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풍경 속 차가운 새날 아침

발행일 2019-01-01 18:50:3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눈초리 치켜세우다 주저앉은 ‘을’새날 아침은 여전히 시린 겨울밤지상서 가장 아름다운 시 새기길



새해를 맞이하는 풍경이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겉도는 문자와 함께 트위터ㆍ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립서비스가 난무하고, 감각적이고 유희적인 인사말이 스마트폰 문자 창으로 흘러들었다. 새해가 돼지해라는 점에 착안하여 ‘곳간 채워도, 정 나눠도, 글 써도 뭐든 돼지!’ 이런 식이다. 오직 언어유희와 감각적인 재미로 한 해를 보내고 맞는다.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낸 것에 대한 감사,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함,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 등을 돌아보는 진지함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이렇게 겉도는 말 속에 우리들 삶도 헛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짜와 가짜가 뒤엉킨 채,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타자화시키는 가운데 묵은해는 넘어갔다. 누리사업 비리가 드러난 유치원은 적반하장으로 폐업을 선언하며 학부형을 괴롭혔다. 여성 인권을 찾겠다는 미투 운동마저 본질을 희석시키는 거짓 미투가 속출했다. 강사법 시행으로 대학에서는 시간강사가 대량 해고의 위기에 놓이고, 최저임금제 도입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알바생을 불안에 떨게 한다. 디지털 시대의 가벼움은 그 어느 때보다 감각에 치우쳐 재미만을 좇고, 본질과 비본질 그리고 진짜와 가짜는 뫼비우스 띠처럼 엉켜 돌면서 혼동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며칠 전 시 한 편이 인터넷을 달구었다.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 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 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 흘리다가/ 눈 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대통령의 성탄 메시지 속에 인용된 박노해의 ‘그 겨울의 시’란 작품이다. 날씨가 추워지자 장터 거지와 문둥이를 걱정하는 할머니, 그 할머니의 중얼거림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라 생각하는 어린 화자는 따뜻한 인간미가 넘친다. 그런데 시를 읽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성탄절과 세밑, 그리고 집권 3년 차로 접어드는 정치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시는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성탄 메시지로 읽으면 ‘애틋한 할머니의 마음이 곧 예수님의 마음’이다.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을 일깨워 준다. 세밑 풍경으로 읽으면 추운 겨울에 이웃을 돌아보는 훈훈한 정서가 생각난다. 문제는 집권 3년 차의 입장이다. 촛불 정국으로 국정 농단을 탄핵한 정부에 거는 기대로 읽으면 좀 씁쓸하다. 올해부터 최저임금이 시간당 8천350원으로 오른다. 또 시간강사법이 적용되어 강사의 신분이 바뀐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갑’(재계와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제에 반발을 했고, 대학은 예산 운운하며 강사의 대량 해고를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을’(비정규직 노동자)은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떨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정부도 그들이 야심 차게 시작한 소득주도정책의 근간이 흔들릴까 걱정일 것이다.

시 속에서 장터 거지나 소금창고 옆 문둥이를 걱정하는 사람은 ‘갑’이 아니다. 물론 거지나 문둥이에 비하면 할머니는 상대적으로 ‘갑’이다. 하지만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얼고, ‘한 겨울 얇은 이불’을 덮어야 하는 시적 상황을 보면 할머니 또한 ‘을’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들의 잠자리가 ‘괜찮을랑가’ 걱정이 늘어진다. ‘을’이 ‘을’을 걱정한다. 그래서 별다른 대책이 없다. 찬바람이 잦아들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최저임금에 불만이 많았던 재계와 소상공인들이나 강사법을 호도하는 대학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들 법안이 마련된 이후 현실은 시적 상황과 달리 ‘을’이면서 ‘을’이 아닌 ‘을’(시 속의 할머니 같은 위치)과 ‘을’(시 속의 거지나 문둥이) 사이의 갈등만 부추기는 듯하다. 눈초리만 치켜세우다가 주저앉는 ‘을’에게 새날 아침은 여전히 문풍지 시린 겨울밤이다. 시적 화자가 들었다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새겨 보는 새날 아침이면 좋겠다.김종헌아동문학가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