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께서 길을 건너신다.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노인용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이 첫나들이 나온 유치원생 같다. 초록 불이 끝나도 차들은 그분이 길을 무사히 건너기까지 기다리고 있다. 저마다의 가슴에는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으리라. 길 저편에 서서 가는 그분 뒤로 며칠 전 수술하신 시어머니 모습이 겹친다.
시어머님은 친구들이 하나 둘 병이 나 누울 때도 누구보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셨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던가. 정년퇴임 전만 해도 전화 목소리는 며느리인 나보다 더 곱고 톤이 높아 절대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시어른 돌아가시고 홀로 되고부터는 삶에 의욕이 차츰 옅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도, 친구들과의 계모임도, 알뜰살뜰 챙기던 살림살이도 예전 같지 않은 표정이 되어갔다. 지병인 당뇨가 언제 기억을 흐리게 할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합병증을 막을 수야 있겠는가.
연로하신 부모를 홀로 계시게 하는 것이 불효인 것만 같아 남편과 의논 끝에 합가하여 살자고 제안하였다. 자식 손자들이 북적대며 함께 부대끼다 보면 화나고 속상한 일도 더러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정이라도 함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시집살이 10년 하면서 눈물 콧물 수없이 흘린 나였지만, 어머님 살아계시는 동안 마음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일 같아 무조건 합가하자고 말씀드렸다. 어머님도 생각해 보겠다고 하시더니 며칠 후 우리를 부르셨다. 어머님은 혼자가 더 편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할 수 없이 날마다 문안드리러 우리가 순번을 짜서 드나들며 살필 수밖에.
“00아! 걸어야 산다!” 커다랗게 써 놓은 종이를 걸어 놓고는 날마다 운동을 하시며 건강을 챙기시던 어머님의 기력은 날로 약해져 갔다. 앉으시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하셨다. 아들인 남편이 아침저녁 모시고 운동을 시켜 드리려 하면 걷기 힘들다며 소리를 높이는 날이 늘어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당뇨가 있는 몸이라 철저히 운동하고 몸 관리를 해야 걸을 수 있지 않겠는가. 싫은 운동을 억지로 시킨 것이 화근이었을까. 발뒤꿈치에 조그만 상처가 생기더니 점차 커졌다.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하여도 잘 낫지 않았다. 남편은 아침 점심 저녁을 드나들며 상처를 소독하고 드레싱을 하였다. 약을 챙겨 드리고 식사를 챙겼다. 아들딸 모두 어머님의 간호에 온 정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어머님의 상태는 진전이 없고 식사를 하다가도 주무시고 걷다가도 주무시는 신생아가 되어가는 듯하여 할 수 없이 입원하였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깨어날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꽃이랑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 아기의 옹알거림과 자연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입,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나는 행복합니다.’
어쩌면 세상일은 장난처럼 일어나는 것일까. 오페라의 대가인 베르디도 밀라노 음악원 입학시험에 처음엔 떨어졌다. 그 사실을 안 한 성악가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장난이다”라고 했다지 않은가. 오늘 아픈 이들의 상처가 거짓말처럼 장난처럼 깨끗이 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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