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 하는 사이에 / 이규리

발행일 2017-06-19 20:07:2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그가 커피숍에 들어섰을 때/ 재킷 뒤에 세탁소 꼬리표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왜 아무도 말해주지 못했을까/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애써 준비한 말 대신 튀어나온 엉뚱한 말처럼/ 저 꼬리표 탯줄인지 모른다/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상견례하는 자리에서/ 한쪽 인조 속눈썹이 떨어져나간 것도 모르고/ 한껏 고요히 앉아 있던 일/ 각기 지닌 삶이 너무 진지해서/ 그 일 누구도 말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저, 저, 하면서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7년간의 연애를 덮고 한 달 만에 시집간 이모는/ 그 7년을 어디에 넣어 갔을까/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아니라 아니라 못하고 발목이 빠져드는데도/ 저, 저, 하면서/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문학동네, 2014)

‘세탁소 꼬리표가 그대로 달려’있는 재킷을 입고 한참 돌아다녀도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새 코트 소매에 라벨을 붙인 채, 새 차 문짝에 파란 스펀지를 떼지 않고 다녀도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듯이 다른 이의 ‘취향’을 참견할 일은 아니다. 한번은 누군가에게 왜 핸드백의 지퍼를 채우지 않느냐고 했더니 부러 그렇게 한단다. 그러고 길에서 보니 여성들의 상당수가 지퍼를 그냥 열어두고 다녔다. 헤어롤을 머리에 붙이든 스타킹의 올이 나가든 심지어 바지 지퍼가 열려 있어도 함부로 입을 뗄 건 아니다.

속옷이 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지퍼를 열어둔 채 오만상 쏘다니고도 무사 귀가한 적이 두어 번 있었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는 난감 정도가 남성에 비할 바 아닐 것이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내가 앉은 자리 앞에 선 한 젊은 여성의 바지 지퍼가 열려 있었다. 물론 속옷이 보일 정도는 아니었으나 꽤 당황스러웠다. 불필요한 오해 없이 그 사실을 알릴 궁리를 잠시 해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못 본 척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 저, 하는 사이에’ 그녀는 출구를 향해 몸을 움직였고 나는 이내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애써 준비한 말 대신 튀어나온 엉뚱한 말처럼’ 공연한 말을 해놓고 바로 ‘이게 아닌데’라며 후회한 적도 있다. 김용택 시인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사이’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또 그러는 사이 꽃이 지고 봄이 간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사람들은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각기 지닌 삶이 너무 진지해서, 그 일 누구도 말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7년간의 연애를 덮고’ ‘한 달 만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이모’가 ‘그 7년을 어디에 넣어 갔을까’ 궁금했겠지만 묻거나 따질 겨를 없이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다.

75년 헌병대에서 졸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한 대위가 사석에서 “헌병 끗발은 전시 상황에서 빛나는 법인데, 요즘 같으면 전쟁이 한번 터졌으면 좋겠어” 하기에 씩 웃으며 “그렇다고 대한민국 장교가 전쟁이 나길 바란대서야 말이 됩니까”라고 대꾸했다가 느닷없이 군홧발에 왕복으로 정강이를 까인 기억이 있다. 그 통증은 오래갔고 국방부 시계는 더디 갔다. 알아서 긴다는 게 여간 메스꺼운 일이 아니었으나 ‘뻘짓’은 백해무익임을 알았다. 사회에 나와서도 ‘아니라 못하고 발목이 빠져드는데도’ 가슴과 머리, 입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다. ‘안 돼 안 돼 하면서 돼 돼’로 바뀐 일도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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