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학천초 조윤서양 2년 기른 머리카락 40㎝ 기부

포항지역 한 초등학생이 소아암 환자를 위해 2년 간 길러온 머리카락을 기부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1일 포항 학천초등학교에 따르면 최근 6학년에 재학 중인 조윤서(12) 양이 2년 동안 정성껏 기른 자신의 머리카락 40㎝ 가량을 잘라 ‘어머나 운동본부’에 기부했다.어머나 운동은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의 줄임말이다.25㎝ 이상의 머리카락을 기부 받아 특수가발을 제작해 항암치료로 탈모가 심한 소아암 환자에게 제공한다.일반적으로 소아암 환자들은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져 대부분 모자나 가발을 착용하고 있다.하지만 기부되는 머리카락은 매년 턱없이 부족하고, 파마와 염색 등 약품처리를 한 머리카락은 가발 제작과정에서 녹을 수 있어 기부대상이 되지 않는다.더구나 암 환자의 가발은 압박감이 덜하고 트러블이 생기지 않게 항균·멸균 처리하기 때문에 일반 가발보다 2~3배 비싸게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조 양은 “TV방송에서 소아암 환자들이 머리카락이 없이 생활하는 것을 보고 머리카락을 길러 기부하기로 결심했다”며 “모발 기부를 위해 ‘염색을 같이 하자’는 친구의 유혹도 참아냈다”고 전했다.그러면서 “소중히 기른 머리카락을 잘라 아쉽기도 하지만 기회가 되면 또다시 모발 기부 운동에 참여하겠다”고 했다.김웅희 기자 woong@idaegu.com

공군 중사, 머리카락 기부로 소아암 환자 도와

공군 군수사령부 간부가 3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을 기부해 소아암 환자를 도와 눈길을 끌고 있다.지난달 30일 공군 군수사령부에 따르면 항공자원관리단 이하늬(34) 중사가 소아암 환자 가발 제작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 30㎝를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 본부’에 기증했다.이 중사는 평소 부대 인근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찾아 영정사진을 찍어 드리는 등 봉사활동을 이어 왔다.결혼 후에는 고통받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일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그는 3년 동안 머리카락을 기르면서 단정한 용모를 유지하기 위해 머리 망을 착용하고 모발 손상을 줄이고자 헤어드라이기 대신 자연 건조를 시행했다.이 중사는 소아암 환자들의 가발 제작을 위한 두 번째 기부를 위해 다시 머리카락을 기를 예정이다.이 중사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가발에 쓰인다고 생각하니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며 “가발 한 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30명 이상의 머리카락이 필요한 상황이라 많은 이들의 기부 동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한편 소아암 환자들은 항암 치료를 하면서 머리카락이 빠지게 되고 달라진 외모로 인한 스트레스로 가발을 착용하게 되는데 이 가발은 반드시 항균 처리된 100% 인모여야 한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잎갈이를 보며/ 정화섭

기지개 켜는 새순 허물 벗어 버린다//온몸을 뒤틀면서 또르르 말린 잎을//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바닥에 툭 떨군다//손가락 감아보니 연갈색 밴드 같다//모두의 보호막은 질기고 보드랍고…//숨겨진 끝과 시작이 멀면서도 가깝다「대구시조 제24호」 (그루, 2020)정화섭 시인은 2005년 백수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먼 날의 무늬’가 있다. 새로운 시도를 다각도로 펼치면서 시조 세계의 음역을 넓히는 일에 주력하는 시인이다.사람도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빠지기도 하고 미용이나 이발을 통해 머리를 손질한다. 그렇듯 많은 동물은 털갈이를 한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다. 식물의 잎갈이를 유심히 살피노라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기지개 켜는 새순으로 말미암아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을 눈여겨본다. 온몸을 뒤틀면서 또르르 말린 잎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바닥에 툭 떨구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시의 화자는 순리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떨어질 때는 일말의 주저함이나 미련도 가지지 않고 단호하게 떨어져 내리는 것을 살피면서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돌아볼 수도 있겠다.못내 아쉬워서 손가락에 감아보니 연갈색 밴드 같아서 더욱 안쓰럽다. 마음 씀씀이가 다정다감하고 세계를 대하는 자세가 진중하다. 그러면서 모두의 보호막은 질기고 보드라운 것을 떠올린다. 숨겨진 끝과 시작이 멀면서도 가까운 것을 생각하며 잎갈이를 다시 살핀다. 화자는 이러한 사유의 과정을 통해서 삶에 대한 어떤 다짐 같은 것을 했을 법하다. 시는 이렇듯 조그마한 현상에서 자연의 이치를 일깨우기도 하고, 그를 통해 정서적으로 치유의 역할도 감당한다. ‘잎갈이를 보며’라는 작품이 그런 점에서 돋보인다. 작은 것을 붙들고 깊이 사유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의 길과 결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꽃자리’라는 시조에서 따뜻한 눈길로 생명을 주시한다. 