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중심에서 한 발짝만 비켜서면

발행일 2017-07-25 20:18:4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학생들이 해야하는 일에좋아하는 것을 살짝 덧입히면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고등학생 몇 명과 담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장래희망이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하루하루 해야 할 학업의 양도 따라가지 못해 힘겨운데 꿈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재미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목표가 있어야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덜 힘들 거라는 조언을 늘어놓는다. 아무도 동의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선생님은 학창시절에 꿈이 있었느냐. 그 꿈이 이루어졌느냐고 반문한다. 뜨끔했지만 내 기억장치에는 학창시절이 그런대로 재미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확신을 주지는 못하고 자리를 파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너무나 밝은 목소리다. “친구야, 나 드로잉 시작했어. 오늘 첫 수업을 하고 왔는데 내 손이 어떻게나 잘하던지. 가슴이 뛰는 걸 주체할 수가 없네. 너무너무 좋아.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 그녀의 목소리는 지구 밖으로 통통 튀어오를 기세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는 이십 대부터 그림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직장과 결혼, 육아와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에 밀리고 밀려 그녀 속 어딘가에 침잠하고 말았던 소망이었다. 시간에 쫓기거나 일에 치여 삶에 멀미가 날 때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요량으로 내게 말하곤 했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아이들이나 시댁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면 꼭 그림을 하고 싶다고.

그런 열병 같던 열망이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좋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 일보다 더 기쁜 것은 그녀의 부지런하고 책임감 넘치는 삶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이다.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환한 미소가 보인다. 덩달아 기뻐지는 내 진심이 전해졌나 보다. “이제 시작이니 언제까지 선을 그리는데 묶여 있을지 모르지만, 첫 번째 그림으로 너를 그려줄게. 내가 젤 해주고 싶은 선물이야.” 행복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하더니 맞는 모양이다. 나도 덩달아 종일 기분이 들뜬 날이었다. ‘존경받는 일,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살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이것이 평소 내 지론이다. 그래서 두 아들을 키우며 성적에 별로 연연한 적은 없다. 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때때로 성공한 자녀를 자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성공 뒤에는 그만한 자기희생이 있었을 것이고, 그 결과는 달콤한 열매일 터이다. 나는 진심을 담아 기뻐해 주고 기꺼이 손뼉을 쳐준다. 결과물을 위해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일이라면 귀천이 있을 수 없기에 그 결실의 크고 작음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으리라. 늘 하고 싶은 일 쪽으로 발길을 두며 살아온 편이다. 내 시간적 자유로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지인들이 있다. 나는 정당하게 얻은 자유에 대해 언제나 당당 하려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라 주장한다. 물론 어느 정도 미안한 마음이 깔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 전직은 논술교사다. 요일마다 수업시간이 다르니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때로는 밤 10시가 넘어 귀가하는 날도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를 기다리며 굶을 게 뻔했다. 궁여지책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양념으로 곁들이며 밥하는 법을 가르치게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전기밥솥에 밥하는 법을 가르쳤다.

3학년 때는 라면 끓이는 방법을, 4학년이 되었을 땐 김치볶음밥 만들기를 차례로 가르쳤다. 가혹한 엄마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자유로운 내 시간의 발단이며 원천이다. 세계행복지수 순위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는 중하위권으로 특히 청소년 행복지수가 낮다는 결과를 보면 가슴에 찬바람이 인다. 유럽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덕이라는 통계도 있다. 해야 할 일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고통은 이만저만 아닐 터이다.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보면 그때 꼭 하지 않았어도 아무 문제없을 일이 더 많다. 때때로는 왜 그리도 안달복달했던가 싶어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

학업의 무게에 짓눌린 학생들의 표정이 마음에 맺힌다. 그들의 무게중심을 약간만 옮겨주고 싶다. 해야 할 일에 좋아하는 일을 살짝 덧입히면 더 많은 가능성이 그들 앞에 열리지 않을까. 악기나 그림이나 춤 등 그 무엇이라도. 진심으로 그들의 어두운 시간에 작은 빛을 불어넣어 주는 어른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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