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지금이 참으로 평화로운 시대 맞나

“지금은 참으로 평화로운 세상이다.” 텔레비전을 보던 어머님 말씀이다. 느닷없이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으냐. 말로만 하고 그치지 않느냐.” 그러면서 6·25 전쟁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옛날이라지만 아직 당사자가 살아있는 현재의 이야기다.생각해보니 참으로 혼돈의 연속이었다. 진보와 보수는 일제하 임시정부에서도, 해방정국에서도 ‘이념 전쟁’을 그치지 않았다. 그 정점이 6·25였다. 북의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고 무고한 생명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갔다.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이 끝나도 이념 전쟁은 계속됐다. 돌이켜보면 서로 죽이고 죽는 생사를 건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젠 최루탄과 보도블럭 대신 말로 하는 전쟁이 대세가 됐으니, 평화시대가 온 것인가.약산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된 것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의 집결이라며 김원봉이 조국 광복에 공헌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기념사가 다시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에서 평가가 대비되는 채명신 장군의 공적을 추켜세우고는 ‘이제 이념의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김원봉의 공적을 언급한 것이다.김원봉은 6·25때 월북해 김일성 정권에서 노동상을 지낸 인물이다. 비록 그의 조선의용대가 광복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6·25 전사자 유족들이, 천안함과 연평해전 사망자 유족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충일 추모 현장에서 김원봉을 불러내는 것은 참으로 부적절했다며 보수 세력들은 펄쩍 뛴다.문 대통령의 이런 역사적 사실 불러내기는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이미 경험했다. 문 대통령은 친일잔재 청산은 미뤄둔 숙제라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에게 ‘빨갱이’는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였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해방 후에는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였다. 양민학살과 간첩조작, 민주화운동에서 국민을 적으로 모는 낙인으로 사용됐고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희생됐다는 것이다. 그런 빨갱이가 색깔론으로 변형되어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공격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문 대통령이 과거청산을 국정의 제일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쾌한 증거들이다. 경제문제, 북핵문제, 사회갈등 문제 등 지금의 국가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앞서 과거 청산부터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보수와 진보 간 이념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이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를 편 가르기 할 소지가 충분하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김원봉 소환은 “이제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시대는 지났다”는 대통령의 의지와는 정 반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더 크다.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훈구파 중심의 반정 세력에 포위된 중종은 마침 등장한 사림파의 신예 조광조에 마음이 쏠렸다. 왕의 신임을 업은 조광조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훈구파를 몰아내고 국정을 혁신하려 한다.조광조는 반정 정국공신이 너무 많다며 공적을 새로 심사해 무자격자의 공훈을 박탈한다. 117명이나 되는 정국공신 중 76명의 공훈을 박탈하고 지급한 토지도 몰수한다.그러나 훈구파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림파가 설쳐대는 꼴을 못마땅해 하던 훈구세력들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역심을 품었을 리 없다는 대신의 충고에도 중종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왕도 조광조의 개혁 드라이브에 조금씩 싫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조광조는 귀양지에서 1달 만에 끝내 사약을 받는다. 36살 조광조만 죽은 것이 아니다. 그가 척결하려던 기득권이 다시 살아났고 혁신하려던 조선의 역사는 후퇴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중종 14년의 일이다.옛날에는 이념 전쟁에서 이기면 반대파를 합법적으로 때려죽이거나 사약을 내렸다. 그러니 ‘막말’이라며 상대와 말로만 정쟁을 벌이는 지금이야말로 참으로 평화시대를 맞은 것인가.