버려진 타이어 속에 새들이 집을 지은 것을 보고 얼기설기 물어다 놓은 경계 너머의 것들을 생각하면서 생명을 보듬어 안고 시간을 한껏 늘리는 것을 어여삐 바라본다. 화자는 무심히 읽어버린 그들의 이야기가 하늘을 응시하는 우물의 심연처럼 불면의 얇은 막 안에 빛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을 눈여겨본다. 그를 통해 뿌듯한 마음을 가진다. 발가벗은 우주가 주위를 감싸 안을 때 여기가 꽃자리라면서 달콤하게 속삭이듯 삶과 꿈이 뒤엉킨 채로 아기 새가 눈을 뜨는 것을 본다. 사람살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따뜻한 성정의 시인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자아와 세계를 관조하면서 얻은 시편들은 잔잔한 울림을 준다. 시가 결코 멀리 있는 신기루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와 더불어 사는 일은 곧 우리의 품격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내가 쓴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가슴을 적신다면 그것으로 족한 일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골방에 들어앉아 펜을 달구고 있는 것은 아닐 터다. 쓰는 그 자체가 행복한 일이기 때문에 시인은 오늘도 자신만의 시공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런 부단한 탐색과 궁구 중에 불후의 명작은 탄생할 것이다. 그렇기에 늘 혼신의 힘을 다한다.이제 11월도 막바지다. 언제 강추위가 몰려올지 모른다. 따뜻한 아랫목을 찾게 되는 계절이다. 산과 들이 무채색으로 드리워진 만큼 알록달록 갖가지 색채로 내면을 물들여 우울한 정서를 일거에 걷어내어야 할 것이다. 윤택한 삶은 독서에서 비롯되고 좋은 시들은 역동적인 견인차가 될 수 있기에 시를 흥얼거리며 겨울을 즐겁게 맞을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풀잎 연가/ 김경호

Ⅰ.// 군데군데 떨어져 피어나/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다져 먹고/ 어지러운 하늘 속/ 가라앉지 못하는 먼지바람 하나도/ 버리지 마/ 밀리고 흩어진 벌판 위에/ 잠들지 않고 내리면서/ 굽은 등 펴고 눕게 하는 비/ 비 맞아도 젖지는 마/ 굽히고 잠들게 하는 어둠도/ 그리운 그대 이름도/ 이젠 따뜻한 아픔인 것을/ 군데군데 떨어져 피어나/ 떨어져 있어도 결코 쓸쓸하게/ 지워지지 마/ Ⅱ./ 잠든 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비를 맞는다/ 마른 가슴을 내리고/ 잠 깨지 못하고 서 있는 나무들/ 그 억센 뿌리를 키운 벌판을 향해/ 비는 내리고/ 풀잎들이 거친 바람에 쓸리고 있다/ 흔들리면서 그러나 모여 서서 꿈꾸던 하루/ 풀잎은 자라고/ 내 방에 흩어 진 머리카락 같은 풀잎,/ 허름하게 피어나 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질긴 풀잎이여/ 보아라 흔들려서 모든 것 눈 뜨고/ 소리치고 달려가게 하는 아침/ 버려진 돌멩이와 젖은 모래알에서 깨어나/ 마르지 않는 아픔을 키우며/ 언 손 부비며 다시 피어날/ 새봄의 풀잎이여/ 잠든 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다만/ 다 뜨겁고 무성한 꿈을 위해/ 비 맞고 있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Ⅰ」 (대구문인협회, 2013)풀잎이 벌판에 드문드문 피어난다. 비록 외롭게 혼자 피어있어도, 세상이 어지러워도, 마음을 독하게 다잡아먹고 정신 바짝 차린 채 서 있다. 떠다니는 먼지바람 하나도 허투로 흘릴 수 없다. 너른 벌판 위에 비바람 불면 그냥 드러누워 등을 쭉쭉 편다. 그렇다고 비바람에 마냥 굴복하지 않는다. 어두운 밤이 찾아와 몸을 눕히고 잠들어도 정신을 놓는 일은 없다. 서로 헤어져 있어도 그리움은 따스하게 영글고, 외롭게 홀로 있어도 존재감은 뿌듯하게 차오른다.비가 내리면 죽은 듯 마냥 비를 맞는다. 빗물은 마른 가슴을 적셔준다. 잠든 듯 벌판에 고요히 서 있는 나무들은 억센 뿌리를 땅속 깊이 뻗치고, 풀잎은 세찬 바람에 눕는다. 거친 바람에 흔들리지만 함께 모여 서서 알찬 꿈을 지켜낸다. 풀잎이 바람에 머리털처럼 흩날려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비록 볼품없이 피어난 풀잎이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사랑을 품는다. 해가 뜨고 아침이 찾아오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풀잎은 소리를 지르면서 꿈을 향해 달음박질친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련을 극복하고 비에 젖은 돌멩이와 모래 속에서 깨어나 풀잎은 꽃을 피운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새봄이 돌아오면 겨우내 얼었던 손을 부비며 풀잎은 다시 피어난다. 나무와 풀잎은 잠든 것 같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무성한 꿈을 꽃피운다. 지금도 풀잎은 비를 맞고 서 있지만.인간은 생각하는 풀잎이다. 거친 바람이 불어오면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때론 누워버리기도 하지만 굴복하는 일은 없다. 바람이 가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뚝이처럼 다시 벌떡 일어선다. 잠든 것처럼 꼼짝 않고 비를 흠뻑 맞지만 결코 빗물에 녹지도 않고 떠내려가지도 않는다. 땅속으로 힘차게 뿌리를 뻗고 하늘을 향해 발 돋음을 한다.홀로 떨어져 있어도 고독해하지도 않고 근본을 잊지도 않는다. 풀잎은 햇빛 하나 바람줄기 하나 놓치지 않고 꼭 보듬어 꿈을 가꿔간다. 함께 그리워하고 사랑을 품는다. 풀잎은 선 자리에서 생긴 그대로 살아간다. 선 자리를 탓하지도 않고 부탁도 없이 옮겨가려고도 않는다. 스스로의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갈 따름이다. 오철환(문인)

