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검·경만 어름거렸나

발행일 2014-07-28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괴담천국과 책 읽기

서상호

주필

얼마 전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지금 우리나라는 ‘책을 안 읽는 시대’이며 그래서 ‘무식을 권장하는 시대’가 됐다고 탄식했다. 모처럼만에 용기 있는 지식인을 본 것 같다.
세월호참사 그리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의 죽음을 둘러싼 국가의 무능과 온 나라가 괴담과 유언비어에 휘둘리는 국민의 불신을 보면서 지금 우리나라가 장 교수가 걱정한 ‘무식을 권장하는 시대’에서 어느새 ‘무식의 시대’로 바뀌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남 순천서 발견된 유 전 회장의 시신처리를 보면서 국가의 무능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던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매실밭 주인의 변사체 발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시신이야 80% 백골화가 진행됐으므로 몰라볼 수 있지만 어떻게 그가 입고 있었던 로로피아나라는 1000만원짜리 점퍼와 금이빨 10개를 보고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단 말인가. 순천지역서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모두 52건의 변사체가 발견됐다고 한다. 다른 52건과는 너무도 다른 차림새였을 텐데 말이다.
1차 부검을 한 민간의사가 DNA 채취가 쉬운 근육을 보내지 않고 가장 어려운 뼈와 치아를 보내 시간을 끌게 한 것과 합쳐 일부러 어름거린, 거대한 ‘순천의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 구원파의 우세지역인 만큼 이와 연계되었거나 아니면 정치적 이해관계와 연계되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공교롭게도 박지원 새정연의원은 그것도 국회라는 공인의 장에서 ‘유회장의 변사체 발견시기가 지난달 12일보다 앞선 4~5월 쯤’이라는 정국 흔들기도 시도했다. 잘 안 먹히자 이를 제보한 주민은 ‘착각한 것 같다’고 물러서고…. 야당 중진이 괴담에 참여하다니 참으로 이상하다.
그렇다고 국가의 무능을 비판하고 있는 지식인들 소위 먹물들이라고 나은 것도 아니다. 검ㆍ경 수사공조가 안 된다는 것은 이제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 5월 25일 순천의 숲속의 추억이란 별장을 급습했을 때 검찰은 경찰에 알리지도 않고 유 전 회장의 검거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수사공조의 실패에서 온 실패라고 온 먹물들은 난리를 쳤다.
불러서 수사하는 ‘앉은뱅이 수사관들이 현장을 뭘 안다고 홀로 가느냐’는 거다. 그럼 경찰과 같이 갔다면 잡았을까. 전혀 아니다. 그 다음 날 전남경찰청이 나서 정밀수색을 했다. 그들도 역시 비빌의 방은 발견하지 못했다. 검찰 혼자 갔기에 못 잡은 것이 아니었다.
검찰의 수많은 작전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만은 이해되는 것이 ‘수사보안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대목이다. 이는 황교안 법무장관이 국회증언서 ‘정보가 유병언측에 전달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이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한다. 적어도 숲속의 추억에서 유 전 회장을 놓친 것만은 수사공조를 안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숨진 자리 근처에 술병이 3개 있었다. 유씨는 술을 먹지 않는데 왜 술병이 있느냐고 먹물들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자연사냐 타살이냐를 판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러나 유씨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술을 먹는다고 수행비서가 TV에 출연하여 증언했다. 먹물들의 지식불통이다. 불통은 정치권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유씨의 죽음이 자연사냐 타살이냐에 대해서는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다. 특히 국과수가 이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는 결론 내릴 수 없다고 확언을 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적어도 과학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너무도 믿기지 않는 죽음이기에 그러하겠지만 국과수가 ‘부계 모계의 유전자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발표했고, 더욱이 배다른 동생이라면 모계유전자가 맞지 않는다고 과학적으로 증언하지 않았던가.
믿는 것만 보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확증편향이나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선택적 노출이나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결론을 내린다는 선택적 지각현상 등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회심리현상을 보는 것 같다. 책을 읽어 어느 사건의 주변세계나 관련학문에 조예가 있다면 괴담이나 유언비어로부터는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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