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서정

발행일 2018-12-19 20:03:2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여정·현송월의 방남으로 시작해평창올림픽·지방선거 등으로 후끈‘다정다난’이란 말이 어울리는 한해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황금 개띠로 상징되던 무술년 새해를 맞은 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덧없는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지는 연말이다. 이처럼 세월은 소리 없이 흘러가건만 정작 우리는 지나간 날에 대한 무슨 애환이 그렇게도 많은지 아쉬움에 들뜬 분위기다.

한 해가 저물 때마다 늘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수식어를 즐겨 쓴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른 것 같다. 설 전후부터 국내외를 달군 김여정과 현송월의 방남과 여자컬링 “영미∼”로 더 많이 기억되는 평창 동계올림픽, 해빙무드, 남북·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방선거, 소득주도성장과 빈부격차의 심화,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악화, 김정은의 답방 여부가 망년까지 뜨거웠던 걸 보면 다정다난(多政多難)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정치의 한해였던 것 같다.

어쨌든 세월은 쏜살같다.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첫 시간 새내기들에게 “세월은 유수 같고, 대학 시절은 총알처럼 스쳐 가니 후회 없는 학창시절이 되어야 한다”고 매번 강조하였다. 정녕 본인은 그렇게 살지 못해놓고 말이다.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회갑을 지나 정년까지 맞았다. 그 후부터는 세월에 가속이 붙었는지 세월은 들러야 할 곳을 들르지도 않고 그냥 못 본 채 지나감을 느끼는 송년이다. 이제 와 요즘에 생각하니 늘 해온 그 말의 참뜻이 더욱 진하게 밀려온다. 그래서 더 황량하다.

좀 이른 고교동기 송년 모임에 갔다. 매번 집 근처에서 하기에 편하다. 두 달마다 만나는데 많을 때는 한 20명 정도인데 15명이 나왔다. 언제부턴가 나오는 숫자도 분위기도 예년과 달라져 간다. 술은 취하도록 마시고 2차는 기본이었는데 요즘은 소주 3병도 남긴다. 소위 술꾼들도 서로 눈치만 본다.

말수도 전과 다르다. 늦게 출가한 딸이 마흔에 기다리던 첫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 경제가 어려워서 힘들다는 푸념, 세상 돌아가는 얘기와 걱정, 간혹 던지는 ‘아재 개그’ 정도다. 그래도 만나는 식당은 차츰 고급화되어가고 시간도 잘 지키며, 앞으로는 점심에 만나자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쉬는 친구가 많아진다는 증거다. 참 부담 없는 친구들이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한 친구가 보여준 통계 수치의 설명이다. 지금 나이가 67세라면 7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54%며, 80세까지는 30%, 85세는 15%, 90세는 5%라는데 놀랐다. 모두 100세 시대라는데 친구 10명 중에서 3명만 80살까지 산다고 생각하니 왠지 뭉클해진다. 이제 10년 남짓 남은 셈이다. 노래방도 생략하고 내년에 보자며 일찍 파했다.

집으로 가는데 기분이 좀 그렇다. 별로 이룬 것도 없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는 허전함이다. 그러려니 하자. 아쉬움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자. ‘살아 있음을 매사에 감사하라’는 말의 의미가 떠오른다. 올해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내년을 맞이할 수 있음에도 감사하자. 새해엔 또 다른 희망이 있기에 감사하자. 설령 그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해본다.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시각이지만 혹 감사해야 할 사람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연말이기를 바란다.

필자가 주관한 성주중·고동문회 송년회의 초대장도 ‘희망을 나누는 송년회’로 명하여 청했고 어제 성황리에 마쳤다. 회장 인사도 후회나 걱정보다는 새해를 맞는 기쁨과 희망을 다 함께 노래하자고 했다. 환골탈태하는 기해년을 염원해서다.

양재천 칼바람이 매우 차다. 올해는 이십여 년간 몸담았던 대학에서 정년 퇴임도 하고 첫 손자 재범이도 태어났다. 이만하면 축복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올 송년에 그려지는 감정인 송년 서정은 ‘희망’으로 대미를 마무리하련다.

정초 3일 자 본보 아침논단에 ‘무술년에는 충신이 그립다’를 필두로 졸필을 쭉 게재하였다. 독자 여러분께 올해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지난 한 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성탄의 축복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이상섭객원 논설위원전 경북도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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