어떤 구도자

박헌경변호사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예년 같으면 버스를 대절해 단풍 구경을 가려는 행락객들로 인해 고속도로 휴게소가 버스와 사람들로 발디딜 곳없이 붐빌 것인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예년 같지 않게 조용하다. 대신 가까운 팔공산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려는 자가용 행렬은 길게 늘어서 있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단풍잎은 낙엽이 돼 길에 뒹굴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가을이면 우리는 더욱 옷깃을 여미게 되고 인생이 무엇인가 자연 앞에 스스로 겸손해진다.그를 처음 만난 것도 단풍이 이렇게 절정에 이른 깊어가는 가을날이었다. 15년전 합천 해인사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찻집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찻집을 그의 부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어깨까지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있었다. 입가에 항상 미소를 머금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가진 그와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긴 시간 담소를 나눴다. 주로 종교와 철학, 역사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지나온 삶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 같다. 그의 깊이 있는 안목과 고뇌를 읽을 수 있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나이도 나와 갑장이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소탈하고 기분좋은 분위기를 가진 그를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인지라 그 뒤로 몇 번 더 해인사 그 찻집을 찾아 그를 만났다. 그는 수염을 깎지 않고 길렀고 허름한 옷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으며 걸을 때는 나무로 만든 큰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지리산 청학동으로 도를 닦으러 입산해 들어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청학동으로 떠나기 전에 그의 부인에게 무릎을 꿇고 삼배 절을 올리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그로부터 5년 후 청학동을 나와 경북 영주에서 오래된 촌집을 무상으로 임차해 개조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를 만나러 영주에 몇 번 다녀왔다. 머리는 여전히 치렁치렁 기르고 있었지만 그의 몸가짐과 목소리는 더 큰 울림이 있었고 얼굴은 맑았다. 기분좋고 소탈한 웃음소리도 여전했다. 채식을 주로 하는 그와 나물반찬 밥상을 마주 하고 앉았더니 열어놓은 장짓문 밖으로 향기로운 솔바람이 불어오고 뻐꾸기 울음소리가 참으로 평화스러웠다. 속세를 떠난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속세의 집착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보다.영주에서 1년여를 지냈던가? 그는 다시 지리산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오랫동안 듣지 못하다가 최근에 그가 진주 인근 산에서 해탈선원을 지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말을 맞아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친구와 둘이서 승용차를 운전해 그를 만나러 해탈선원으로 달렸다. 합천을 거쳐 진주를 지나 산청 가까운 산에 자리잡은 해탈선원을 찾았다. 시골길과 산길을 달려서 한참 들어간 곳에 해탈선원 수덕사가 있었다. 시간을 수십년 거꾸로 되돌려놓은 듯한 수덕사에 도착하니 돌계단에 빗방울이 무수히 떨어지고 뒷산에는 우연이 가득했다.절이라고 하지만 오래된 시골집을 개조해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는 합장하며 함박웃음으로 기쁘게 맞아주었다. 황토흙집에 한지를 발라놓은 방에서 그는 차를 우려 우리에게 대접했다. 10년만에 다시 만난 그는 그토록 치렁치렁 길렀던 머리카락을 자르고 머리를 깎아 스님이 돼 있었다. 모든 것이 단촐하고 검소했다. 너무나 검소해서 역시 불법을 배우고 수도하는 구도자의 모습은 이런 것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비는 창밖에서 계속 내리고 그가 따라주는 차에는 그의 인간적인 향기가 스며있는 것 같다.현대의 종교인은 너무 세속화되고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비구는 누더기 옷을 기워입고 식사는 탁발을 해서 얻어먹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비구의 모습일 터이다. 비단으로 만든 가사장삼과 제의를 거치고 거룩하게 떠받들어지는 것이 종교인의 참모습은 아닐 것이다.비가 내리는데도 그는 절 입구까지 내려와 돌아가는 우리를 향해 허리를 굽혀 합장을 한다. 웬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조만간 다시 한번 찾아갈 것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남기고 대구로 돌아왔다.

