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오래된 골목』(창작과비평사, 1998)
‘잘못 채운 첫단추, 첫연애 첫결혼 첫실패’란 지점에서 시인의 쓰라린 개인사적 비밀이 읽혀진다. 시인은 우리나이 올해 일흔 여섯으로 40여 년 전 4살짜리 아들 하나를 두고 남편인 정현종 시인과 갈라섰다. 헤어진 아들과는 17년 만에 대학생이 된 뒤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부부관계란 모름지기 그들만이 아는 일. 아니 그들조차도 모를 수 있는 일. 오랜 기간 혼자 살며 뒤통수에서 수군대는 소리도 많이 들었겠고 남에게 그 진실의 내막을 털어놓기는 더욱 쉽지 않았으리라. 이혼 후 한동안 시도 쓰지 않고 모교인 이대 앞에서 조그만 의상실을 경영하며 혼자만의 생계를 유지하다 죽을 결심도 수차례 하였단다.
그러다 우연히 부안의 내소사 근처 직소폭포를 찾은 후 그 ‘백색의 정토’ 앞에서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곧추세워 한때는 하루에 한편씩 시를 쓸 정도로 맹렬하게 시에 매달렸다. 생이 몹시 부당하다고 느껴질 때, 무엇엔가 죽도록 시달리던 마음을 간신히 추슬렀을 때 하루치의 희망이라도 쓰자는 생각에서 매일 시를 썼다. 시인은 어느 해 겨울, 외출하려고 옷을 입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을 뿐인데 옷 모양 전체가 망가져 버린 그 순간 마치 인생 전부가 흐트러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첫 단추의 실패가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단추의 난감함이 이 시를 쓰게 했다고 시작 배경을 말하고 있다.
천리 길도 한 발짝부터라지만 길을 잘못 들면 아무리 잘 뛰어도 소용없다. 나랏일도 그렇다.
과거 윤창중의 첫 인사에서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가 4년 동안 얼마나 빈번하게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참혹으로 이어졌던가. 그에 비해 문재인 정부의 첫 단추는 인사뿐 아니라 외교안보와 부조리 척결, 국민소통과 협치 등에서 두루 무난하게 잘 끼워졌다고 본다. 이대로만 간다면 ‘광화문 시대’를 열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은 잘 지켜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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