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지금 여기, 욜로!

발행일 2018-02-22 20:07:4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바로 지금 이상향을 꾸려가자일상의 자잘한 기쁨을 놓치는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길”



소설은 우리 삶의 집약사다. 소설사를 이해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도 가늠할 수가 있다. 중세 이전의 소설들은 신화를 바탕으로 하거나 비범한 영웅들의 모험담이 주를 이루었다. 인간의 삶은 신에게 의존하여 돌아갔다. 신탁을 믿었고 제사장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 소설은 사람들에게 구름 위 세계에 대한 판타지를 선물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나가게 했다. 그러다 중세 끝 무렵(16세기) 사람들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이전 소설의 주인공들과 판이하다. 이들은 초능력을 가진 신이나 영웅이 아니다. 과장되게 묘사되고는 있으나 매우 우스꽝스럽고 낙천적인, 우리 주변에서 있을 법한 캐릭터에 근접한 것이다. 어느 날 이웃나라 왕 피크로콜이 시비를 걸어 전쟁이 벌어진다. 줄거리 전체는 시시하고 황당하고 난장판 같은 전쟁이야기다. 그러나 이 전쟁은 비장하거나 신랄하지 않다. 바보 같고 익살맞고 게으르지만 마음 따듯한 왕 가르강튀아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가르강튀아의 낙천적 성격은 전쟁을 놀이로 만들어버린다. 전쟁이 아무리 심각한 국면이어도 가르강튀아는 우선 낮잠부터 잔다. 그리고 전쟁을 제안한 상대방에게 잔치를 베풀고 놀이를 제안한다. 좀 황당해 보이지만 이 소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신화나 영웅들의 삶에서 탈피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들의 현재로 옮겨오도록 자극한다. 막연한 카타르시스보다 현재를 즐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비로소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이에 자극받아 그 후의 소설들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삶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근대소설의 시발이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와 연극으로도 여러 차례 발표된 톰 슐만 원작의 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자. 한국에서도 두 차례 개봉하면서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돈키호테 같은 선생님은 아이들의 캡틴이 되어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격려한다. 어느 날 명문 웰튼 아카데미에 새로 부임해 온 존 키딩 선생님은 명문대학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라고 주문한다. 부모의 꿈을 대리 실현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도록 말이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은 해 낸 결과이어야 한다. 2002년 한국에서는 축구감독 히딩크가 꿈 신드롬을 일으켰다. 꿈은 한동안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었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명제는 모종의 신성까지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 먼 미래에 집착한 꿈, 현실과 동떨어진 꿈은 삶을 자칫 고행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

히딩크의 축구팀이 꿈을 이룬 요인은 꿈이 결과가 아니라 ‘축구를 좋아하는 선수들’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훈련을 즐겼고, 승부를 즐겼다. 아직도 우리는 배고프다는 멋진 말도 남겼다.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행복하지 않지만 행복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이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실의 연구 결과다. 우리가 이미 알 듯이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을 승부로 몰아간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자신의 꿈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사람이다. 선수들은 연습할 때나 경기에 임할 때나, 이겼을 때나 패했을 때도 우울하기보다 행복했다. 그들이 꿈을 이룬 것은 성공에 집착한 게 아니고 축구를 사랑하는 그들의 열정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히딩크의 축구팀은, 꿈은 즐겁고 행복한 현재들이 집약된 결과임을 증명해주었다.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백세를 살아보니’라는 주제의 책과 강연이 회자하고 있다. 학문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그저 백 년이라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백세를 향해 가고 있는 후세대에게 전하는 내용이다. 그는 행복하고 즐겁게 살라고 충고한다. 단순한 물욕을 채우거나 당장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을 권하는 게 아니다. 행복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만족, 사회적 지위, 심리적 만족을 꼽는다. 그 중에도 행복을 연구한 많은 결과들은 심리적 만족을 으뜸으로 친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만족감이 증대되고 우리는 행복에 빠진다. 김형석 교수 역시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한 후회가 가장 크다고 한다. 수명이 늘었다고는 하나 유한성을 떨쳐낸 것은 아니다. 행복을 미루고 내일 끝나버릴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 외로움을 자처할 것인가. 인생은 완료형이 아니다, 진행이다.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 마침내 꿈에 도달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 주어진 시간에, 지금 놓여 있는 환경에서, 자신의 이상향을 꾸려가자. 일상의 자잘한 기쁨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기 바란다. You Only Live Once!이성숙재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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