달빛/ 박재열

1// 홑이불을 두르고 조심조심 빨랫줄을 타는 달/ 밤바람이 푸른 대숲을 밴다./ 달빛과 시대의 애환이 산안개에 접힌/ 달그르매의 푸른 수풀이다./ 生死路 한 켠에 핀 정은/ 이예 뎌에 떠닐 닙다이 떠나니./ 빨랫줄로 갈라지는 이승과 저승의 밝은 간격에/ 살아생전에 즐겁던 목소리./ 달빛은 시들어지면서 소리하고/ 이 밤에 울지 않는 것은 일체가 무상이리라./ 무상에 눈먼 월색의 두터운 귓밥 속으로/ 나는 가나다 말도 몯다 닐은 채…/ 달빛은 강으로 흐르고/ 푸른 강물에 자지러지는/ 허리 가늘은 생시의 풀꽃이다.// 2// 달은 푸른 즙을 반공에 풀면서/ 스스로의 신명을 벗지 못하는/ 셔블에 춤추는 처용/ 저만큼 不可解의 가시장 위에 밝게 뜬 달/ 밤바람에 무수히 일어서는 것은/ 시대의 주술이다./ 달빛은 속절없이 고인의 머리카락에 감기고/ 고인의 얼굴은 이슬처럼 풀숲에 밴다./ 수풀의 캄캄한 살 속으로/ 만리 밖 저승의 기침소리 들리나니/ 前世가 달빛 끝에 묻는 것은/ 오오 밤 깊은 처용의 춤이 끝없는 까닭일까./ 한밤의 달빛은 하릴없는 적막이고/ 한밤의 달빛은 가랑이 넷의 전설이다./ 가랑이 넷의 속 깊은 不可解다.「수성문학」 (수성문인협회, 2020)시인은 달빛을 즐기며 신라의 달밤에 젖는다. 서라벌의 향가 소리가 밤바람에 실려 온다. 피리소리에 ‘제망매가’가 묻어오고, 달빛아래 ‘처용가’가 들려온다. ‘제망매가’는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란 스님이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누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서정적인 시가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종교적인 승화를 통해 극복하려는 다짐이 두드러진다. 삶과 죽음의 절묘한 비유는 현대시의 메타포로도 손색이 없다. 달밤에 피리를 불면 달마저 넋을 잃고 운행을 멈췄던 까닭에 스님 시인은 월명사로 불렸다.‘처용가’는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아내의 외도 현장을 보고도 관용적 태도로 노래함으로써 역신을 감동시켰다는 시가다. 역신이 밤에 몰래 잠입해 처용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 달 밝은 밤에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함께 자는 현장을 보고도 ‘처용가’를 부르며 춤을 췄다. 그 광경을 본 역신이 감동해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앞으로 그의 형상만 보아도 그 문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역신을 쫓고 경사스러움을 맞아들이기 위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이는 풍습이 그때부터 생겨났다. 홑이불을 뒤집어 쓴 달이 빨랫줄에 걸리고 밤바람이 대숲을 울린다. 산안개가 달빛과 애환을 보듬고 달그림자가 수풀에 내린다. 월명스님이 피리를 불며 누이를 그리던 신라의 달밤이다. 남매의 정은 한 나무에 나서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가는 곳 모른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은 빨랫줄로 갈리는 경계마냥 가까운 곳에 있으니 누이의 정겨운 목소리든 달빛의 시든 소리든, 세상만사가 무상하다. 간다는 말도 없이 달빛 속으로 떠나간 누이가 그립다. 달빛은 강물에 일렁이고 매끈한 물풀이 슬프도록 푸르다.푸른 달빛 아래 처용이 신명나게 춤추는 서라벌의 달밤이 다가온다. 처용의 형상이 시대의 주술로 살아있다. 달빛 젖은 풀숲에 고인의 얼굴이 어리고 수풀 그림자 속에선 저승의 기척이 느껴진다. 달빛과 함께 지난 세월이 소환되는 것은 밤 깊은 시간에도 끊이지 않는 신명과 너그러운 관용에 터 잡은 처용의 주술 때문만은 아니다. 적막한 한밤의 달빛은 불가해한 가랑이 넷에 대한 서라벌의 전설이다. 오철환(문인)

비가(悲歌)

비가(悲歌) 신동집1// 바람에 희끗이 머리카락은 날린다/ 삐에로여/ 작별의 인사말을 아는가/ 너의 눈 속에 한 자락/ 노을 구름은 돈다/ 길 잃은 잠자리의 그리매도 저물면/ 대지의 노래 속에 떨어지는 나뭇잎들/ 늦 도라지 보라 속에/ 꿈을 헤맨 사람은/ 귀뚜라미 울음에도 마음이 설레이고/ 삐에로여 잠잠히 춤을 거두어라/ 사람의 손에 인형은 때 묻고/ 술잔에 남은 머루 씨 댓 톨/ 바람에 희끗이 머리카락은 날린다/ 2// 계절 사이로 간간이/ 웃음소리는 밝게 들린다/ 여름을 살아남아 여까지 온 사람은/ 비탈에 그늘 여문 가을꽃을 바라본다/ 이것도 그래 다행한 일이다/ 늦 도라지 보라 속에/ 비치며 사라지는 행인의 그림자/ 익어 여문 과일의/ 무게가 문득 손에 무거울 때/ 굴러가는 가랑잎은 누구의 것일까/ 귀뚜리여 아직은/ 죽을 자리를 더듬지 말라/ 시월상달 해 짧은 날에/ 옥빛 바람은 풀어 섞이고/ 이러할 때 상머리 생명은 유정(有情)이다/ 3// 기적소리도 울고 가면 그만/ 누가 오래 견딜까/ 이 멀건 들판을/ 한 줄기 걸인의/ 모닥불이 피어오른다/ 간간이 풍기는 고무 타는 내/ 이러할 때 날카로이/ 새는 노을에 빛나고…/ 저녁 새여 아직은 더 울어라/ 나락 말던 사람의 그리매는 사라지고/ 굽어 도는 강나루 모서리도 저물면/ 남은 건 한 가지/ 최후의 기슭에 별이 뜬다/ 4// 사람이 두 발로 일어서/ 걸어 온 시간이 아득히 보인다/ 내가 두 발로 일어서/ 걸어 온 시간이 아득히 보인다/ 무엇을 위한 여로인가/ 엿장수의 가위 소리는 일찍/ 해진 길로 발을 돌리고/ 우수수 달력 속에 날은 어둡다/ 이승을 엿본 자/ 무슨 한이리오/ 떠나며 가벼이 코나 풀 일/ 삐에로여 잔을 들어라/ 바람이 너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바람이 방금/ 너의 이름을 지우고 있다/ 삐에로여 잔을 놓아라『비가』 (자유문학, 1956)................................................................................................................. 귀밑머리 희끗하면 인생의 조락을 느낀다. 