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가 말씀하시길/ 이근자

~의창에 비친 가족의 모습~…아버지는 점포 서른여섯 개에서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전형적인 한량이다. 히포는 그의 별명이고 하마 ‘히포포타무스’의 약칭이다. 하마는 온순한 듯 보이지만 변덕스럽고 공격적이다. 어머니 하 여사는 소비를 취미이자 업으로 살아가는 세 아이의 엄마다. 큰누나는 향락과 소비에 중독된 독신녀이고, 작은누나는 세달 전 평범한 샐러리맨과 결혼한 초보 주부다. 벌써 생활에 쫓기는지 하 여사에게 손을 벌리는 처지다. 나는 막내아들로 ‘무위’를 즐기는 대학생이다.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한 것이 인생목표다. 어느 날, 히포가 급성 신부전증으로 쓰러져 입원했다. 신장기능이 망가져 혈액의 노폐물을 소변으로 배출하지 못해 쇼크가 온 것이다. 혈액투석을 하고 있으나 신장이식이 화급하다. 제각기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던 가족들이 히포의 입원으로 인해 널찍한 병원 특실에 함께 모였다. 외부인인 자형으로 인해 다섯 식구가 제법 예를 갖추고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다섯 사람은 히포에게 간을 제공하기위해 정밀검사를 받기로 했다. 작은누나는 신혼으로 임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명단에서 뺐다. 검사과정에서 임신 중인 것으로 드러난 큰누나도 자동으로 제외되었다. 큰누나는 그런 명분을 지키고자 결혼을 서두르는 액션을 취했다. 그 남친이 느닷없이 병실에 나타나 예비 사위행세를 했다. 결국 하 여사, 자형 그리고 나까지 세 명만 남았다. 직계혈통인 내가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 그건 내 생활신조인 무위에 맞지 않다. 군대라도 가고 싶었다. 하 여사가 간이식 이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다른 선택지를 강구했다. 앞날이 창창한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히포를 설득했다. 히포는 내 신장을 원했다. 하 여사는 싱가포르에서 기증할 사람을 구해와 국내에서 시술하는 방법을 밀어붙였다. 하 여사만 믿을 뿐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친이 병실로 찾아와 살가운 정을 보여주었다.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어떤 여자가 병원 지하주차장의 아버지 차안에서 장시간에 걸쳐 열정적으로 울고 있었다. 병실 안에선 뜻밖에도 히포가 서럽게 울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내 신장 따윈 필요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 하 여사가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 뚱뚱하고 욕심 많은 데다 변덕스럽고 독단적인 아버지의 캐릭터가 히포라는 별명 속에 은근히 녹아있다. 부부관계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외도와 소비로 벌충하는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만은 살아있다. 첫째 딸은 어머니의 불행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독신으로 뻗대지만 결핍에 대한 공허함을 향락으로 달랜다. 둘째 딸은 정상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부족하다. 그래서 평범한 봉급쟁이와 살아가는 삶이 사상누각처럼 위태하다. 나는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무위’의 삶을 추구한다. 돈으로 연결된 취약성은 한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위기에 처하면 쉽게 부서진다.역경에 처한 뒤에라야 각자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신장이식이란 위기상황에 처하자 나머지 가족들의 의식은 느긋한 가운데 바쁘게 돌아간다. 돌발적인 비상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그에 따라 각자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 지가 관건이다. 엄청난 재산과 급성 신부전증이 다양한 미래변수로 작용하여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만들어낸다. 히포의 태도, 병의 경과, 신장이식의 성공여부와 히포의 생사 등이 예측하기 힘든 미래변수다. 가족과 그 주변인들 사이의 긴박한 숨결이 행간에서 흘러나온다. 날카로운 의식의 분주한 흐름이 숨 가쁘다. 오철환(문인)

