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 조용미

발행일 2017-02-09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사제 김재문 미카엘의 묘/ 1954 충남 서천 출생/ 1979 사제 서품/ 1980 善終// 천주교 용산교회 사제 묘역/ 첫째 줄 오른편 맨 구석 자리에 있는 묘비석/ 단 세 줄로 요약되는/ 한 사람의 生이 드문드문/ 네모난 봉분 위에 제비꽃을 피우고 있다// 돌에 새겨진 짧은 연대기로/ 그를 알 수는 없지만/ 스물다섯에 사제복을 입고 다음해에/ 죽음을 맞이한 그의 젊음이/ 내게 이 묘역을 산책길의 맨 처음으로 만들었다// 창으로 내려다보면 커다란 자귀나무 가지에/ 가려진 그 아래/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어떤 사람들의 生이/ 숫자들을 앞세우고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들의 삶을 해독하는데/ 한나절을 다 보낸 적도 있다// 그는 이 묘역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다/ 그의 죽음이 봄날을 오래 붙들고 있다

- 시집『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문학과 지성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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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의 <~>이란 시가 있다. 역사책을 읽을 때 이름 다음에 괄호하고 생몰연도만 표기된 숫자 사이 <~> ‘멸치꽁지’같은 이 ‘작은 파선’속에 한 인간의 생애가 고스란히 꼼짝없이 체포되어 요약된 것이 마땅하냐는 눈초리의 시다. 한 인간이 몸과 영혼으로 살아낸 생과 그 절절한 과정들을 저 파선 안에서 어찌 이해하고 전달받을 수 있을까. 역사에 길이 전해질 인물도 그럴진데 범인들이야 오죽하랴. ~ 속에 일괄 파묻히는 것에 대한 허망을 토로하였다. 시인이 한 사제의 묘 앞에서 봄날의 한때가 오래 붙들려 ‘그들의 삶을 해독하는데 한나절을 다 보내’고서도 미궁에서 빠져나오긴 힘들었겠다. 그러나 시인이나 작가가 아니라면 누가 저들의 파선 사이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수고할 것이며, 상상력을 불어넣어 생을 일으켜 세울 수 있으랴. 그리고 누구의 생인들 귀하지 않겠으며 어느 사제의 영혼인들 아침 햇살처럼 맑지 않았으랴. 다만 한 생이 불러일으킨 파문과 동심원의 크기는 각자 조금씩 다르리라.

우리는 또 한 사람의 숭고한 삶과 그 정신적 유산을 기억하고 있다.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고 이태석 신부다. 당시 신부의 삶은 교회의 안팎으로 그 파장이 컸다.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은 ‘울지마 톤즈’를 두 번이나 보고 “불교가 이태석 신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디 불교뿐이랴. 그의 삶은 당시 언론에서 상투적으로 수식해온 ‘잔잔한 감동’이 아니라 한 인간이 보여준 극점의 사랑 앞에서 격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한 사람의 생애가 우리 자신을 한없이 부끄럽게 했으며, 드디어는 눈물로 고해성사토록 했다. ‘수단의 쫄리’는 그들에겐 구세주요 예수의 다름 아니었다. “Everything is good.”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48년의 생을 떠났다. 당시 영혼의 큰 떨림을 경험했건만 이내 흐지부지 뇌리에서 사라졌다.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 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얼마 전 이태석 신부의 삶과 업적을 다룬 내용이 내년 2월부터 아프리카 남수단 교과서에 실린다는 짧은 뉴스를 접했다. 남수단 교육부는 그 내용을 집필 중이며 올해 제작에 들어가 내년 새 학기에 맞춰 발간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비의의 긴 파선(~) 가운데서 그의 ‘삶을 해독하는데 한나절을 다 보내’도 좋으리라. 대통령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 ‘울지마 톤즈’를 한 번씩 다시 보여줬으면 좋겠다. 누가 훌쩍이고 누가 꾸벅꾸벅 조는지도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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