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배경희
어두운 계단에서 봄을 열망한 우리는/좋아하는 소설을 바꾸어 간직한 채/꽃집을 바라보면서 다른 길로 향했다//길 가다 유리에 비친 여자를 바라보며/혼자 남은 시간들이 뛰어든 검은 물속/저녁은 두려운 삶을 남기고 서 있다//과거의 문장을 쓰다 남은 오늘 밤들/허구도 아름다워 재잘대던 그녀 모습/바람에 당신의 소문이 어렵게 들려오고//소설에 대한 열정도 마른 꽃 부서지듯/닭 공장에 늙어버린 당신의 꽃의 시간/문장에 눈물이 고여 물고기가 헤엄친다「공정한시인의사회」(2020, 07) 배경희 시인은 충북 청원 출생으로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흰색의 배후’가 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사물과 세상 그리고 자아를 투영하고 이미지화하는 시 세계를 추구한다.‘열망’을 보자. 전체적으로 소설과 관련지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두운 계단에서 봄을 열망한 우리는 좋아하는 소설을 바꾸어 간직한 채 꽃집을 바라보면서 다른 길로 향했다, 라고 시작한다. 이 장면은 눈에 잘 그려진다. 길 가다 유리에 비친 여자를 바라보며 혼자 남은 시간들이 뛰어든 검은 물속을 살핀다. 그곳에 저녁은 두려운 삶을 남기고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뒤이어서 과거의 문장을 쓰다 남은 오늘 밤들이라는 구절과 함께 허구도 아름다워 재잘대던 그녀 모습을 기억한다. 그 순간 바람에 당신의 소문이 어렵게 들려오고 있다. 넷째 수는 소설에 대한 열정도 마른 꽃 부서지듯 닭 공장에 늙어버린 당신의 꽃의 시간, 이라는 미묘한 이미지를 직조하다가 문장에 눈물이 고여 물고기가 헤엄친다, 라고 끝맺는다. 얼마나 많은 눈물이 문장에 고여야지 물고기가 그 속에 잠겨 헤엄을 칠까? 시인의 남다른 상상력에서 이러한 개성적인 작품이 생산됐을 것이다.그는 또 ‘가볍다는 것은’에서 참나무에 불붙이고 불길을 쳐다보다가 타버린 흰 재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것을 예의주시하면서 나무도 새의 깃털처럼 가볍고 또 가벼운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오래 전에 가벼움은 깃털이라고 단정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어서 무겁다 가볍다는 것은 마음의 차이일까,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살아온 생의 시간이 같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진정 무엇이 무거운가, 무엇이 가벼운가. 가볍고 무거운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결국은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여기고 있다. 실로 한없이 가벼운 것도 그지없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고, 몹시 무거운 것도 한없이 가벼운 것으로 생각될 때도 있으니 모든 것은 정말 마음의 문제일 듯하다.그런 점에서 ‘검은색 소파’를 읽는 일이 의미 있을 듯해서 아래에 옮겨본다.덜 깬 듯 누워있는 검은색 소파 위에//젖은 몸을 눕힌다 엉덩이의 몽상이듯/헛잠에 여러 생각이 중심을 잃고 헤맨다//아직도 서성이는 또 다른 바깥에서/부정의 시간들이 어둠에 휘어진 채//공중에 뿌리 내리고 헛뿌리로 살고 있다//이력서, 컵라면, 깡소주로 이어온 삶들//썩지 않은 꿈에서 썩은 꿈을 꾸려고//소파가 구덩이를 판다 검을수록 차분했다소파가 구덩이를 판다 검을수록 차분했다, 라는 결구가 인상적이다. 이 역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에 대한 궁구가 아닐까? ‘열망’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질 때 폭발적인 동력을 얻게 된다. 그 힘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견인하는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 ‘열망’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는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이정환(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