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 거는 기대

발행일 2016-11-15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한 대통령과자기들끼리 싸우기 바쁜 새누리당더민주당이 ‘대화’의 물꼬를 틀어라”



“2002년 대선 때 러시아에 나가 있던 아들이 하도 ‘노무현 찍어라’라고 해서 찍었다가 죽을 쑬 때 그 아들에게 ‘니 이랄라고 찍으라 캤나’고 눈을 부라리니 아들이 아무 말도 못했다. 근데 지금 내가 그 당시 아들 꼴이다. ‘박근혜’ 안 찍을라고 하는 걸 윽박지르다 시피해서 찍게 했더니 요새 그 아들이 속으로 ‘이랄라고 나한테 찍으라 했나’고 하는 것 같아 내가 아무 말도 못한다.”

근래 만난 70대 초반 어른이 ‘최순실 게이트’로 황망해진 정국을 보며 털어놓은 속내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던 대구 사람들은 요즘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저 죽일 놈들, 000가 무엇을 잘못했는데’라며 쌍심지를 켰을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의욕을 상실한 모습이다. 삼삼오오 모여도 첫 인사로 “아이쿠 나라가 어수선해서…”라고만 할 뿐 더는 언급을 애써 외면하며 화제를 돌리는 눈치다.

정치담당 시절, ‘박근혜 전 대표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간혹 받곤 했다. 기자가 초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정치력, 도덕성, 사회성, 인간성 등 구체적 기준을 주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물을 땐 당혹스럽다. 그럴 땐 그냥 취재하는 기자 처지에서 답하는 게 제일이다. “기자를 참 힘들게 하는 정치인”이라고 했다. 정치인에게 말이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데 능력이 미천한 탓인지 박 전 대표를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고, 소위 기자들이 쓰는 말로 ‘워딩(Wording)’을 따기는 더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패배 후 거의 칩거하다시피 했음에도 2008년 공천 파동(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행정수도 이전 등 굵직한 사안에 폭탄급 어휘들로 정국을 흔들었다. 기자들은 그의 입 역할을 한 이정현(그때 우리는 대변인이라 불렀다) 현 새누리당 대표를 통해 의중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조금이라도 박 전 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질문이 들어갈 때면 특유의 큰 눈에 힘을 주며 목청을 높였다. 기자들은 그와 친박 의원들을 쫓아다녔다. 얼굴을 보고 말을 듣고 되물을 수 있는 일상 구조가 안됐으니 정치담당 기자에겐 그만한 고역이 없었던 것이다.

요즘 박 대통령은 부쩍 TV 앞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고 있다. 10월24일 2017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 제안으로 정치권을 흔들어놓은 지 하루 만에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설문 작성과정에서 비선 ‘최순실’에게 내용을 사전 유출한 사실을 시인했고 열흘 만에 대기업의 미르, K 스포츠 재단 기금 출연 의혹으로 같은 장소에서 머리를 숙였다. 사흘 뒤에는 국회에서 정세균 의장을 만나 책임총리 추천을 독려했다. 지난 주말 그의 ‘하야’와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 광화문 촛불집회로 곧 3차 담화문 발표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검찰 조사도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대기업 총수와의 독대다. 대기업의 손목을 비틀어 8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토해내게 했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 ‘전두환의 일해재단’, ‘노태우의 대선 비자금’. 이들은 이후 감옥에 갔다. DJ는 1997년 대선 가도에서 자백으로 고비를 넘겼다. 박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비자금사건으로 차떼기 당이란 오명을 쓴 당을 ‘천막 당사’로 구했다. 어찌 그 속에서 시대 흐름을 꿰뚫고 자신을 반추하지 않았단 말인가.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 검찰 수사를 받는 정국이다. 과연 국민은 누구를 바라볼 것인가. 대통령은 이미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했다. 여당은 난파선에서 자기끼리 싸우느라 정신없다. 이정현 대표가 중립내각 구성 후 지도부 사퇴를 얘기하지만, 그동안 친박이 얼마나 민심을 보지 않고 ‘대통령’바라기만 했음을 확인해주고 있을 뿐이다. 바로 야당, 그중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다. 80년 서울의 봄과 같은 양 거리를 누비며 목소리만 높여서는 안 된다. 국민 절반은 패배감에 우울하고 나머지는 주말마다 광장으로 치닫는 지금 현실을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추미애 대표가 청와대에 영수회담 개최를 요청했다가 취소했다. 안타깝다. ‘대화와 타협’, 여기서 물꼬를 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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