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이 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아들의 상황이지만 내가 겪지 못한 정경이라 나에겐 ‘로망’이기도 했다. 그만큼 알뜰살뜰 생의 밥그릇을 빡빡 긁어 다 드시고 가시길 소망했다. 만약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밥숟가락을 스스로 들지 못하는 지경이면 입을 아 벌리라 하고선 밥을 떠다 먹일 생각이었고, 똥 싼 속옷도 잘 빨아 말려서 개켜둘 것이라 단단히 각오했건만 어머니는 내게 그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 실제로 그 상황이 닥치면 어찌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졸지에 쓰러져 백일 만에 가셨으니 허망하고 억울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햇살 가득히 눈부시게 쏟아지는 어느 봄날, 휠체어를 천천히 밀고서 공원나들이를 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그 꿈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셈인데, 어쩌면 당신 생각에 도무지 가망 없는 노릇이고 실컷 구박이나 받다가 쓸쓸히 눈을 감을 것을 예견했기 때문에 서둘러 가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생각에 이르면 생전 어머니께 저질렀던 온갖 불효들이 한꺼번에 치밀어 오르곤 했다. 지금껏 그 여한은 문득문득 나를 오금 저리게 한다.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필사적인가? ‘나를 이 세상에 밀어놓은 당신의 밑을 샤워기로 뿌려 씻긴 다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겨드리는’ 대목에서 눈물이 찔끔 흐르면서 저 수발이 부럽기조차 했다. 저와 같은 ‘효’를 못해본 게 못내 뼈아픈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일관된 불효자였던 나를 스스로 기만하는 위선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번 양보해서 소박한 효심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혼자 치매 앓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참으로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의를 다해 친절하고 상냥하게 돌봐 드릴 수 있을까.
노인 요양기관이 있지만 노년의 삶은 노인요양보험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에 불과하다. 치매라는 경계 이후의 삶에는 이름도 인격도 없다. 경계 너머의 그들은 이쪽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암묵적인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뿐일까. ‘꼬마 계집아이’로 환원하여 ‘얌전하게 보료 위에 앉아 계신’ ‘그 가벼움에 대해선’ 우리 함부로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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