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엑스포 스토리가 있는 체험형 야간산책로 인기

경주의 밤이 화려하게 빛난다. 경주엑스포가 신화와 이야기가 있는 체험형 산책로를 조성하고, 레이저조명 홀로그램으로 화려하게 단장해 밤을 밝히고 있다.경주엑스포가 ‘신라를 담은 별’이라는 주제로 이번 엑스포 기간에 새로 개발한 산책로 주변에 화려한 레이저조명을 설치해 밤하늘에서 별이 춤추고, 숲 길 곳곳에 빛을 쏟아지게 장치해 경주의 밤을 낮보다 더 밝게 물들이고 있다. 경주타워와 함께 이번 엑스포의 4대 킬러콘텐츠의 하나다.엑스포가 전국 최초로 선보인 야간 체험형 산책 코스 ‘신라를 담은 별(루미나 나이트 워크)’은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며 관람객의 발걸음을 야간의 경주로 이끌고 있다.산책로는 22년간 경주엑스포공원 내의 유휴부지로 머물러 있던 ‘화랑 숲’을 최초로 개발해 2㎞ 길이의 다양한 체험이 있는 둘레길로 탈바꿈시켰다.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조명으로 길을 밝힌 야간 산책길이 아닌 스토리가 접목된 체험형 코스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1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는 인터랙티브 탐험을 선보인다.‘신라를 담은 별’에 녹아든 스토리는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된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 토기’를 모티브로 경주엑스포가 자체 개발한 3D애니메이션 ‘토우대장 차차’가 이끌어 간다.‘토우대장 차차’는 악마에게 잡혀간 신라의 왕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신라 소녀 ‘유지’와 용감한 군인 ‘차차’(기마인물형 토기의 환생)의 모험이 그려진 이야기이다.이 이야기에 맞게 산책길 입구에서는 집채만 한 기마인물형 토기 동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본격적인 산책로에 들어서면 대형 ‘주령구’가 스크린으로 변해 스토리의 시작을 알린다.특히 이승과 저승의 이동통로를 콘셉트로 꾸며진 ‘시공간의 터널’은 화려한 레이저와 LED조명, 3D홀로그램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환상적인 체험의 장을 만들고 있다.관람객이 직접 북을 쳐 악마를 물리치는 ‘야샤와의 전투’ 코스를 지나면 경주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억새밭에 도달한다.지난 코스의 장면을 실루엣으로 다시 보여주는 둥근 모양 입체 스크린과 사방에 흩어져 비추는 조명이 흔들리는 억새와 어우러지며 가을밤의 정취를 절정에 이르게 한다.주낙영 경주시장은 23일 저녁 공무원들과 함께 둘러보며 “신라의 이야기와 유물, 유적을 빛과 첨단영상 기술로 재현한 점이 아주 훌륭하다”며 “경주엑스포 야간 프로그램이 관광객을 경주로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신라를 담은 별’이 펼쳐지는 ‘화랑 숲’은 낮에는 전국 최초 맨발전용 둘레길인 ‘비움 명상길’로 변해 고즈넉한 여유를 제공하며 화려한 밤과는 다른 ‘반전매력’도 선보이고 있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번 엑스포를 통해 경주지역에서는 최초로 야간 관광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며 “경주엑스포가 시도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많은 사람에게 즐거운 체험이 되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엑스포 맨발 둘레길 비움명상길로 조성해 인기

경주엑스포가 20여 년 동안 유휴부지로 남아있던 화랑 숲에 전국 최초로 맨발 둘레길을 화려한 첨단 기술을 접목해 조성했다.관광객들에게 여유와 힐링타임을 제공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경주엑스포 맨발 둘레길은 편안하고, 심심하지 않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해 밤과 낮의 느낌이 각각 다르게 조성했다.알찬 구성과 힘들지 않은 높낮이의 코스는 맨발걷기를 처음 접하는 입문자부터 수년간 맨발걷기를 실천한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맨발 걷기가 낯선 관광객들은 신발을 신고 산책을 하며 코스를 감상해도 좋다.총 2㎞ 코스인 ‘비움 명상길’은 호수와 억새풀, 야생이 키워낸 울창한 숲이 어우러지며 최적의 둘레길 코스로 재탄생했다.코스의 구성도 다양한 테마를 주제로 만들어져 구간마다 색다른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코스 중간에 있는 해먹 정원도 숲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잠시의 여유를 만든다.비움 명상길은 경주의 8색인 적색과 홍색, 황색, 녹색, 청색, 자색, 금색, 흑색을 주제로 조성했다. 