곧 무대를 떠나야 할 배우이고 고별사를 준비해야 할 때다. 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이 눈동자에 비친다. 잠자리는 돌아갈 길을 잃고 하늘 모퉁이를 나는데, 자연의 섭리에 못 이겨 나뭇잎은 가는 곳 모른 채 허공에 떨어진다. 귀뚜리가 보랏빛 도라지에 숨어 가을이 지나감을 알린다. 즐기던 애장품도 때 묻고 마실 술마저 바닥을 보인다. 한 바탕 꿈같은 인생사다. 새 계절을 맞은 기쁨도 잠시 일 뿐, 시름에 젖은 채 역경 속에 핀 산비탈 가을꽃을 본다. 만추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가랑잎처럼 돌아갈 길이 무상하다.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귀뚜리여, 그렇다고 포기할 일도 없고, 서둘 일도 아니다. 시월상달 푸른 하늘 아래 맑은 바람이 일면 밥상머리 인간은 감성에 흠뻑 빠진다. 가는 세월을 그 누가 막을 손가. 가난한 나그네의 한 가닥 모닥불은 역한 냄새를 피우고 노을을 나는 새의 날개 짓에 날이 선다. 추수가 끝나고 강나루 귀퉁이로 어둠이 번지면 하늘가엔 최후의 별이 뜬다. 지난날들이 스쳐온다. 엿장수 가위소리가 덧없다. 지난 삶에 여한은 없다. 몸과 마음을 편히 하고 담담하게 운명을 맞을 따름이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다. 시인은 존재와 생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직관으로 꿰뚫어보아야 하며, 언어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삶과 죽음을 통한 존재에 대한 천착은 생명의 근원적 모색과 이어져 있으며 일상적 존재의 정체성 확인으로 나타난다. ‘비가’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간 존재의 탐구에 충실한 시다. 오철환(문인)

인생의 나침반 같은 산문집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이 바른 길인지 어떤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마음 가볍게 들춰보면 위안이 되는 책 한 권. 이번 주는 최근 서점가에 새로 진열된 인생의 나침반 같은 산문집을 소개한다.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종현 지음/조계종출판사/252쪽/1만4천 원.지난 11년간 월간 ‘해인’ 편집장을 지낸 대구 팔공산 도림사 주지, 종현 스님의 산문집이다.매일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연화장세계, 불교계 대표 사찰 해인사 행자실의 전통적인 풍경부터 비밀스럽게 구전되는 절집의 수행담까지 스님들이 수행하는 산속 생활을 담았다.청주 마야사 주지 현진 스님은 “이 책에는 촌철살인의 대화도 있고,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문답도 있다. 이론과 지식을 초월하는 파격도 담겨 있어 통쾌한 삶의 지혜를 보여준다. 법상 위의 법어보다 더 생생한 현장 법문이라 할 만하다. 모두가 비단에 놓인 꽃이라서 그 어느 것도 버릴 게 없다. 행간마다 어리석음을 타파하는 취모검들이 총총하다”라고 극찬했다.20년 전 범어사 선원 동안거를 보내던 종현 스님은 참선하다가 잠시 멈추고 산책을 하는 포행 길에서 한 여인과 마주친다. 처음 보는 여인은 길을 가로막고는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스님,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돌아서며 스님은 얼굴이 뜨거워지고 온몸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이후 스님은 오래도록 그 물음을 곱씹으며 자문해보았고 어느새 화두가 돼버린 그 말을 제목 삼아 2020년 봄, 자신의 수행 여정을 담은 산문집을 펴냈다.이 책에는 종현 스님이 직접 겪었던 출가 과정을 토대로 해인사로 출가한 이들의 첫걸음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출가자가 해인사로 들어가면 일주일간 속복 생활을 한다. 삭발하지 않고 행자복도 입지 않은 채 출가한 복장 그대로 대기하는 생활이다.첫날 보경당에서 삼천배를 하고, 이후 6일간 벽을 보고 서있다. 인내와 의지를 시험하는 극한의 시간은 앞으로 다가올 수행 길, 출가 의지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행자 생활 일주일이 되면 삭발식을 한다. 상행자들의 ‘참회진언’ 염송 속에 원주스님이 머리를 깎아주고, 속복들은 기쁨과 슬픔이 담긴 눈물을 흘린다. 삭발을 마치면 선행자 중 막내는 밭에 미리 파둔 구덩이에 행자들의 머리카락을 묻고 ‘반야심경’을 외우며 그들이 무사히 사미계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준다.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복병학 지음/모아북스/256쪽/1만5천 원.어느새 중년. 머리엔 하루가 다르게 새치가 늘어가고 눈가엔 주름이 깊어만 간다. 몸의 노화가 눈에 띄게 뚜렷해지지만 마음은 나이 들지 않는 시기. 취향이나 행동이나 신념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은 떨어지지 않는 이 복잡한 나이에 이른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 그렇다고 늙었음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중년이 되면 누구나 인생무상을 느끼고 사는 게 뭔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25년 넘게 사회인으로, 전문가로, 직장인으로 살면서 가장으로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살아온 중년의 저자는 일상에서 관찰한 주변 사람과 풍경 속에서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한다.