찔레꽃 향기 속에

찔레꽃 향기 속에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향긋한 꽃내음에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새벽에 집을 나서 산소 찾아 올라가는 길, 짙은 안개가 볕에 걷히자 은은한 향내가 산길에 퍼져있다.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피니 하얗게 피어난 찔레꽃이 조상님 산소 앞 둑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반기는 듯하다. 코로나19에 별일 없었느냐고 안부를 묻는 것 같다. 어머니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코를 대고 한참을 들이켜 본다. 언제 그곳에 피어나 우리들이 찾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가. 찔레꽃의 꽃말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하더니. 우리를 “보고 싶다”. “그립다” 하는 이들이 계신다고 고하는 것 같다. 구정설이 지나 시작한 코로나19, 정신없이 번져가는 통에 벌초도 성묘도 제때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꼼짝없는 불안에 떨기만 하였다. 그러다 보니 한식도 지나고 이제 오월도 중순이다. 내일모레면 막내아들의 개학이다. 미루고 미루었던 등교 일정이 고3이라 어쩔 수 없단다. 입시가 코앞이라 더 미룰 수 없다고 하니 두고 볼 수밖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해외에서 대학원 공부하던 아들은 그곳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안 좋아져 귀국하였다. 공항에 내려 특별실이 마련된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왔다. 그곳 선별 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전신 방호복을 입은 택시를 타고 혼자서 짐 가방을 끌고 비어 있는 외딴집으로 갔다. 가족들 얼굴도 마주하지 않은 채 격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래저래 마음이 편하지 않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나날이다. 코로나19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도 또 어느 구석에 숨었다가 튀어 오르니, 마치 두더지 때려잡기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손으로 불안을 헤아리다가 마음의 위안이라도 받고자 산소로 향했다. 학생도 격리자도 모두 무리 없이 무사히 넘겨서 과정을 잘 마무리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재난지원금만큼이나 나가는 비싼 예초기를 샀다고 자랑하는 동생네와 함께 초록의 들판을 지나 산소로 향했다. 산소로 오르는 길은 수풀로 뒤덮여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구부터 예초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간다. 사방에 피어난 이름 모를 색색의 꽃들도 반가운 듯 향긋함으로 답한다. 잘린 풀에서 배어 나오는 풀냄새가 오랜만에 생기를 돋운다. 산에 오르자 저 멀리 푸른 들판 너머 풍경은 평화롭게 다가든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집에서 은둔하며 격리 생활을 하고 있을 이들의 눈빛이 그 위에 어른어른 겹친다. 하얀 찔레꽃은 산소를 에워싸고 피어나 장미보다 더한 향기를 전한다. 꽃향기에 취하다 보니 땀내 젖은 어머니의 품이 못내 그립다. 문득 어느 시인의 찔레꽃이 들려오는 듯하다‘닮은 듯 닮은 얼굴 누군가 그려 보니/ 흰 수건 동여매고 밭 매던 내 어머니/ 살며시 그 품에 안겨 밤새도록 우누나/ 엄마 품 그리워서 턱 괴고 바라보니/ 천사의 웃음으로 한없이 웃어 주신/ 찔레꽃 향기로 오신 보고 싶은 어머니"향기로운 오월을 장식하는 꽃 중에 찔레꽃도 한 몫을 하는 요즈음이다. 산소를 찾아 오르는 자식들에게 그리움을 속삭이듯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찔레꽃, 때 묻지 않은 수수함에 더 마음이 간다. 자리를 가리지도 않고 비탈진 언덕에 피어나 온화한 빛깔로 사랑을 전해주는 어머니의 꽃, 그 신중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엄마의 향기는 다시 찾을 길이 없지만 은은한 찔레 향기에 취해서 꿈속에서라도 엄마의 냄새를 더듬어 볼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언택트 시대에도 마음 속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주말 오랜만에 나들이하러 다녀온 지인은 그곳은 코로나19와는 상관없는 동네인 것 같더라고 하였다. 재난지원금으로 부모님 모시고 외식하러 멀리 남쪽으로 갔더니 식당마다 예약대기표를 받을 정도로 사람이 붐비더라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다. 지금 확진자 숫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잔불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또다시 살아나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리라.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마스크를 꼭 하고 다니고 무엇보다 손 씻기를 철저히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가능하면 덜하고 멀리하는 것이 나를 지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찾아오겠지만 그때까지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적당한 거리 유지로 버티기를 잘해야 하리라.붉은 황토 흙구덩이나 비탈진 언덕배기에서도 여유로운 자태로 의젓하게 버텨서 향기로운 꽃으로 그리움을 전하는 찔레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