해미석과 화강 디딤석이 신라 화랑이 지녔던 멈추지 않는 혁신의 길을 상징하고 콩자갈과 화강석 벽돌이 경주의 사철 소나무와 같은 푸른 청렴의 길을 상징한다.이 밖에도 야광 조약돌과 황토 세라믹볼, 소나무, 현무암, 편백나무 칩, 보석 자갈 등이 각자만의 이야기로 관광객을 맞이한다.또 자연 상태로 유지된 화랑숲 속에서 자생한 ‘사랑나무’와 ‘화살나무’ 등 비움 명상길의 매력을 더한다. 경주엑스포는 이 나무들을 자체 보호수로 지정해 꾸준한 관리를 한다는 방침이다.‘사랑나무’는 수령 1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참나무 연리목이다. 뿌리가 다른 나무가 자라면서 하나로 합쳐진 연리목이 됐다. 다정한 연인이 마주 보는 것 같은 이 나무는 하트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고 있어 사랑나무로 이름이 붙었다.화살나무도 독특한 모양을 자랑하고 있다. 나뭇가지를 따라 솟아 있는 코르크질의 가지 날개가 화살 깃을 닮아 화살나무로 불리고 있다.이 나무는 올해 비움 명상길 조성 공사 중 발견됐다. 수령이 60년 이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에서 발견된 야생 화살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류희림 경주엑스포 사무총장은 “비움 명상길은 주변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천연 힐링숲으로 조성해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며 “더 많은 체험콘텐츠를 접목해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비움명상길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철우 도지사, 출근 전 직원들과 황토길 맨발 걸으며 소통

황톳길 맨발 걷기 전도사로 불리는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25일 출근 전 직원들과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소통에 나섰다.이 도지사는 이날 이른 아침 대변인실 직원 30여 명, 박용선 경북도의회 운영위원장 등과 함께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경북도청 앞 천년숲 황톳길을 맨발로 걸었다.이날 황톳길 걷기는 오전 7시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 도지사는 이보다 이른 6시40분 출발지점에서 황토 진흙을 밟으며 직원들을 기다렸고 약속된 출발시간이 되자 이들을 0.8㎞ 황톳길로 이끌었다.이 도지사와 직원들은 천년숲 황톳길과 마사토길, 둘레길을 40여 분간 맨발로 걸으며 마음과 몸의 피로를 풀고 정보를 공유했다.출근 전 황톳길 맨발 걷기는 이날 대변인실을 시작으로 26일 미래전략기획단 등 이 도지사의 특별한 외부 일정이 없는 한 매일 60여 개 부서를 돌아가며 실시할 예정이다.이 도지사의 천년숲 걷기는 벌써 1년이 넘었다.지난 7월 취임 이후 이 도지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천년숲 황톳길과 산책로를 걸으며 하루를 시작했다.업무보고가 급한 간부 공무원들은 그의 천년숲 걷기 시간에 맞춰 나와 함께 걸으며 일을 보기도 했다.그로부터 1년. 이 도지사는 “고지혈증과 지방간 등이 나아졌다”며 맨발 황톳길 걷기를 예찬했다.이 도지사는 “직원이 건강하고 출근하고 싶어야 도민이 행복한 정책을 만들고 펼칠 수 있다”며 “도청 둘레길을 걸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소통, 건강한 조직문화로 새 바람 행복 경북 만들기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도는 매주 수요일 힐링 도청 둘레길 걷기와 수·금요일 정시 퇴근, 금요일 자율복장 출근(청춘데이), 업무 시작 전과 정시 퇴근 직전 해피댄스 등 자유롭고 가정친화적인 근무환경 조성을 도모하고 있다.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신발 벗고 맨발로 걷고 놀아요…교동초 맨발교육 '눈길'

대구교동초등학교가 맨발로 걷고 놀이하거나 수업하는 맨발교육을 진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올해부터 시작된 교동초의 맨발수업은 과학, 체육, 미술 등 운동장에서 수업이 가능한 과목이나 융합수업 시간에 이뤄지고 있다.그리기 수업은 빈 음료수 병에 물을 채워서 운동장에 그림을 그리고 반 학생 모두가 소통과 공감, 협력으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가는 방식으로, 미술과 체육의 융합 맨발수업으로도 진행된다.맨발놀이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희망하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놀이로 모래밭에서 개미집 짓기와 모래성 쌓기, 운동장에서 맨발걷기와 달리기, 비가 내린 뒤 운동장에서 물길 만들기 등으로 꾸며지고 있다.