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지 못한 질문 / 유시민

발행일 2019-01-08 19:51:1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은 없을 것 같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2002년 뜨거웠던 여름/ 마포경찰서 뒷골목/ 퇴락한 6층 건물 옥탑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노무현의 시대가 오기만 한다면야 거기 노무현이 없다한들 어떻겠습니까/ 솔직한 말이 아니었어/ 저렴한 훈계와 눈먼 오해를 견뎌야 했던/ 그 사람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 (중략)//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만 같소/ 정치의 목적이 뭐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주는 것 아니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 가족의 삶조차 지켜주지 못하니/ 도대체 정치를 위해서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이요/ (중략)// 그는 떠났고/ 사람 사는 세상은 멀고/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거기 있는데/ 마음의 거처를 빼앗긴 나는/ 새들마저 떠나버린 들녘에 앉아/ 저물어 가는 서산 너머/ 무겁게 드리운 먹구름을 본다/ 내일은 밝은 해가 뜨려나(후략)

- 노무현 재단 홈페이지(2013)

노무현 대통령은 유시민 전 장관을 볼 때마다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강의하고 책 쓰고 그러는 게 훨씬 낫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참모인 안희정에게는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농사나 짓게”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번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반면 비서실장인 문재인은 정치를 하기 싫다는 의사를 거듭 피력했음에도 “자네 같은 사람이 잘 적응만 하면 정치를 하는 것도 괜찮지”라면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당연히 이들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 바탕에 깔린 말들이다. 결국 유시민은 그의 조언대로 정치를 접고 작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안희정은 뒤늦게 농사나 짓고 사는 편이 차라리 나을 뻔했다며 후회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문재인은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되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특혜와 반칙이 없는’ 세상은 ‘시민 권력’에 의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그러나 계승되어야 할 노무현 정신만 살아온 것이지, 여전히 그러한 세상이 도래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성찰이 필요한 때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 후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작가로서의 자유로운 영혼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노무현 정신의 구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명감 사이에서 고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유 작가는 그 자신이 오래전 인용한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늘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자주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참아내지 못할 정도의 ‘노여움’은 아니라고 본다.

그 노여움의 수위에 이르게 하지 않기 위해 유튜브 방송도 하는 것이리라. 유시민의 세련된 논리를 좋아하지만, 유시민을 호출할 만큼 정치 시장이 빈약하지는 않으며 장차에도 그러리라 믿는다. 결코 유시민 작가가 등판해야 하는 환경은 없을 것이며 또 없기를 바란다. 그는 4년 후 ‘날씨만 좋으면’ 한 낚시터에 가 있으리라. 그가 ‘대답하지 못한 질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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