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안내

안녕하세요?지역민을 위한 반듯한 언론 대구일보에서는 독자여러분의 기고문을 받고 있습니다.이메일 opinion@idaegu.com로 원고를 보내주시면 됩니다.보내주실때는 반드시 이름, 소속, 연락처를 기재바랍니다. [2017.02.06]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중략)//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 [2017.10.23]

지구 / 박용하

달 호텔에서 지구를 보면/ 우편엽서 한 장 같다/ 나뭇잎 한 장 같다/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저 별이/ 아직은 은하계의 오아시스인 모양이다/ 우주의 샘물인 모양이다/ 지구 여관에 깃들어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ㆍ나무ㆍ파도ㆍ두꺼비ㆍ호랑이ㆍ표범ㆍ돌고래ㆍ청개구리ㆍ콩새ㆍ사탕단풍나무ㆍ바람꽃ㆍ무지개ㆍ우렁이ㆍ가재ㆍ반딧불이…… 많기도 하다/ 달 호텔 테라스에서 턱을 괴고 쳐다본 지구는/ 쓸 수 있는 ... [2017.10.22]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 김경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 안의/ 빨간 나무 지붕이 있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극중의 한 기혼 중년여인과 한 중년 독신남자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네/ 그리고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헤어졌다네/ 불륜의 사랑이었으므로/ 그러나 그것이 생의 첫 번째 진정한 사랑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네/ 일생 중에 진정한 사랑은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그 남자는 늙어 죽기 전에 그 여인에게/ 일생 중에 진정한 첫사랑이었노라는 마지... [2017.10.19]

전봇대 뒤의 세계 / 이장욱

호기심의 끝에 있는 것/ 킁킁거리는 코와/ 전봇대의 깊이 너머에// 거기서 자꾸 달아나는 중인 것/ 냄새가 없는/ 내일이 없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과 흡사한// 우리는 오래전에 술래잡기를 한 적이 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머리카락 보인다/ 머리카락,// 점점 무성해지는 그림자들의 자리에/ 밤의 전봇대 뒤에/ 누가 계속 숨어 있다/ 개의 목줄을 쥔 채/ 개에게서 숨으려는 사람처럼/ 점점 커지는 머리통을 감추고// 아주 오랜 시간이... [2017.10.18]

함양 군내버스 / 조향미

함양 백전 녹색대학 가는 버스는 오십분 간격이다/ 버스가 떠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일찍 차에 오르니 할머니만 다섯 먼저 타고 계시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노친네들은 서로 거리낌 없다/ 할매는 올해 나이가 몇이오/ 나는 아직 얼마 안돼요 칠십서이/ 아직 젊구마 한참 농사 짓것네/ 그래도 오만데가 아푸고 쑤시오 할매는 얼마요/ 나는 칠십아홉 저 할매하고 동갑이오/ 칠십 셋은 아직 괜찮소 여섯 넘기면 영 힘에 부치요/ 손수레와 도리깨를 옆... [2017.10.17]

시월 /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중략)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 [2017.10.16]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작자 미상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 [2017.10.15]

애기똥풀 꽃의 웃음 / 권달웅

꽉 막힌 추석 귀향길이었다/ 참아온 뒤를 보지 못해/ 다급해진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산골 외진 숲 속을 뛰어 들었다// 벌건 엉덩이를 까내리자/ 숲 속에 숨었던 청개구리가 뛰어올랐다/ 향기로운 풀내음 속에서/ 다급히 근심거리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쉿! 조용해! 무슨 소리가 났지?)// 이 삼라만상의 갖가지 일에 부딪치면서 살다보니/ 더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참으며 사람이 사... [2017.10.12]

친정엄마 / 고혜정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힘들 때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엄마 새끼보다 내 새끼가 더 예쁘다고 말해서 미안해/ 언제나 외롭게 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 자주 못 보여줘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해/ 친정에 가서도 엄마랑 안 자고 남편이랑 자서 미안해/ 엄마의 허리 디스크를 보고만 있어서 미안해/ 괜찮다는 엄마 말 100퍼센트 믿어서 미안해/ 엄마한테 곱게 ... [2017.10.11]

작명의 즐거움 / 이정록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중략)//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 [2017.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