맨발 미술 수업을 진행한 박동채 교사는 “땅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원초적인 행위이기에 즐거움을 준다. 흙이란 화지는 틀려도 다시 그 위에 그릴 수 있다. 반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며 서로의 그림이 만나서 또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미술에 대한 두려움, 경계심 모두 떨쳐버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김영호 교장은 “맨발교육은 흙과 뇌가 대화하는 시간이다. 맨발교육에 적합한 흙과 발 씻기 시설 등을 갖추고 교육과정과 연계해서 맨발교육을 내실 있게 운영하겠다”고 했다.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맨발걷기의 기적

맨발걷기의 기적박동찬 지음/시간여행/293쪽/1만6천 원발은 우리가 잊고 살지만, 우리의 체중을 지탱하며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항상 양말이나 신발 속에 갇혀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하고 땀에 절어 지낸다. 그러나 발은 우리 몸의 혈액순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걸을 때마다 발목 운동을 통해 심장에서 발끝까지 내려온 혈액을 다시 심장에 퍼 올리는 펌프 역할을 한다.그리고 발바닥에는 온 몸의 장기의 지압점들이 고루 분포돼 있고 신경세포도 한쪽 발바닥에만 무려 20만 개가 모여 있다. 발바닥의 신경세포는 걷거나 뛸 때 발바닥에 느끼는 자극을 대뇌로 전달한다. 맨발걷기는 발바닥의 지압점과 감각신경을 자극해 여러 신체장기의 반응을 유도한다.저자는 2016년부터 서울 강남의 대모산에서 ‘무료 숲길 맨발걷기로의 초대’ 프로그램인 '맨발걷기 숲길 힐링스쿨'을 개설해 시민들과 함께 숲길 맨발걷기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맨발걷기의 경이로운 치유와 힐링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이 책에는 저자가 확립한 맨발걷기의 이론과 직접 개발한 7가지 맨발걸음이 담겨 있다. 또 일상에서 접하는 치유 효과를 상세히 담았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맨발의 소녀

맨발의 소녀킴벌리 브루베이커 브래들리 지음/라임/288쪽/1만1천 원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굵직한 역사를 배경으로 가족의 자격과 의미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1939년 영국 런던, 열세 살 소녀 에이다는 저녁마다 선술집에 일하러 가는 엄마 대신, 낡은 아파트에서 남동생 제이미를 돌보며 살아간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발이 내반족(발목 관절의 이상으로 발바닥이 안쪽으로 휘는 병)인 탓에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해 방 안을 기어 다닌다. 딸의 장애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엄마 때문에 열세 살이 되도록 집 밖에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으며, 오로지 창문을 통해서만 바깥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그해 여름, 영국 정부는 히틀러의 공습에 대비해 런던의 초등·중학교 아이들을 전쟁의 손길이 덜 미치는 시골 마을로 피란 보낸다.에이다 엄마는 학교에 다니는 제이미만 피란을 보내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걷기 연습을 해 오던 에이다는 엄마 몰래 집을 빠져나와 제이미와 함께 기차에 오른다. 얼마 뒤, 에이다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영국 남동쪽 켄트 지역에 도착한다. 아이들은 큰 건물 안에서 한 줄로 쭉 늘어서고, 마을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아이들을 골라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 에이다와 제이미만 남게 된다.그 지역 여성 자원 봉사 협회 대표인 토튼 여사는 에이다와 제이미를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가는 수잔 스미스씨의 집에 데려다 준다. 스미스씨는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에이다와 제이미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주고 깨끗한 옷을 사서 입힌다. 