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제이크 레빈 교수, 한국 문학작품 최초 전미번역상 수상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계명대 문예창작학과 제이크 레빈 교수가 서소은, 최혜지씨와 공동으로 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를 번역해 전미번역상을 수상했다.전미번역상은 미국문학번역가협회(ALTA)가 주관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번역 전문 문학상으로 1998년에 제정돼 매년 시와 산문 부문으로 나눠 뛰어난 번역으로 영문학에 탁월한 공헌을 한 번역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우리나라 문학작품이 전미번역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유명 작품이 아니라 비주류 작품을 번역해 수상까지 하게 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는 그동안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작품으로 페미니즘을 다룬 시다.레빈 교수는 “외국인 남자로서 한국의 정서를 이해하며 여성의 이야기를 번역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그는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직역해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며, 작품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학 활동”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양에서는 한국의 문학 작품이 진지하고 우울하다는 평이 강한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한국의 정서와 번역하는 언어에서 문화적 차이가 있어 그렇게 평가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이어 그는 “특히 시는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 더욱 까다로운 작업인데, 한국 시 역시 재미있고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아 한국문학을 공부하고 번역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레빈 교수는 “최근 들어 한국 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위상이 높아졌지만, 고전이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며 “한국의 문학 작품이 한류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번역 활동을 계속 이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지난 2017년에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임용돼 활발한 번역활동을 하고 있는 제이크 레빈 교수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도 강의를 맡고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현대 한국문학의 자산은 대구를 토대로 성장했다

“대구문학관은 올해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해 어려웠으나 애틋했던 피란문단을 되돌아보면서 당시의 흔적들을 찾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구문학의 찬란했던 경험을 각별하게 되새기고 자료로 남기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대구문학관 이하석 관장은 현대 한국문학의 자산은 70년 전 한국전쟁 당시에 대구를 그 토대로 한다고 설명했다.1950년 전쟁이 발발하고 한반도가 초토화되다시피 하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막다른 심정으로 대구나 부산 쪽으로 피난을 왔다. 그 중 문학은 서울 쪽 문단과 대구 문단이 모두 대구로 모이는 독특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전쟁 초·중반 대구 문단의 큰 특징은 ‘전선문학’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임시수도인 대전에서 종군문인단인 ‘문총구국대’가 결성되고 조지훈, 김광섭, 서정주, 김송, 박목월 등이 참여했다”면서 “이어 대구에선 ‘문총구국대 경북지대’가 발족했는데 이효상, 이윤수, 김사엽, 김진태, 백락종, 유기영, 김동사, 신동집, 이호우 등이 구성원이다. 이후 전세가 악화되자 대전에 있던 문총구국대가 대구로 내려오게 되고, 문총 경북지대 문인들과 합류한다”고 설명했다.또 그는 “전국의 많은 문인들이 지역의 문인들과 함께 향촌동을 중심으로 이색적인 문단을 형성하고 술과 노래와 시와 기행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며 “가난과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종군작가로서 활동하고, 다방과 음악 감상실 등을 거점으로 서로 따뜻하게 소통하면서 문학을 꽃피웠다”고도 했다.또 전쟁은 대구에서 출판문화가 융성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1950년대 대구의 대표적인 출판사 중 한 곳이었던 청구출판사는 백기만의 ‘상화와 고월’(1951) 등을 출판했다. 지금의 대구문학관 건너편에 자리해있던 출판사 ‘문성당’에서는 모윤숙의 ‘풍랑’(1951), 유치환의 ‘청마시집’(1954) 등을 펴냈다. 대구의 중견 출판사 ‘학이사’의 전신 ‘이상사’도 한국전쟁 때 국내 대표 출판사들과 함께 대구에 피란 와 둥지를 튼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관장은 “이 무렵 갓 출간된 백기만의 저서 ‘상화와 고월’이 호평 속에 읽히자, 두 시인의 호를 딴 ‘상고(尙古)예술학원’이 남산동에서 문을 열기도 했다”며 “교무처장인 소설가 최인욱의 권유로 조지훈, 박영준, 박기준, 구상 등 문인들과 함께 최정희도 이때 문학강좌를 맡았다. 잘 됐으면 ‘문예대학’으로 클 뻔 했으나, 휴전 후 최정희를 비롯한 피란문인들의 대부분이 환도하는 바람에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아무튼 이런 바람들이 대구 문학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평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