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보백보가 되어서야

발행일 2017-06-26 20:36:3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어수선함은 여전한 듯하다. 정치판 싸움질이야 늘 봐오던 것이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국정농단이니 대통령탄핵이니 하며 방향타 없이 보낸 세월이 얼마 동안인데 여전히 싸움질이고, 그것도 국민에게 소위 적폐세력으로 불린 진영의 딴죽걸기가 계속되고 있으니 국민은 아연할 따름이다. 정치권, 그중에서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최근 행태를 보면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는 이 사람들이 나라와 국민을 정말 생각하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국무총리부터 장관급 인사까지 새 정부의 모든 인사에 부적합 판정을 해 놓고 이젠 전선을 국회로 옮겨 추경예산안, 정부조직개편안 등을 반대하며 모든 국정을 올스톱 시킬 태세다.명분이야 있다. 후보자들의 도덕성에 흠결이 드러났고, 더욱이 대통령은 약속한 고위공직자 5대 배제원칙을 위반했으니 말이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국무총리부터 장관들까지 하나같이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에 걸려 도덕성에서 지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한한 게 여론조사를 보면 야권의 공세에 동의하는 국민보다 새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국민이 더 많은 것 같다. 왜 그럴까. 불과 몇 달 전까지 박근혜 정부는 장관은 폼으로 놔두고 듣보잡 강남아줌마와 국정을 논의했는데, 그 정부를 뒷받침했던 자유한국당이 지금 5대원칙이니 약속불이행하며 지적하는 게 영 말발이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탄핵으로 출범한 새 정부는 장관 임명도 다 못한 상황이다. 사드 문제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한미정상회담은 코앞으로 왔는데 주무장관은 겨우 며칠 전에야 임명했다. 일자리창출 중소기업지원책 등, 어려운 서민 살림살이에 온기가 돌게 하려면 필요한 정부의 역할이 시급한데 관련 법안은 언제 처리될지, 지금 봐선 하세월인 듯하다.

청와대도 그렇다. 얼마 전 사퇴한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20대 청년 시절 여성의 동의 없이 몰래 혼인신고를 한 사실이 들통나 물러나야 했다. 검증과정에서 후보자가 시치미를 뗐는지, 아니면 청와대가 알고도 넘어갔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어쨌든 청와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사건 이후 청와대는 의혹을 제기한 야당 국회의원을 상대로 어떻게 혼인무효소송 판결문을 입수했는지 오히려 문제 삼고 있다.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물러서야지, 판결문 의혹은 왜 들고 나와 찌질하단 얘기까지 듣는지 이해되지 않는 일 처리다. 이러니 이전 정권과 다를 게 뭐 있느냐는 얘기가 시중에 나도는 것 아닌가.

야당의 막무가내식 흠집내기와 국정 비협조에 울화야 치밀겠지만, 그래도 국정을 책임진 쪽은 청와대와 여당이다. 어떻게든지 문제를 풀어가 하루속히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고위직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국민들은 허탈감이 든다. 대한민국 지도층은 정말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가 하는 자조와 허망함일지도 모르겠다.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도입했다.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모두 청문회 낙마자가 속출했다. 문재인 정부 때를 빼놓고도 30명이 중도사퇴했다 한다.

후보자의 낙마는 그 정부의 국정운영과 도덕성에 타격을 주겠지만 무엇보다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다는 점이 더욱 아프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정의롭고 공정할 테지.” “과거보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잖아.” 하루하루 고달프고 힘든 삶이지만 미래는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로 국민은 버텨내는 건데 이건 아니다. 뭣이 문제인가. 능력과 도덕성을 갖추고 국민 눈높이에 적합한 인물이 정말 없는지, 야당의 주장처럼 진영인사를 해서 나타나는 문제점인지 지켜보는 국민은 안타깝다. 지금의 상황도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대립, 그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혼란을 끝내고 나라다운 나라가 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변화가 어찌 하루아침에 오고 두 손 놓고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변화의 열매를 그저 얻겠는가. 행동하는 국민을 정치인들은 무서워하는 것 같다.박준우독자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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