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국수를 닮은 이야기』 (애지, 2017)
개가 사라지면서 개집도 개밥그릇도 함께 사라졌다. 사료만 있을 뿐 개밥마저 없어졌다. 그러니까 개는 두 종류만 남았다. 애완이든가 식용이든가. 아니 하나 더 있다. 소수파이긴 하지만 버려진 개도 있다. ‘아버지의 삼거리 다방’이 성업 중일 때는 없던 품종이었다. 키우던 개를 버리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갑작스레 병이 생겨 목돈이 들어가는 등의 유지비 부담, 개털이 천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알레르기에 대한 우려, 이사를 하며 달라진 환경에서의 사육 부담, 처음엔 귀엽기만 하던 것이 커가면서 꼬락서니가 미워졌다는 이유, 수컷의 딸아이 발목을 붙들고 시도 없이 해대는 요상한 허그 행위 따위가 그것이다.
‘애완의 시절이 도래’하기 전엔 없던 현상이다. 동네에 ‘닭 울음’이 건재할 때 함께 짖어대는 바둑이들의 후손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름날 골목의 살평상도 그 옆에서 꼬랑지 흔드는 개들도 죄다 사라졌다. 골목어귀에서 흘레붙던 개들이 사라지자 골목도 처녀의 수줍음도 사라졌다. 길거리가 이상해졌고 뻘쭘해졌다.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한 인간이 개와 우정을 맺는다는 것은 그 개를 잘 돌본다는 도덕적 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개와의 우정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친구 같고 식구 같았다. 그러다가 가끔은 키우던 개를 끄슬려 잡아먹기도 하지만 개와 맺은 우정을 배신하는 행위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러한 동네 개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애완족과 식용족들의 진영이 갈렸다. 언제부터인가 그들 사이에 전운이 감돌더니 매년 초복 날을 앞두고 연례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구나 올해는 ‘진보’ 정권이 들어서고 애견인이라 자처하는 대통령이 받쳐주니 애완족들의 목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들은 식용개 만들려고 교배시키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랬듯이 삼계탕 가게는 붐비고 ‘마니아’들은 삼삼오오 뒷골목 보신탕 맛집을 찾았다. 식용족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맛있게 먹으면서 왜 개고기만 안 되냐는 볼멘 목소리로 일관된 주장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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