또 에이다를 병원에 데려가 의사에게 보인 뒤 내반족이라는 진단을 받고 목발을 맞춰 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에이다는 스미스씨 집에서의 안락한 삶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짜 가족이 아니기에 언제든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전쟁의 불안감이 고조되던 어느 날, 스미스씨의 집에 에이다 엄마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들이닥친다. 그길로 에이다와 제이미는 런던의 집으로 다시 끌려가게 된다.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현장을 배경으로, 지독한 장애를 가진 채 삶에 짓눌려 살아가던 열세 살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존감을 세우는 이야기를 정밀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참혹한 장면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너무너무 비극적이지만 식상하기 그지없는 전쟁터로 독자를 막무가내로 끌어들이지 않고, 인간이 가장 어려운 순간과 맞닥뜨렸을 때 오히려 순순히 빛을 발하게 되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농밀하게 그려내는 데 공을 들여 가슴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영원한 ‘맨발의 청춘’…1960~70년대 극장가 뉴 스타 넘버 원

영원한 ‘맨발의 청춘’. 지금도 청춘 대부분은 맨발이다. 1960·1970년대, 그때 청춘들은 더 춥고 배고팠다. 상처투성이 청춘들은 그런 속에서도 사랑을 했다.그들을 대변했던 스타 신성일. 온 국민들이 그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야망의 탄생신성일은 일제강점기 1937년 5월8일 대구시 중구 인교동 253 외할머니댁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강신영.대구농협지점장이던 아버지 강병오는, 어머니 김연주와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고 신영은 차남이었다.아버지 강병오는 이미 결혼, 3남을 두었으나 이혼 후 함께 근무하던 어머니와 다시 결혼한 처지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영이 돌도 지나기 전 폐결핵으로 숨졌다.경북여고를 나온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함께 소년 신영을 억척스럽게 키웠다. 잘 생긴 소년은 공부는 물론 운동까지 뛰어났다.신영은 대구 수창국민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았다. 4학년 때부터 아버지의 첫 부인이 사는 경북 영덕을 오가며 양 집안의 교류를 텄다.경북중을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간 신영은 1학년 때 6·25가 터졌다. 신영은 전쟁 중 기와공장 임시교사에서 공부, 경북고에 입학했다. 동기로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 정해창 전 법무부장관,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있다.당시 그는 친구들과 대구 송죽극장과 자유극장을 드나들며 학생 입장 불가 프랑스 예술영화에 빠져들었다.고교 2학년 1학기 때 그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터졌다. 경북도청 부녀계장이면서 약방과 서점사업을 겸업하던 어머니가 주도하던 계가 깨진 것이다.어머니는 한밤에 달아나 버렸고 빚쟁이들이 몰려와 신영을 다그치며 마구 때렸다. 하룻밤 사이 거지가 된 왕자 같았다.이모 집에서 얹혀살던 신영은 상경, 서울대에 지원했으나 2년 연속 떨어졌다.신영은 청계천 판자촌에서 호떡 장사를 했으나 잘 팔리지 않았다.◆스타의 길목1950년대 후반 한국은 6·25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모두가 가난했고 불의가 횡횡했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눈에 불을 켰으나 살길이 막막했다.우울한 강신영은 서울 충무로를 걷고 있었다. 우연히 고교 동창 손시향과 마주쳤다. 그는 ‘검은 장갑’이란 노래를 히트시킨 유명 가수여서 멋진 옷차림이었다.신영은 너무 반가웠으나 친구는 어깨만 한번 쳐주고 지나갔다. 그는 남루한 자신을 돌아보며 치를 떨었다. 문득 성공을 향한 욕망이 불타올랐다.넋을 놓고 걷던 그에게 ‘한국 배우전문학원’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배우 꿈을 가져본 적 없던 신영은 새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당시 최고 강사진을 보유한 학원에서 신영은 6개월 간 연기를 배웠다.1959년 8월 당시 최고 영화사 ‘신필름’이 전속 연기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냈다. 22세 청년 강신영은 괜한 자존심 때문에 원서를 넣지 않았다.면접 당일 부슬비가 오는데도 신영은 광화문 뒷골목 오디션 현장을 배회했다. 수천 명의 인파 속에서 신필름 소속 이형표 기술감독이 신영을 발견했다. 