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통합의 새 시대를 갈망하며

발행일 2017-12-26 19:54:0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나라 걱정에 백성의 한숨 깊고 길어좌·우 대립 좁혀지지 않고 갈등 증폭문 정부 ‘국민 통합 리더십’ 보여줘야”



한 해의 노을이 붉게 물들어간다.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다. ‘정유년’을 맞으면서 새로운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대통령탄핵과 구속’이라는 ‘쓰나미’에 온 국민이 나라의 기둥을 붙잡느라 허우적대었던 것 같다. 그도 모자라 북한의 핵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른 전쟁위험의 ‘토네이도’마저 겹쳤다. 대내외적인 경제환경은 또 어떤가. 미국의 금리인상,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미국의 FTA재협상 카드 등 외부적인 경제환경에다 유가급등, 원화절상, 금리인상이라는 소위 ‘신 3고’의 파도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해소할만한 리더십도, 화해와 협치를 통한 국민통합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요즈음 시중의 화두는 온통 ‘나라 걱정’이다. 백성의 한숨이 깊고 길다. 어묵을 파는 가게 앞에서도, 붕어빵 리어카 앞에서도 “장사가 안되어서 큰일이다”라는 말뿐이다. 서민경제가 바닥인데도 새 정부는 과거 정부 ‘비리 파기’에 올인해야만 할까? ‘소득 증대를 통한 성장’이라는 실현성 없는 대책에만 매달려야 할까? 정치판마저 4당이 서로 응얼거리느라 국민의 삶은 뒷전이 된 지 오래다. 북한의 핵도발을 두고 미ㆍ러ㆍ중ㆍ일이 이해타산을 셈하느라 한반도 상공에 전운마저 짙다. 이를 두고 ‘구한말’과 비견된다는 세간의 푸념이 나올 정도다. 참 딱한 것은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국회의원은 세비를 인상하고, 보좌관 숫자를 늘리는 등 자기 잇속 챙기느라 급급하다. 어쩌면 정권을 잡은 쪽이나, 잃은 쪽이나 매일반일까?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던 그 정치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나라가 이만큼 유지되고 있는 것도 묵묵히 자신의 삶의 밧줄을 당겨온 민초들 덕분이다. 가뭄이 타면 뿌리를 더 깊이 내려 생명줄을 잇는 나무처럼 터진 손등을 아랑곳하지 않고 밭을 일구어 가는 그들의 피와 땀의 대가이다. 국난 극복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국민의 단합된 힘이다. 하지만 새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좌ㆍ우의 대립이 좀체 좁혀지지 않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국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리 나쁜 과거라도 과거로서 존재할 뿐이지 결코 청산될 수 없다는 점도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다. 그렇다고 덮어두자는 뜻은 아니다. 국민은 어느 선에서 매듭을 짓고 더 큰 미래로 나아가는 큰 정치를 여망하고 있어서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사면’도 필요하다. 정치권력은 국민의 생각을 존중했을 때 힘과 빛이 발하는 법이다.

흙탕물을 아무리 퍼낸다고 맑은 물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맑은 물을 끌어들여야 한다. 지금 우리 시대 가장 필요한 것은 화합의 푸른 강물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 남아프리카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의 정치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극심한 흑백 인종분리 정책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투옥되었다. 1961년 영국에서 독립된 이후 흑백 분리정책은 도를 넘었다. 심지어 흑인과 백인은 같은 동네에 살 수 없고, 같은 버스도 탈 수 없었으며, 백인이 다니는 학교에 흑인은 발을 들여놓을 수조차 없었다. 만델라는 인종분리 정책에 항거하여 27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들을 용서하고, 화해와 통합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헌신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너무 부끄럽다. ‘칼’만 있지 ‘사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라는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갈 뿐 밝은 미래로 향한 화해와 통합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아서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로 정권을 획득했다면 포용과 화해가 훨씬 쉽지 않을까? 인재등용도 꼭 자기 쪽 사람이어야만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함량 미달의 장관이 자주 도마 위에 오르고, ‘원전중단’ 등과 같은 정책의 실패마저 간혹 눈에 뜨인다. 특히 북한의 핵도발로 인한 ‘전쟁위험’이라는 뇌관이 쉬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민이 불안하다면 정부의 소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정유년이란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쓰러진 풀 포기를 움켜잡으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420여 년 전 ‘정유재란’도 딛고 일어선 민족이 아니던가. 극심한 어려움을 딛고 일어났을 때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 새해의 큰 해를 솟아나게 하려면 12월의 푸른 바다에 온갖 추한 것들을 담그고 씻어내야 한다.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은 어쩌면 처절한 반성을 통해 자신을 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딴은 똑바로 걸어왔다고 자부했지만 내가 찍은 발자국조차 삐뚤삐뚤하다. 긴 여운을 품고 울리는 저 제야의 종소리처럼 ‘화해와 통합’의 새 시대가 열리기를 기도해 본다.최해남시인·수필가전 계명대학교 겸임교수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