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유치환

발행일 2017-02-16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로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시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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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많은 시인 중에 기혼의 입장에서 그 대상의 과녁을 정확히 겨누고 아내 아닌 다른 대상에게 사랑의 헌시를 날린 이는 아마 청마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유치환과 이영도의 사랑은 마치 황진이와 명창 이사종의 6년간의 계약사랑만큼이나 시대의 파격을 담은 용기 있는 사랑이었다. 그들의 사랑을 과연 정신적인 사랑만이었겠냐는 의혹의 시선이 지배적이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청마와 정운의 사랑을 플라토닉으로 이해하거나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온 청마는 통영여중 교사로 부임하여 1958년까지 재직했다. 이 무렵 시조시인 이영도가 여기에 근무하고 있었고, 청마는 이 단아한 여성시인에게 연정의 불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청마는 생명의 열정을 적어 연인에게 바치기를 20여 년. 1947년부터 1967년 2월 13일 교통사고로 타계하기 전까지 거의 매일 아침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6.25때 일부 불타고 남은 편지만 5천여 통이라니 정말 애틋하고 대단한 사랑이 아닐 수가 없다. 청마는 남달리 더 많은 영혼의 갈증을 느낀 사람이었을까. 그는 사랑을 “다른 하나의 나를 설정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지없이 허무한 목숨에 있어서 나를 더 설정하여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큰 구원의 길”이라면서 “필경 인간은 누구를 하나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고 “내가 누구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보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 편에 더욱더 큰 희열과 만족이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다는 일은 내가 소유됨이요, 내가 사랑함은 곧 내가 소유하는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에겐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더 큰 희열과 만족으로 인식되고 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는 순정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죽은 뒤에도 그녀와 함께 묻히고 싶다는 말을 수없이 편지에 썼다. 청마는 이 편지를 보낼 때부터 이미 낙명의 시간에 이를지라도 사랑하는 그녀가 있다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한편 놀라운 것은 청마의 부인이 과부 이영도와의 사랑을 묵인해주었다는 점이다. 오래전 김윤식 교수가 진행했던 <명작의 고향>이란 TV프로에서 청마 아내의 증언을 들은 기억이 있다. 질투가 나지 않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부인은 “처음엔 뒤를 밟기도 했지만, 그토록 목숨 같은 사랑인데 어쩌겠어요”라고 했다. 아무튼 큰 의미도 없이 초콜릿과 사탕이 오고가는 이 시대에도 이런 사랑, 더구나 이 같은 파격의 편지 사랑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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