이 책은 오랫동안 삶을 관찰하고 매일 꾸준히 써온 글 중에서 ‘인생’이라는 큰 키워드를 위주로 뽑아낸 글 묶음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특별할 것 없는 생활의 풍경과 취미 활동 속에서도 가볍지만 섬세하고 단순하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는 글로 인생의 의미를 탐구한다.저자가 큰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나이’다. 당연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구나 현실로 당면하게 되는 ‘나이 듦’이라는 현상을 경험하면서, 특히 100세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인생의 절반이자 반환점에 해당하는 중년에 이르면서 저자는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삼았다.중년이 되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다. 마음은 몸처럼 나이 들지 않고 눈도 취향도 행동도 좀체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만큼은 늙지 않는다는 것. 다만 성숙한 50대는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근엄함을 수행하면서 자신을 수양하며 살아갈 뿐이라는 것이다.저자는 젊은 시절 일관되게 추구하던 물질에 대한 욕망을 과감히 내려놓고 방향 선회를 해보자고 권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활용해 재능 기부와 봉사로 인간미를 키워 스스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주위로부터 존경받는 어른이 돼 보자는 것이다.나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고집과 아집으로 퇴화되지 않으려면 부단히 스스로 연마하고 사색하며 사람과 교류해야 한다. 이 책은 그 방법을 안내해줄 것이다.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임창아 지음/학이사/192쪽/1만3천 원. “종종 사랑에 관해 질문하거나 받을 때가 있지요.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간편하고 납작하게 사용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눈이 멀고 숨이 멎으면 사랑의 잔혹은 사랑의 매혹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임창아 시인의 첫 산문집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가 출간됐다. 학이사의 산문 기획시리즈 첫 작품으로 출간된 작가의 언어에는 속도감이 있다. 특히 잡음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이 읽는 이에게 청량감을 준다. 그래서 작가의 글은 매력적이다. 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여자처럼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며 슬픔과 당당히 마주한다.산문집은 각각 ‘어느 날’, ‘문득’, ‘그윽하게’ 3부로 구성돼 있다.1부 ‘어느 날’에서는 한 단어에 꽂히면 그녀만의 특별한 공간이 탄생한다. 시인이니까 시적인 산문을 쓰고 싶다고 했다. 산문이라고 보기엔 시에 가깝고, 시라고 보기엔 산문에 가까워서 산문시나 시산문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2부 ‘문득’에서는 그녀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들에 대한 단상이 실렸다. 연필심 끝에 침을 묻혀 그윽한 마음으로 꾹꾹 눌러쓴 지극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시론도 아니고 시인론도 아니고, 시론이면서 시인론이기도 한 글을 쓰면서 행복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그들에게 온전히 빠져있었다고 한다.3부 ‘그윽하게’에서는 세음절로 된 제목과 그에 따른 각각의 부제가 친근하게 시적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고독한 어느 타화상의 한때’, ‘하지만,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 ‘불완전이라는 생각의 완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감성과 지성이 교직돼 있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다.작자는 글머리에서 도무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슬쩍슬쩍 들여놓은 구절로 인해 글쓰기는 더불어 아팠고 더없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경남 남해 출생인 작가는 2004년 ‘아동문예’ 동시와 2009년 ‘시인세계’ 시로 등단, 시집으로 ‘즐거운 거짓말’과 동시집 공저 ‘구름버스 타기’가 있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세상읽기…코로나19 방호복을 입으며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노란 산수유가 병아리색 봄이 왔음을 알린다. 빨간 동백꽃에 앉은 동박새도 세상이 온통 봄으로 바뀐다고 노래한다. 대지는 봄기운에 기지개를 켜는 데 마스크 쓴 얼굴에는 온통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이번 봄,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꿋꿋이 버텨내야 하지 않겠는가. ‘생일 축하해요~!’ 지인의 문자를 받았다. 어머나, 그렇구나! 오늘이 음력으로 그날이었구나. 고맙다는 인사를 챙길 겨를도 없이 얼른 방호복을 입어야 한다. 머리카락이 내려오지 않도록 캡을 쓰고 손 위생을 시작한다. 