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지켜야

발행일 2017-06-11 19:55:0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흡연실 여고생들 욕 섞인 대화한국어 능통한 외국인 큰 충격말·글 아름다운 상태 보존해야 ”



가지런히 모심은 무논이 파릇한 생기를 더한다. 고요한 수면 위로 비친 산 그림자가 아련한 그리움을 드리운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우리의 산과 들이다. 기찻길과 나란히 달리는 산등성이 위로 붉은 해가 뾰족하게 솟아오른다. 세미나가 있어 서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6월의 맑은 햇살이 퍼지자 초여름의 논과 밭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름다운 풍광에 한참을 취하다가 문득 일전의 청문회 모습을 떠올려본다.

고위 공직자가 될 사람이라면 그에 걸맞은 도덕성과 정책 수행 능력을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그런 마음가짐으로 생활해온 이를 장관으로 두고 싶은 것은 국민의 작은 소망이지 않으랴.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오가는 질의와 답을 듣다 보면 기본적인 자질은 최소한 어느 정도로 만족해야 할까 싶어진다. 악순환은 반복된다. 어찌 되었건 철저하게 검정함으로써 한 점 의혹도 없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최적의 인물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국민의 본보기가 되지 않으랴 싶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일단 청문회에 통과한 후보라면 사랑하고 긍정하며 믿고 맡기다 보면 그에 맞추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하는 말과 일상으로 쓰는 언어에는 위대한 힘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좋아지는 것 같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다 보면 상대가 더 사랑스러워지는 듯하다. 그러니 자주 “잘한다. 잘했다. 참 잘했어.” 칭찬해주고 “사랑한다. 사랑해” 사랑스러운 언어를 사용해보면 어떨까. 상대가 조금 덜 좋더라도 나의 기분과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좋아한다. 정말 좋다”고 말해보자. 그렇게 하다 보면 점점 미운 상대라도 차츰 나아지고 능력을 발휘하면서 좋아지게 되지 않을까.

학회의 열성 회원 주관으로 영어 자료 발표하기에 대한 연수가 시작되었다. 금발의 미국 신사가 하얀 가운을 꺼낸다. “평소엔 여러분들이 가운을 입지만, 오늘은 제가 입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리는 여러분의 영어를 치료하는 닥터이기 때문입니다.” 영문 이름까지 새겨 준비한 가운을 입는 그를 보고는 참석자들이 아낌없이 손바닥을 두들겨댄다. 틀리기 쉬운 발음과 흔히 하는 실수에 대한 지적이 이어진다. 가슴과 머릿속에 실력은 짱짱하지만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발표언어에 막혀 제 실력을 잘 발휘하지 못하는 회원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는 정말 열기 넘친다. 더워지는 방안에서 그가 가운을 벗으며 한마디 던진다. “모든 것의 핵심은 말에 있답니다. 말에는 묘한 힘이 있지요. 상대를 감동하게 할 수도 있고 또한 상대방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늘 조금씩 쉬지 말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 있게 큰 사람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긴장하지 말고 어깨 펴고 큰 소리로 환하게 웃으며 발표하십시오.”

십수 년 한국의 방송사에서 영어를 강의하였다는 그는 한국어에도 능통하였다. 한국의 속어도 비어도 다 알아들을 정도로 해박하다. 자녀를 낳아 이 땅에서 키우며 한국인에 대해 얼마나 많이 느꼈겠는가. 그가 처음 한국에 도착하였을 때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말 배움터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순수한 눈빛으로 “뭐해, 뭐야? 먹어, 이리와”하면서 그에게 고운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의 말투는 정이 담뿍 담긴 언어가 스며들어 정다운 한국인이 다 되었다.

그런 그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였다니 어쩌면 좋을까. 공항에 들렀을 때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어 끽연실에 갔다고 한다. 그곳에는 교복 입은 여학생이 무리를 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열댓 명 되는 여자애들이 모여 담배를 피워대는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그들이 내뱉는 언어가 장난이 아니었다. 욕 섞지 않은 단어는 들어 볼 수 없을 정도였다니 눈이 휘둥그레졌으리라. 외국인이라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 놓고 이야기해대었겠지만, 몽땅 알아들은 그의 마음속에는 한국의 어떤 소녀 모습이 남을까. 아름다운 우리말이 청문회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상대를 힘이 나게 하도록 순화하면서 고운 말을 써보도록 힘써야 하리라.

내일은 그냥 오지 않는다. 지금 하지 못하는 일은 내일도 하지 못하는 일이 되지 않던가. 내일 하지 못할 것이라면 영원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지금이 가장 최적이 될 것이다. 지금 하지 못한다면 그냥 잊고 사는 편이 맘 편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말과 글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상태로 보존하고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진정 이루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말을 소중히 다루며 사랑해야 하리라.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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