김원봉은 벌써 서훈을 받았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지난 현충일 추념사를 두고 논란이 들끓는다.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광복군 합류를 독립운동 집결의 계기로 평가하고, 이를 국군창설의 뿌리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로까지 연결시켰다. 이는 터무니없는 비약이다. 김원봉 서훈을 위한 사전 포석이거나 보수진영에 친일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독립운동 띄우기’라면 이는 생각이 짧은 하수다. 누울 자릴 보고 발을 뻗으랬다. 타이밍도 전혀 아니다. 상식이 안 통하는 느낌이다.김원봉은 조선의열단장, 조선의용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으로 활약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다. 그의 현상금은 당시 100만 원으로 김구의 60만 원보다 많았고,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20여억 원에 해당한다. 이는 약 540여억 원의 ‘오사마 빈 라덴’ 이전엔 세계 최고 현상금이었다고 한다. 일제를 가장 괴롭혔던 인물이 김원봉이고, 그래서 가장 제거하고 싶었던 인물도 또한 김원봉이라는 사실을 일제 스스로 공인한 셈이다. 하지만 독립운동 노선에 있어서 그는 주류인 임시정부 요인들과 많은 갈등을 빚었다. 외교적 노력에 치중한 이승만은 말할 것도 없고, 임시정부의 김구와도 사사건건 갈등하였다. 함께 일하기 힘든 독불장군냄새가 난다. 김원봉의 조선의용대도 최창익을 비롯한 주력부대가 북한 연안파의 모체가 된 화북지대로 분열하였다. 이런 상황을 보면 그 당시 광복군의 분열상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충분히 감이 온다. 시대가 바뀐 지금의 객관적 시각으로 보면 그 어느 노선도 독력으로 독립을 쟁취할 실력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미군 참전과 핵 투하가 종전과 광복을 가져다준 결정적 사건이었고 광복군의 역할이 미진한 상태에서 내분은 실망스럽다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김원봉은 광복에 대한 그 기여도 여부를 떠나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빼어난 독립투사였음은 분명하다.해방 후, 김원봉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였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초대내각 국가검열상으로 북한 정권 서열 7위였다. 6·25 전쟁 중에 국가검열상과 노동상을 역임하였고, 1952년 그 공을 인정받아 최고훈장인 노력훈장을 받았다. 1958년 김원봉은 또 다시 노력훈장을 받았다. 이런 전력으로 보아 김원봉은 6·25 전범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1958년 숙청당했다. 독립 영웅이 반드시 정치 승자가 되는 건 아니다. 적에게 숙청당했다는 것이 그의 허물을 덮어줄 수 없다.김원봉은 두드러진 독립투사였지만 6·25 전범이기 때문에 6·25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현충일추념사에 거명할 인물은 절대 아니다. 남북으로 갈려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쪽을 선택한 사람에게 남쪽이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남쪽은 독립운동가 중에서 대한민국을 선택한 분을 그 공헌도에 맞추어 서훈하고, 북쪽은 그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택한 사람을 그쪽 기준에 따라 서훈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남쪽의 성과가 북쪽의 핵에 의해 송두리 채 빼앗길 개연성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양쪽이 한 사람을 모두 서훈해야할 당위성은 없다.세계는 지금 자국제일주의로 무장한 채 무역전쟁을 벌릴 태세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줄서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야말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지경이다. 이런 위중한 상황에서 리더는 무슨 생각인지 이념싸움을 돋우는 말들을 쏟아낸다. 편을 갈라 싸워보자고 팔을 걷어붙이는 꼴이다. 적전 분열은 필멸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병 등 국난에 임하여 나타났던 적전 분열 폐습이 나라 없는 암담한 처지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었음을 봤다. 막강한 적을 눈앞에 두고 벌렸던 헤게모니 다툼 내지 이념 투쟁이 지금 또 다시 우리 앞에 재현될 조짐이다. 서로 편을 갈라 피 터지게 싸우는 작태는 과거의 뼈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까닭이다. 나라가 안팎으로 총체적 위기에 처한 지금 상황에서 과거와 똑같은 과오를 왜 또 다시 저지르고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지금은 정신 바짝 차려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김원봉은 독립투사로서의 명성을 인정받아 북한에서 장관급까지 역임하고 최고 훈장을 두 차례나 받았다.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대가이자 서훈이다. 김원봉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다면 대한민국에서 그 정치적 성공은 장담할 수 없겠지만 독립유공자 최고 서훈만은 확실히 받았을 것이다. 그의 완벽한 평가는 통일 후에나 기대해 볼 일이다. 더 이상 논란은 국력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