손 세정제를 묻혀 제일 먼저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지르고 다음엔 손바닥을 마주 잡고 문지르고 또 그다음엔 손등,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지르면서 ‘생일 축하합니다./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마음으로 흥얼거려본다. 노래 한번 끝날 즈음엔 엄지손가락을 다른 편 손바닥으로 꼭 잡고 돌려가면서 문지른다. 다시 노래를 떠올리며 손바닥을 마주 대고 손깍지를 끼고 문질러 주고. 손가락을 반대편 손바닥에 놓고 문지르며 손톱 밑을 깨끗하게 한다. 흐르는 물에 비누로 30초 이상 손 씻기를 하려면 생일 축하 노래 두 번을 불러야 할 정도의 시간이다. 그런 다음 라텍스 속 장갑을 끼고 모든 보호 장구를 맨눈으로 살펴 구멍이 뚫려있거나 이상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방호복을 입는다. 다리부터 집어넣은 뒤 팔을 끼우고 허리에서 목까지 올라오는 지퍼를 반쯤 올린다. 한 과정이 지날 때마다 손 세정은 필수다. 다음엔 덧신을 신고 끈으로 종아리에 단단히 동여맨다. N95 마스크를 끼고 잘 밀착이 되었는지 확인한 후에 고글을 쓴다. 고글,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틈이 보이지 않도록 방호복 후드로 단단히 얼굴을 감싼다. 손 세정을 다시 하고서 마지막으로 겉 장갑을 끼고 다시 한번 빈틈이 없는지 살핀 다음 착의 실에서 나와 입원 병동으로 들어가는 전실을 지나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환자의 방문을 연다. 아무리 마음 바쁘더라도 확진자를 가까이 대하기에 스스로 감염으로부터 방어해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막지 않겠는가. 어설프게 서두르다가 자칫하여 의료인 감염이 일어나면 그때는 큰일이지 않겠는가 싶어 모두가 노심초사 마지막 방어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꼼꼼하게 챙겨서 회진하며 바이러스를 싸워 이기는 전사라 여기며 하루하루 버틴다.기다렸다는 듯 환자는 반색하며 이런저런 증상을 이야기한다. 확진 받고 입원 대기자 명단에 올랐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자리가 나지 않아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였던 환자, 그동안 내내 열이 있었다고 한다. 열이 오르내리고 코피를 쏟아내다가 설사까지 하여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입원 후 치료를 시작하고는 심적으로 안심이 되었는지,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조금씩 나아지고 열도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살 것 같다면서 안도하는 그를 보면 마음이 울컥하다. 어느새 고글이 뿌옇게 흐려온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몸은 땀으로 젖어 들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인류가 처음 대하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으로 환자는 얼마나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었을까? 머리도 아파져 오고 가슴도 답답해 오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더 아려 와서 ‘얼른 나아서 빨리 봄 햇살을 맞아 보셔야지요.’ 그 앞에 서서 잠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모임도 나가지 않고 집회도 멀리하는 사회적 거리야말로 감염의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법일지 모르니, 참 답답하고 지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바이러스의 감염 확산도 언젠가는 수그러져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반드시 돌아올 터이니. 그때까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감염원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답답하더라도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하지 않으랴. 지겹다고 생각하면 정말 한순간도 버티기 힘들지 모른다. 혼자 즐기는 법도 배우고 각자의 위생을 잘 챙기면서 희망을 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힘든 고난이라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니’ 잠시 멈춤의 이때를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갈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긍정의 마음으로 견디다 보면 일상으로 돌아가 보통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날은 반드시 찾아오지 않겠는가.대구에 사는 한 할머니는 ‘비우니 채워지더라’는 글에서 ‘냉동실 발가벗고(비우고) 은행 갈 일 별로 없고, 한 달 생활비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부자 된 기분이다.’라고 쓰셨다. 그분의 글처럼 재치와 해학으로 삶의 지혜를 나눠가며 억지라도 웃으며 살아야 하지 않으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날이더라도 구름 위에 떠 있을 눈 부신 해를 상상하며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버틸 일이다. 어렵더라도 작은 즐거움을 찾으면서 이 힘든 순간을 잘 견디시길. 방호복을 입으며 오늘도 소망한다.

