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에 대한 명상 / 장정일

발행일 2017-01-23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하략)

-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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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란 부제가 붙었지만 너무 긴 시다. 이런 것도 시로 취급해주냐며 의아해할 독자가 계시겠지만, 이 첫 시집으로 장정일이 30년 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걸 보면 전문가들도 인정을 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비호감’의 빡빡머리로 한때 TV교양프로를 진행했으며, 최종학력 대구 성서중 중퇴의 학력으로 동덕여대 문창과 초빙교수 노릇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인간 장정일과 함께 그의 시 역시 흥미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는 장르를 구체적으로 넘나들면서 시에 대한 전통적 관념을 완전히 분해하였다. 희곡으로 문단 데뷔한 경력이 노출되면서 장르해체를 시도한다. 시인은 왜 전에는 금이나 꿈같은 단단하고 투명한 것들에 대한 명상만 하다가 물컹한 것들도 명상의 대상에 포함시켰을까? 전통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들만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인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에 속해있다는 말은 미국식 자본주의에 예속이 되었다는 판단일까? 그래서 마요네즈와 브라운소스의 입맛에 길들여진다는 것이 좋다는 건가 나쁘다는 건가? 반항적 독백의 어투로 보아서는 분명 비판과 조롱이 묻어 있지만, 과거 소련과 중국이 그렇고 베트남이 지금처럼 변모한 데는 맥도날드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환기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맥도날드가 들어간 나라들끼리는 전쟁이 없다는 말도 있다. 되짚어보면 저 북녘에도 코카콜라와 맥도날드가 들어가기만 한다면 전쟁의 불안은 사라질 것 아닌가? 그리 생각하면 꼭 나쁘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이 초국가적 브랜드들이 지배하는 현실을 ‘맥 월드(Mc World)’ 맥도날드가 지배하는 세계라며 ‘팍스 아메리카나’를 연상케 하는 말도 있다. 십 년 전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변 한 빅맥 가게에서 먹은 엄청난 크기의 햄버거처럼 우리를 압도하고 질리게 하는 구석은 여전히 있다. 장정일은 아무리 커도 “두 손으로 들고 먹지 않는, 나이프와 포크로 먹는 것은 절대 햄버거가 아니다”라 했다. 그러나 포크와 나이프 아니면 햄버거를 먹지 못하는 공주마마도 있긴 있다. 햄버거는 코카콜라와 함께 미국의 상징이다.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이란 미국식 자본주의 가치에 점령당한 생활 방식을 가리킨다. 지난 20일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는 과거 김정은과의 ‘햄버거 대화’를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 둘 다 그 자체가 초불확실성 존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일말의 기대를 한다. 때마침 지난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인민복을 벗고 양복을 빼입은 것도 좋게 보면 햄버거를 먹으며 북미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정치적인 시그널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아무쪼록 정크푸드 햄버거가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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