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골프장 잔혹사

발행일 2017-04-05 19:57:2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홍석봉편집위원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의 옛 도시 이름이다. 섬과 다리로 이어진 물의 도시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김천시 구성면의 베네치아 골프장도 그 이름에서 따왔다. 김천의 젖줄인 감천 상류의 물길을 돌리고 산을 허물어 조성한 땅에 들어섰다. 그 이름만큼이나 코스 곳곳에 워터해저드가 많은 골프장이다. 나름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인근의 골퍼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애초 이곳은 감천 상류의 물길이 흐르고 주변은 논밭이었다. 1993년 김천시와 토지공사가 구성공단 조성사업을 계획했다. 그전에는 금릉군이 개발을 추진하다 힘에 부쳐 포기했다. 김천시와 토지공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김천~거창 간 국도변의 널찍한 땅을 개발했다. 세수확대와 개발이익이 기대됐다. 1996년 80만4천㎡ 규모의 구성지방산업단지가 탄생했다. 모두 391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7년 동안 입주업체를 찾지 못했다. 지역경기 침체에다 접근성이 떨어진 것이 문제였다. 굳이 인근 구미공단을 두고 김천시내에서도 10여㎞ 이상 떨어진 곳에 공장을 짓겠다는 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사전 입지 및 수요조사를 제대로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구성공단은 2003년 결국 폐지됐다. 토지공사는 2005년 민간업자에게 211억 원에 팔았다. 10년 동안의 금융비용 등까지 따지면 1천억 원가량이 투입됐지만 7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애물단지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돈 먹는 하마였던 것이다. 김천시와 토지공사의 속을 썩이던 땅은 이렇게 해서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골프장도 순탄치를 못했다. 개장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당시 다른 골프장 건설업체들이 으레 그랬듯이 500억 원대의 회원권을 발행해 이 돈으로 공사를 했다. 하지만 개장 이후 수익은 생각만큼 발생하지 않았다. 적자에 허덕이다 2012년 다른 민간업자에게 사업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이후에도 경영적자를 벗어나지 못해 2014년 채무 상환 불이행 등의 이유로 채권은행이 공매에 부쳤다. 지난해 5월 세 번째 주인이 바뀌었다. 한 부동산컨설팅 업체가 골프장을 14억 원에 인수했다. 공단 조성 때 들어간 1천억 원과 골프장 조성에 투입된 500억 원 등 줄잡아 1천500억 원짜리가 단돈 14억 원짜리가 됐다.

베네치아 골프장은 현재 수십억 원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다. 이 중 일부가 청산됐지만 골프장은 결국 경북도로부터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고 문을 닫았다.

체납세금도 해결할 길이 없다. 500억 원의 회원권을 산 회원과의 청산 문제도 걸려 있다. 베네치아 골프장은 현재 세금체납에 따른 공매처분 등까지 감안하면 영업 중단 상태를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인다. 김천시는 다른 용도로 전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시 골프장 문을 여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베네치아 골프장은 우리가 또 다른 이유로 기억해야 하는 곳이다. 이곳은 역사학계가 주목하는 선사시대 유적지다. 1991년 구성공단 조성공사를 앞두고 송죽리에서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유적과 유물이 다량 출토돼 역사학계를 흥분케 했다. 이곳에서 발굴됐던 유적은 현재 대부분 당시 발굴조사를 맡았던 계명대 행소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공단조성이라는 개발논리에 밀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시작된 발굴 작업으로 중요한 유적지가 그렇게 파묻히고 말았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두고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제대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유적과 유물을 현지에 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했다면 김천시의 또 다른 문화유산 자원이 됐을 터이다.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애석하기 짝이 없다.

산과 논밭을 밀어 조성한 공단이 골프장이 됐다가 다시 문을 닫기까지 베네치아는 그렇게 24년이 넘도록 김천시의 애물단지가 됐다.

처음에는 공단 분양이 안 돼서 문제였고 골프장으로 바뀌고서는 편법 영업을 일삼다가 막대한 체납세금만 김천시에 떠넘겼다. 베네치아 골프장에는 이렇게 1천500억 원이 넘는 돈이 파묻혔다. 얼마 전엔 회원권 반납 소송으로 화제가 됐다. 김천시민에게는 질긴 악연이다.홍석봉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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