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성과 유연성의 차이

발행일 2019-01-14 20:03:4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1883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콩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후부터 서구 열강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점유분쟁은 본격 시작됐다.

탐욕의 결과는 비참했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본래의 생활권과 관계없이, 부족 경계와 사회적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의적인 국경선은 같은 부족을 서로 다른 나라로 찢어지게 만들었고 또 앙숙관계에 있는 다른 부족들을 같은 나라로 편입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종족 간 갈등을 야기시켜 내전의 원인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국민 통합과 전체 아프리카 통합에 걸림돌이 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ㆍ소 양국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었다. 이 경계선은 군사적 목적에 따른 일시적 편의를 위해 책정된 것이었지만, 한민족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민족적 비극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사실 국가가 되었든, 민족이 되었든, 그 어떤 통합체 간의 경계선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 환경의 상호 작용의 결과물이어야 가장 자연스럽다. 법이나 사회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제도주의 이론에 제도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또한 각종 제도들은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탄생된다고 본다.

제도의 영향력은 ‘노갈레스(Nogales)’라는 도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인종과 역사와 문화가 같은 노갈레스는 담장 하나를 두고 미국 애리조나 주 노갈레스 시와 멕시코 소노라 주 노갈레스 시로 나눠져 있다.

한쪽 주민은 평균 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르지만, 다른 쪽은 소득 수준이 3분의 1에 불과하다. 인종과 역사와 문화가 같은 두 지역의 극명한 차이는 담장 하나가 만든 미국과 멕시코라는 국가제도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다.

이처럼 제도의 차이는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의 번영까지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는 ‘최저임금’이라는 제도가 핫이슈로 부상했다.

최저임금제는 열악한 근로 환경과 낮은 임금을 이유로 최소한의 생계도 유지하지 못하는 근로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다분히 규제정책의 성격이 짙다.

규제정책은 개인 또는 집단의 특정 활동을 제한함으로써 반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최저임금의 혜택으로 실질적인 소득이 증가한 분야도 있지만 임금인상을 원가나 비용의 인상으로 인식하여 일자리를 줄인 분야도 있다.

편의점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주는 직영 편의점의 알바 경쟁은 몇 십 대 일의 경쟁률을 보이는 가하면, 가맹 편의점의 경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고용을 줄이고 가족 끼리 교대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은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예정하고 있다. 이러한 입법취지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보여 진다.

매년 ‘십원’ 단위까지 결정된 최저임금이 고시된다. 최저임금이라는 훌륭한 제도가 다소 획일적으로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결정에 관한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의 상ㆍ하한선을 먼저 정한다는 점에서는 제도의 유연성이 느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최저임금제도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처럼 시원한 직선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돼 다소 꼬불꼬불하더라도 함께 선을 그으며 갈 수 있는 제도였으면 좋겠다.

또 노동의 가치가 왜곡되지 않도록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소외받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실질적인 노동자들도 함께 보호되었으면 좋겠다.

괴테는 “노동은 세 개의 큰 악(惡)인 지루함, 부도덕, 그리고 가난을 제거한다”고 말했다. 지루함, 부도덕, 그리고 가난을 제거할 수 ‘노동이 있는 일자리’, 그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도가 만들어져서 더 이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사회갈등의 중심에 놓여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상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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