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재앙길 vs 소중한 추억길

발행일 2014-04-21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여객선침몰 ‘수학여행 존폐’ 논란

안산 단원고 교장과 교사 10여명이 지난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 단상 위에서 무릎을 꿇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이를 본 학부모들은 단상 앞에 나와 물통을 던지고 고성을 지르는 등 학교 측 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연합뉴스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의 여파로 수학여행 폐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실종자 대부분이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초ㆍ중ㆍ고 수학여행을 없애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수학여행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안전사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당기간 수학여행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상황이다.

◆ “아이들 못 지킬 바에 차라리 없애자”

여객선 침몰 사고로 학생들의 단체여행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이지면서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수학여행 폐지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사고 사흘째인 18일 전국 시ㆍ도교육청 홈페이지에는 수학여행을 폐지해 달라는 학부모들의 글이 빗발치고 있다. 20일 오전 10시 기준 대구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만 94건에 달한다. 또 수학여행을 앞둔 학교들에도 학부모의 수학여행 취소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한 학부모는 “수학여행은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기 때문에 항상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관광버스에 여러 대 타고 한 번에 대규모 이동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기차와 비행기, 선박은 상당히 위험하다”며 “어느 부모가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여행에 자식을 보낼 수 있겠냐”고 했다.

다수의 네티즌도 수학여행 폐지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 중인 ‘정부에 촉구합니다. 초ㆍ중ㆍ고 수학여행, 수련회 없애주세요’ 이슈 청원에는 20일 오전 11시 기준 2만7천여명이 찬성 서명을 했다. 18일 오후에는 접속자가 많아 이슈 청원 페이지가 잠시 마비되기도 했다.

이번 여객선 침몰로 수학여행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자 교육부는 수학여행을 당분간 전면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지역 일부 학교는 사고 당일과 다음날 현장체험학습을 떠났다. 또 이달에만 12곳의 학교에서 졸업여행과 수학여행 등의 단체여행이 계획돼 있다.

◆ 수학여행 폐지 청원 “멀리서 생각하자”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로 ‘수학여행 취소’를 요구하는 학부모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수학여행을 앞둔 일선 학교는 여행업체와의 계약 파기로 인한 금전적인 문제로 선뜻 취소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대개 학교와 여행업체의 계약에서 위약금은 계약금의 두 배에 달한다. 특히 제주도나 일본 등 해외를 장소로 정한 학교는 수학여행을 취소할 경우 수천만원의 위약금을 물어내야 한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 학교 관계자는 “수학여행은 학교 경비를 지출하는 행사 중 가장 큰 금액이 든다. 그래서 1년 전에 미리 계약을 해두고 세부적인 계획을 조율하는 편이다”며 “당장 다음달 일본으로 가는 수학여행이 계획돼 있는데 취소하면 5천800여만원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돼 난감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수학여행 폐지를 반대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고 이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수학여행 폐지 청원 반대합니다. 조금만 멀리서 바라봐주세요’ 등 수학여행 폐지를 반대하는 내용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는 가슴 아프지만, 이 사고와 수학여행은 별개라고 본다. 학업 스트레스가 유난한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몇 안 되는 교실 밖 체험으로 학생들을 설레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수학여행의 교육적 효과는 분명하다. 수학여행의 단점만 보지 말고 학생들의 추억을 지켜달라’고 썼다.

‘수학여행 폐지 반대’ 청원 글에는 찬성과 반대로 나뉜 네티즌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대구에 사는 박모(30)씨는 “세월호의 침몰사고로 수학여행 등 외부활동을 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수학여행을 폐지한다고 해서 이와 같은 사고가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며 “‘수학여행 폐지’가 아니라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의 안전보장을 위한 법적 규제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창규 기자 so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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