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경청하고 있나

발행일 2017-08-23 20:03:3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수능절대평가 찬반 피켓 든 사람들교육갈등 해소돼야 사회통합 가능다양한 경우의 수 고려해 결정하길”



“어느 명문 사립대 입학사정관이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볼 일 마치고 나가려 할 때, 학생 한 명이 상담하고 싶다고 하니 좀 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어요. 입학사정관에게 그 학생은 스키부 소속이라고 말하자, 반색하며 돌아서더니 한 번 보자고 했어요.” 어느 일선 교사의 말인데 사실이 아니면 좋겠다. 스키부, 또는 아이스하키부라고 하면 가다가도 돌아와 기꺼이 상담에 응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학생부종합전형이 금수저 전형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맞는 말이 아닌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어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는 왜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까? 앞으로는 달라지겠고 달라져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학벌에 의한 차별대우, 임금격차 등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대학진학이 장차 ‘취업을 위한 유리한 출발선 확보’로 생각한다. ‘구직달리기’에서 서울대 출신은 출발선보다 훨씬 앞에서 뛰고, 그다음부터는 학교 순위에 따라 점점 뒤로 밀려서 지방대는 출발선보다 훨씬 뒤에서 뛰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 출발에서 뒤지면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입상권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착화된 대학서열이 의미가 없어지는 혁명적 상황 반전이 없다면 절대평가를 도입하든 상대평가를 도입하든 명문대 입학을 위한 경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사교육 또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학부모들은 직감과 육감, 눈치와 오랜 사회 경험으로 이 점을 확신하고 있다.

수능 7과목 중 4과목(영어, 한국사, 통합사회ㆍ과학, 제2외국어ㆍ한문)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국어, 수학, 탐구 1과목은 상대평가하는 ‘일부 과목 절대평가’ 1안은 전 과목 절대평가를 보완해 수능 변별력을 어느 정도까지 확보하는 차선책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고교에서는 절대평가 과목보다는 상대평가 과목인 국어와 수학, 탐구 1과목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고, 과목 쏠림 현상으로 이들 과목에 대한 학습량이 늘어나고 사교육은 이 과목에 집중될 것이다. 전체 과외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상대평가 3과목에 집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렇게 어느 것이나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교육부는 1, 2안 중 하나를 8월31일에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전 과목 절대평가라는 2안이 도입되면 중학교 단계에서 수능대비 선행학습이 성행할 수 있다. 목표 점수가 명확하기 때문에 중학교 과정에서 준비할 수 있는 수능 문제를 뽑아 과목별 수능 예비학습을 할 수 있다. 고교에 진학해서는 수시모집 대비를 위해 학생부 교과와 비교과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중3부터 수능 준비반이 생겨 입시 공부 기간이 4~5년으로 늘어날 수 있다. 현 중3은 학교 내신은 9등급 상대평가제가 유지된다. 학생들은 약화된 수능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사생결단 자세로 내신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서는 1, 2안 모두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다. 학생과 학부모, 교육현장에서는 각자의 입장과 유ㆍ불리 판단에 따라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능절대평가 찬반 피켓을 들고 공청회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섬뜩하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열병을 앓아왔고 지금도 해소과정에 있는 이념갈등, 계층갈등, 보혁갈등, 빈부갈등, 세대갈등 등에 교육갈등이 하나 더 추가될 조짐이 보인다. 교육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사회통합은 어렵고, 계층갈등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서로 편이 갈려 목청을 높이고 있는데 대학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일부 대학만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은 개편안이 확정되면 구체적인 전형 방법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원래는 수능개편안이 확정되고 대학이 거기에 맞추어 3년 후 전형요강을 발표하여 현 중3이 고교를 선택하는데 참고하게 해야 한다. 무엇하나 예측 가능하지 않으니 개편안 첫 적용대상만 괴로운 것이다. 학부모와 현장의 목소리를 좀 더 경청한 후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개편안을 결정하면 안 되는가를 묻고 싶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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