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안내

안녕하세요?지역민을 위한 반듯한 언론 대구일보에서는 독자여러분의 기고문을 받고 있습니다.이메일 opinion@idaegu.com로 원고를 보내주시면 됩니다.보내주실때는 반드시 이름, 소속, 연락처를 기재바랍니다. [2017.02.06]

걸림돌 / 공광규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 [2017.03.30]

사랑의 지옥 / 유하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 버린다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닫혀 운다- 시집『세상의 모든 저녁』 (민음사,1999)..................................... [2017.03.29]

달 (영화 37도2부) / 박정대

조금은 어두운 대낮 전기 플러그를 꽂으면 달이 뜨네. 정지된 풍경들 속에서 색소폰 소리가 나네. 아, 난 어지러워 무너진 언덕 너머에는 출렁이는 네 어깨와도 같은 신열의 바다가 있네. 어디라도 가려하지 않는 바람과 배 한 척 있네. 베티, 내 푸른 현기증과 공터의 육체 위에 너의 보라색 입술을 칠해 줘. 베티 기억하고 있니. 내 어깨 위에 걸려 있던 너의 다리 그 아래로만 흐르던 물결, 물결 속의 달, 바람 불어, 경사진 사랑의 저 너머에서 함... [2017.03.28]

낮달 / 이규리

무슨 단체 모임같이 수런대는 곳에서/ 맨 구석 자리에 앉아 보일 듯 말 듯/ 몇 번 웃고 마는 사람처럼// 예식장에서 주례가 벗어놓고 간/ 흰 면장갑이거나/ 그 포개진 면에 잠시 머무는/ 미지근한 체온 같다 할까// 또는, 옷장 속/ 슬쩍 일별만 할 뿐 입지 않는 옷들이나/ 그 옷 사이 근근이 남아 있는/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라 할까// 어떻든/ 단체 사진 속 맨 뒷줄에서/ 얼굴 다 가려진 채/ 정수리와 어깨로만 파악되는/ 긴가민가한 이름이어도... [2017.03.27]

기분이 좋다 / 신진

①처가에서 쌀 한 가마 보내 왔을 때 ②산골짝에서 도다리회를 먹을 때 ③술병 마개 딸 때 ④벼랑 위에서 혼자 오줌을 눌 때 ⑤귤껍질을 벗길 때 ⑥까무러친 여자에게 화장지를 줄 때 ⑦우리나라 챔피언이 조빠지게 맞고 비길 때 ⑧남이 보는 거울의 남을 엿볼 때 ⑨방안에 누워서 데모소리 들을 때 ⑩이 시대의 학자와 이 땅의 언론인이 시국토론 하는 것을 볼 때 ⑪아이들이 TV보고 웃는 것을 볼 때 ⑫밥 사먹고 나오다 껌을 얻을 때 - 시집 『江』 (시와... [2017.03.26]

말하는 건축가 / 최상대

음악가는 소리로 화가는 그림으로/ 무용가는 몸으로 시인은 글로서 말을 한다/ 시인은 말로서 절을 짓고/ 사진작가는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 건축가는 말한다. 건축에 대하여/ 도시에 대하여 공간에 대하여 조형에 대하여/ 예술과 문화를 사회와 국가를 말한다/ 건축주를 향하여 시공자와 공무원을 향하여/ 법규 민원 경제 윤리를 향해 가래를 끓인다/ 건축가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건축가의 말은 가물가물 되돌아오지 않고/ 항암에 지친 건축가... [2017.03.23]

책장을 펼친다 / 천양희

저 건물은/ 웃음을 잃은 창백한 시인 같다고/ 그가 말했을 때/ 웃음도 하나의 장식이라고 말한/ 건축가가 있다// 어디, 통곡할 만한 큰 방 하나 없냐고/ 그가 물었을 때/ 통곡할 방을 설계할 건축가는 시인밖에 없다고 말한/ 건축가가 있다// 나는 놀라서/ 문득 펼쳤다가 오래 읽은/ 「시와 건축」책장을 다시 펼친다// 영혼으로 지으라……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집을 짓는 건축가이니- 월간 《문학사상》 2012년 1월호.................. [2017.03.22]

샛강에 서서 / 허정분

수수만년 누대를 흐른 강물에 눈이 내린다/(중략)/ 소리 벽을 치는 물살들로 깨어 있는/ 강바닥의 크고 작은 돌들이/ 제 몸의 무늬들을 선명히 마모시키며/ 둥글게 사는 법을 배워가는 이 강은/ 아직 강 밖 더러운 세상을 모른다/ 낙동강, 영산강, 금강, 남한강, 반도의 母川들을/ 한 물살로 수장시켜 죽이려는/ 운하인지 시궁창인지 그 음모를 모른다/ 다만 이렇게 깨어있는 정신으로/ 늘 새 물길로 흐르면서/ 주름 깊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자궁 같은/... [2017.03.21]

노숙 /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 [2017.03.20]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 [2017.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