이 감독은 원서조차 내지 않은 신영을 신상옥 감독에게 들여보냈다.오디션이 끝난 후 혼자 있던 신 감독은 신영을 보자마자 3년 전속계약을 제안했다. 운명은, 원서조차 내지 않은 그를 영화계로 이끈 것이다.◆한국 영화의 왕별신상옥 감독은 강신영에게 ‘뉴 스타 넘버 원’이란 뜻의 ‘신성일(申星一)’이란 예명을 지어 줬다. 22세 백수 청년이 하루아침에 최고 월급을 받는 배우로 탈바꿈했다.그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하숙집을 얻고 사람 사귀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작가, 기자, 영화인 누구에게나 다가갔고 허드렛일도 도맡았다.신 감독은 신성일을 1960년 1월 개봉한 영화 ‘로맨스 빠빠’에 첫 출연시켰다. 영화는 보험회사원 아버지가 실직하자 온 가족이 위로하는 내용의 희극이었다. 주인공 아버지역에 김승호, 조연으로 최은희, 남궁원, 엄앵란 등이 나오고 고교생 막내 아들 역을 신성일이 맡았다.영화는 성공을 거뒀으나 신성일의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후 그저 그런 영화에만 출연하며 시간이 갔다.1962년 여름 두 번째 기회가 왔다. 평소 친했던 동아일보 기자가 영화사 극동흥업에서 기획 중인 영화의 남자 주연으로 신성일을 추천한 것이다.인기 라디오 드라마 ‘아낌없이 주련다’를 각색한 영화는 6·25 때 부산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전쟁미망인과 피난 온 대학생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여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그러나 극동흥업 영화에 출연하려면 자신을 키워준 신필름을 배신해야 했다. 신성일은 결단을 내렸다. 신필름과 전속계약 기간이 끝난 것을 명분으로 극동흥업과 새로 계약을 체결하고 ‘아낌없이 주련다’의 남자 주연으로 발탁됐다.사실주의 영화 ‘오발탄’으로 주가가 높았던 유현목 감독은 ‘아낌없이 주련다’를 통해 신성일의 연기를 한 단계 도약시켜 주었다.바야흐로 한국 영화계가 전성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신성일의 시대도 펼쳐지고 있었다. 신성일 주연으로 1년에 수십 편의 영화가 제작됐다.1964년 신성일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이 개봉됐다. 김기덕 감독의 이 영화는 불과 18일 만에 제작됐지만 보기 드문 흥행작이 됐다.뒷골목 건달 두수(신성일)와 대사 딸 요안나(엄앵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인 이 영화는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로 시작되는 가수 최희준의 주제가를 배경으로 스포츠머리, 가죽점퍼, 트위스트 춤 등 당시 젊은이들의 유행과 무모함을 잘 담아내 청춘을 열광시켰다.1970년대 전후 그는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소위 1세대 트로이카들의 상대역을 독점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 등 2세대 트로이카들과 손발을 맞췄다.신성일은 자신의 이름대로 스타 중 스타, 왕별이 된 것이다.1970년대 들어 흑백 TV가 크게 늘고 박정희 정권의 검열정책이 강화되면서 한국영화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그래도 신성일은 1970년대 전반까지 해마다 20~40여 편의 주연을 맡았다. 1975년 이후에는 10편 이내로 줄었다. 이는 동시녹음이 일반화되면서 성우 목소리를 이용하는 속성촬영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는 평생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대부분 주연이었으며 100여 명의 여주인공과 공연했다.◆아내이자 동지 엄앵란1964년 11월1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선 왕국에서나 있을 법한 결혼식이 열렸다. 당시 최고 인기 남녀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이 부부가 되는 날이었다.전 국민의 이목을 끈 결혼식에는 구경꾼까지 수천 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인파에 밀려 하객들은 식장에 접근도 못 했다. 화환은 넘어지고 축의금이 털리는 등 엉망이 되자 진행요원들은 몽둥이까지 휘둘렀다.신성일보다 한 살 연상인 엄앵란은 학사 출신 배우로 신성일보다 먼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엄앵란은 결혼 후 영화 일선에서 물러나 신성일의 뒷바라지에만 힘을 쏟았다. 1979년부터 10여 년간 대구에서 ‘나드리예’라는 식당을 경영하며 남편의 정치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영원한 자유인신성일은 언제나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그냥 넘어가지를 못했다. 