에서도 ‘카페24’라는 회사가 테슬라 요건으로 상장심사를 통과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신뢰가 성장의 기반이 되는 문화가 생겨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다.

한국의 범죄율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를 신용사회로 보기는 어렵다. 2013년도 세계보건기구(WHO)글로벌 헬스 옵져버토리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사기죄 범죄율 1위의 나라다. 통계에 다소간 논란요소가 있다고 해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사기란 도덕성 결여에서 오는 범죄다. 신용이 발붙일 곳이 없는 땅인 셈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낳은 어두운 일면이다. 개발도상국 기자가 영국 총리에게 물었다. 영국사회는 어찌하여 이렇게 안정적일 수 있는가? 총리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랜 역사가 그것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영국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서구의 선진화는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정신문화적 도약단계,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경제적 도약단계를 거쳤다. 현재는 문화와 부가 결합하여 신용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 기간은 14세기 르네상스까지 거슬러 간다면 무려 600년이 넘고, 18세기 증기기관차의 발명을 시작으로 본다고 해도 200년이 넘는다. 한국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기점으로 경제적 정신적 근대화 운동이 본격화했다. 불과 30~40년 만에 경제성장을 이루다 보니 사람들은 다급해졌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풍조도 생겨났다. 그러는 사이 정직과 양심에 소홀했나 보다. 사람들은 도덕 불감증에 빠졌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도덕성을 밟고 일어선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신용사회 형성에는 교육현장도 한몫한다. 한국의 부모나 선생님들은 잘하는 과목이나 행동을 칭찬하기보다 잘못하는 부분을 집중하여 교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은 신경을 덜 써도 된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정반대다. 학생이나 자녀가 어떤 과목을 잘한다면 잘하는 과목에 아낌없는 칭찬을 해준다. 칭찬받은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감을 얻어서 못하는 과목의 성적도 진척을 보인다는 통계가 있다.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의 지지 속에 자란다. 살면서 믿음보다 든든한 원군이 또 있을까. 이들이 성장하여 신용사회의 밑거름이 된다.

지금 한국은, 적폐청산이 한창이다. 아니, 그 양상이 도를 넘어 나라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무엇이 적폐인가? 적폐란 오랜 기간 쌓여온 폐단이다. 한순간에 저질러진 실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어느 한 도막을 잘라낸다고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다. 며칠 전 정원의 담쟁이덩굴을 정리했다. 담쟁이는 자잘한 푸른 잎이 가득, 고르게 자라 있어야 보기 좋다. 그런데 옆집 담을 타고 넘어온 담쟁이 가지가 문제였다. 굵은 잿빛 가지가 담쟁이 이파리 사이로 고무호스처럼 뻗어 있다. 이 굵고 늙은 가지에는 이파리도 붙어 있지 않아 시야를 망칠 뿐 아니라 담벼락을 흉물로 보이게 한다. 나는 이 흉한 담쟁이 가지를 잘라냈다. 담벼락은 시원해졌고 정원도 깔끔해졌다.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다. 담쟁이 이파리가 누렇게 시들어 떨어졌다. 이런! 잔가지와 푸른 잎은 잘라 낸 굵은 가지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더니, 며칠 전의 결정과 수고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던가.

과거는 교훈이다. 적폐청산은 그 뿌리를 송두리째 들추어 내는 게 아니다. 바로 지금부터 법과 정의대로 시행해가는 것이다. 적폐청산은 과거로의 회귀일 뿐이다. 푸른 잎까지 잘려나가고 있다. 도덕성 회복과 합리적 시민의식, 책임 있는 정치가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믿고 기다려 주는 사회, 새해 우리나라에 거는 소망이다.이성숙재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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