엘에이 올림픽 라이온스(Olympic Lions)

엘에이 올림픽 라이온스(Olympic Lions)성민희재미수필가 올림픽 라이온스 클럽에서 2019-2020년 회장 취임식이 있었다. 제45대 회장이라고 한다. 45대라니. 짧은 이민 역사에서 45명의 회장을 배출시킨 단체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 단체가 반백년 동안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도 놀랍고 그 단체를 유지시키는 힘이 바로 봉사(We Service)라는 명제도 놀랍다.회원과 초대 손님 등 약 200명의 인원이 넓은 홀의 테이블을 꽉 채웠다. 초대 회장 부부가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으로 식은 시작되었다. 그 뒤로 전직 회장부부가 긴 세월 어느 지점에서 역할을 했는지 연도수가 적힌 휘장을 두르고 줄줄이 입장한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의 행렬이 한 해 두 해 지나간 역사의 무게를 보여준다.올림픽이라는 단어는 한인 사회에서 가장 가깝고 익숙한 단어다. 올림픽 길을 중심으로 한인 상점이 늘어서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스물다섯 배나 먼 곳, 서울에서 비행기로 열 세 시간을 날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엘에이다. 이 낯선 땅에서 상권을 이루고 우리의 문화를 이어가는 ‘코리아타운’은 그야말로 한국인의 무서운 집념과 땀방울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 작품의 주역이 바로 올림픽 라이온스의 회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올림픽 라이온스는 한인타운을 이루어 한인 경제의 기틀을 세우고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어 준 고마운 이민 선배들, 한인타운에 대한 애착과 사랑의 역사가 누적된 사람들이 많이 모인 단체다.오늘의 이 행사를 위해 멀리 한국에서도 축하객이 왔다. 자매 라이온스인 청주의 상당라이온스와 마산의 무학라이온스 회장단이다. 두고 온 고국을 위한 사랑의 실천을 함께하는 파트너다. 상당·무학라이온스는 올림픽 라이온스에서 제공하는 각막의 통관과 안전한 수송은 물론 저소득 시각장애인을 발굴하여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무료 각막 이식 사업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뿌리가 깊고 열매가 풍성한 사업인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국경을 초월하여 인류를 위한 봉사를 함께하는 세 단체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여러 단체에서 온 축하객과 회장의 축사와 덕담, 새 회장의 취임사 등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나자 축가 순서가 되었다. ‘미 8군에서 활약했던 가수 K 입니다.’ 사회자의 소개 멘트에 맞춰 고개를 꾸벅하며 등장하는 청바지와 하얀 티셔츠, 모자를 쓴 모습이 낯익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반가움이 수군수군 여러 테이블에서 흘러나온다. 1980년대 한인타운에서 가장 유명했던 Y 중국식당. 지금은 비록 주인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앉아 이민 초창기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중국식당의 그 시절 안주인이다.이미자와 나훈아, 하춘하, 김수희, 조용필 등의 가수가 ‘교포 위문공연’이라는 이름으로 들락거리던 그 때. 한인타운 가까이에 있는 윌셔이벨극장에서 공연이 있는 날은 고국의 바람이라도 마시려는 듯 교포들은 하루 일과를 마친 피곤한 몸으로 몇 시간 운전을 하며 몰려들었다. 그런 목마름이 있는 때에 한국에서 활약한 가수가 무대를 설치하고 노래를 불러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곳은 사업가들의 사랑방이었다. K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마음껏 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는 손님이 많았다. 식당 운영을 위해 동부서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그녀에게 어느 날 나쁜 소식이 들려왔다. 화교 출신이었던 남편이 웨이츄레스와 외도를 했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이혼을 하고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 그녀를 우리는 궁금해 했다. 분개한 여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더 이상 그 식당을 이용하지 말자며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 불매 운동은 남자들의 비협조(?)에 별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이제 30여 년이 지난 지금 추억의 재소환처럼 그녀가 나타났다. 여기저기에서 부인들이 다가가 부둥켜안는다. 함께 고생하며 서로를 위로하던 그때의 기억을 주고받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을까. 우리가 디디고 온 세월이 휘장을 두르고 입장하는 전직 회장의 행렬처럼 머릿속에서 줄을 선다. 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그때 만난 그 사람 앞에서는 이민 초년생이 된다. 걸치고 있는 장식을 모두 벗어던지고 벌거숭이가 되어 서로 껴안는다. 옮겨진 삶의 뿌리를 조심조심 내리고 가꾸고 피워 올리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는 두고 온 고국을 도와줄 만큼 성숙했다. K도 올림픽 라이온스도 이민 역사의 자랑스러운 주역임을 자부하고 있을 터. 그들이 엮어갈 또 다른 45년에 축복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