특히 거짓말은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 지나치게 솔직해서 문제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1969년 부산의 국도극장 개관 쇼에서 역시 자유분방한 가수 조영남이 불손하게 굴자 흠씬 두들겨 준 일도 있다.2011년 발간된 자서전에서는 1970년대 미국행 여객기 일등석에서 애인과 사랑을 나눈 사실을 밝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그는 1987년부터 사귄 슬롯머신 사업가 정덕일에게 영화사업을 위해 40억 원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덕일은 후일 김영삼 정부 출범 후 6공 실력자 박철언에게 뇌물을 줬다는 이유로 구속된다.그는 연애했던 상대가 누구인지도 숨김없이 밝혀 오히려 주변이나 언론이 명예훼손 가능성 때문에 얼버무리곤 했다.슬하에 1남 2녀를 둔 신성일 부부는, 1980년대 이후 서로 떨어져 살며 상대의 삶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 어려울 때면 돕는 모습을 보였다.그들 부부의 사는 모습은 프랑스 소설가 사르트르와 보바르의 계약 결혼에 비견되고 2010년대부터 등장한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의 졸혼 원형으로 불리기도 했다.◆‘맞지 않는 옷’그는 청소년기 집안의 몰락으로 예상치 않던 배우의 길로 들어섰지만 정상에 올라선 이후 정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러나 정치는 그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복잡 미묘한 정치계에서 직선적인 성격의 그는 영화계와 달리 실패를 거듭했다.신성일은 40세 때인 1978년 10월 결국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다.본인이 출마한 것이 아니라 그해 12월 10대 총선에서 서울 지역구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를 도운 것이다. 그는 여기서 부패 금권선거의 실상을 보게 된다.그는 이후 1981년 11대 총선과 1996년 15대 총선에서 각각 서울 용산·마포와 고향인 대구 동구 갑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한다.그는 삼수 끝에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에 출마, 금배지를 단다. 63세 때다.그는 국회의원 시절 고향 대구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임기가 끝난 후인 2005년 2월 그는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광고업자에게 정치후원금 1억여 원을 받고 영수증을 써 줬으나 검찰은 대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그는 실형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2년만인 2007년 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불꽃처럼 살다 가다그는 2008년 경북 영천시 괴연동에 ‘성일가’라는 한옥을 짓고 서울을 오가며 생활했다. 그는 보통 사람이 되어 마을 사람들과 어울렸다.그는, 2017년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는 투병 생활 중 갑자기 병이 악화돼 전남 화순 전남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2018년 11월4일 눈을 감았다. 81세였다.그는 평생을 청춘처럼 살았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80대에도 청바지를 즐기고 모든 일을 직접 했다. 이제 그의 불꽃같은 삶은 전설이 됐다. 이송하 전 연합뉴스 기자 연보·1937년 5월8일 대구 인교동 출생·1950년 대구 수창국민학교 졸업·1953년 경북중 졸업·1956년 경북고 졸업·1957년 서울 배우전문학원에서 연기 실습·1959년 8월 신필름 입사·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1962년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1964년 2월 영화 ‘맨발의 청춘’ 개봉·1964년 11월14일 엄앵란과 결혼·1971년 영화 ‘연애교실’로 감독 데뷔·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 개봉·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장·2000~2004년 제16대 국회의원·2002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2008년 경북 영천 성일가 건립·2009년 계명대 연극예술과 특임교수·2008~2013년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2018년 11월4일 별세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