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기 1942-2000 만다라’전…국내 비디오 아트 선구자가 지나온 35년

발행일 2015-01-28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대구서 사업하며 작품활동 펼쳐
5월25일까지 현대미술관 과천관



“다만 테크놀러지는 나의 손에서 인간적으로 변모되길 바란다”

박현기(1942~2000)는 돌, 흙, 나무 등 한국적인 자연의 소재를 영상매체와 결합한 작품으로 국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그의 인생과 예술을 돌아보는 전시가 ‘박현기 1942-2000 만다라’라는 제목의 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다.

일본 오사카의 가난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박현기는 해방 이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홍익대에서 서양화와 건축을 두루 공부한 그는 대구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며 번 돈으로 모니터를 사 작품활동을 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며 1984년 한국을 드나들기 시작한 데 반해, 박현기는 1970년대 말부터 영상매체를 작품에 활용하며 독특한 비디오 작업을 해나간 작가라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소개했다.

1980년 ‘무제’ 작품에서 작가는 돌의 영상을 담은 모니터를 실재 돌 사이에 끼워놓았다. ‘비디오 돌탑’으로도 불리는 그의 대표작이다.

1997년 미국 뉴욕 킴포스터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 출품한 ‘만다라’는 수많은 포르노 사진을 합성해 성(聖)과 속(俗)의 모호한 경계를 언급한 작품으로 꼽힌다.

만다라는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불화(佛畵)를 말한다.

그의 작품은 다분히 동양적인 소재나 사상을 연상케 하는데, 이러한 바탕에는 작가 개인의 경험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현기는 한국전쟁 당시 대구에서 피란민들이 현지 무태고개를 넘어가며 돌탑을 쌓는 모습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서구식 교육을 받았지만 1960년대에는 대구 근교의 남평문씨 세거지(世居地)에 있는 ‘광거당’(廣居堂)이라는 곳에서 전통문화를 배웠다.

자신의 동경했던 백남준과는 교류를 이어나가 국내외에서 전시를 열 때면 때로는 상호 방문하기도 했다.

회고전 성격의 이번 전시에선 2012년 기증된 2만여점에 달하는 관련 자료가 정리돼 그 중 일부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박현기의 1965년 학창시절 메모부터 2000년 임종 직전 스케치까지 35년간 그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관람객들과 만난다.

5월25일까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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