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 식당가 일대 재개발로 상인들 문닫고 속속 떠나

“여기서만 40년 가까이 장사했는데 막상 떠나려니 시원섭섭하네요. 시청 이전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한편으론 잘됐다 싶어요.”20일 오전 11시30분 대구 중구 동인동 시청 인근 철거를 앞둔 한 식당가.철거 또는 X표시가 그려져 있는 식당들 가운데 문을 활짝 열어 둔 한 식당 주인이 옅은 미소를 띠며 이같이 말했다.그는 “내일 마지막 영업을 남겨두고 있다. 시청 공무원들이 많이 찾아줘서 오랜세월 영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이만한 입지를 구하기 전까지는 장사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65년 전통을 자랑하는 복어 요리 전문점도, 각종 매스컴을 타며 맛집으로 소문난 복 매운탕 식당도 여느 때였으면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손님들로 붐비기 시작할 시간이지만 출입문은 자물쇠를 두른 채 굳게 잠겨 있었고, 벽면 곳곳에 철거 공사가 예정돼 있음을 알리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식당 뒤편으로 공업사나 전업사, 모텔, 여관, 미용학원, 한옥 등에도 벽면 마다 경고문과 함께 빨간색으로 철거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이곳에서 영업 중이던 가게 대다수는 이미 지난달 말부터 영업을 종료하고 이전 또는 폐업했다.현재 장사가 진행 중인 가게에는 이달 말까지 영업한다는 알림글이 붙어 있었다.20일 대구시청과 중구청 등에 따르면 이 일대는 민영개발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곳으로, 향후 모두 894세대가 입주하게 된다.현재 개발을 추진 중인 회사에서 소유권 확보 후 대구시청으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았으나, 부지 추가 편입으로 변경 절차가 진행 중인 만큼 철거까지는 6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일대 식당 주인들과 주민 대다수는 민영개발 소식을 반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대구시청 신청사 이전 발표 이후 이렇다 할 계획이 나오지 않은 터였다.한 식당 주인 A씨는 “이 일대 재개발 얘기만 벌써 10년 전부터 나왔다. 시청 이전 소식에 정말 앞이 깜깜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인근에 건물을 갖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기분 좋게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한편 보상금 등의 문제로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9년간 한옥에서 셋방살이를 했다는 한 주민은 ‘이주정착금, 이사비용은 주지도 않고 길바닥으로 내쫓는다며 각성하고 보상하라’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시청 앞에서 10년 넘게 어탕국수 식당을 운영 중인 B씨는 “건물주와 보상금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전까지는 나가지 않을 생각”이라며 “터무니 없는 가격을 제시하며 내쫓다시피 하는건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경북 10월의 독립운동가 권준 ․ 민영숙 선생 강연회 열려

상주박물관은 29일 세미나동에서 ‘2019년 경북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상주의 권준 선생과 그의 며느리 민영숙 선생에 대한 강연회를 개최한다.상주시 이안면 여물리 출생인 권준(1895~1959) 선생과 서울 출생인 민영숙( 1920~1989)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시아버지와 며느리이다.이날 한시준 전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권준·민영숙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에 대해 강연한다.이번 강연회는 권준 선생 출생지인 상주의 상주박물관과 경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이 공동 주관하고, 경북도가 후원한다.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봉숭아꽃 / 민영

봉숭아꽃/ 민 영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물을 들여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마른 풀이 자라는/ 어머니는 지금 용인에 계시단다. - 시선집 『달밤』 (창비, 2004).....................................................오래전 TV퀴즈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한 젊은이가 부모님을 방청석에 모셔놓고 상금을 받으면 부모님 유럽여행 가는데 보태겠노라 호언까지 하고선 첫 단계 OX문제에서 그만 낙마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임성훈 진행자가 몇 번이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는데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X를 눌렀다. 바로 그 문제의 문제는 ‘봉선화와 봉숭아는 같은 꽃인가?’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꽃이라고 대답해버렸던 것이다.비슷한 경우로 반딧불과 개똥벌레, 미루나무와 사시나무도 마찬가진데 그런 문제 앞에서 어물어물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망신이라고 얼굴 붉힐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보다는 손톱에 봉숭아 물들여본 경험이 있는 젊은이가 얼마나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그 옛날 늦여름 살평상에서 흔히 보았던 봉숭아 물들이기에 얽힌 추억과 그리움을 지금 사람들이 느낄 수나 있을까. 나도 오십까지는 아니었어도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봉숭아물을 들일 때 그 옆에 쪼그리고 있으면 새끼손가락에 물을 들여 주시곤 했다.예로부터 봉숭아 물들이기는 병마를 막기 위한 주술적 의미가 컸다고 한다. 여름철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봉숭아물을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손톱과 네 짓이긴 꽃잎이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이 돋아난다는 믿음을 이해할까. 봉숭아물은 매니큐어 같은 화려한 원색이 아니다. 손톱에 뜬 초승달과 은은하게 어우러져 애절한 그리움을 덧씌운다. 손끝마다 핏물이 베어 오래 지워지지 않을 그리움이 시인에겐 어머니였다.그러나 손끝이 닿지 않는 울밑에 선 그리움은 너무나 깊다. 봉숭아 물들이기를 여름방학 숙제로 내는 학교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전철 안에서 조잘거리는 한 무리의 어린 여학생들 손톱에는 모두 볼그족족 물이 들어있었다.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기다림과 아날로그적 그리움을 체험해보라는 의미였을까. 나도 얼마 전 ‘소녀상 안착식’때 ‘봉선화 박사’ 만당 이종갑 시인이 마련한 봉선화 물들이기 이벤트에서 엉겁결에 새끼손가락을 맡겼더니 지금은 제법 볼그족족한 손톱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이종갑 시인은 봉선화 추출물을 소금에 접목시킨 기능성 소금인 ‘봉선화소금’을 제조 판매하는 ‘봉선화식품’의 대표이다. 이 대표는 봉선화가 심겨 있는 곳에 독사와 해충들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이를 신안천일염에 접목하면 건강한 소금이 되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 자신 봉선화와 함께한 열정으로 말기 대장암을 극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제 여름은 가고 추억은 잠들지만 그 추억은 다시 깨어날 것이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붉게 물든 손톱을 보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아들에게 / 민영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아들에게/ 민 영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늘 약골이라 놀림받았다/ 큰 아이한테는 떼밀려 쓰러지고/ 힘센 아이한테는 얻어맞았다// 어떤 아이는 나에게/ 아버지 담배 가져오라 시키고,/ 어떤 아이는 나에게/ 엄마 돈을 훔쳐오라고 시켰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떼밀리고 얻어맞으며 지내야 하나?/ 그래서 나는 약골들을 모았다// 모두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비굴할 수 없다/ 얻어맞고 떼밀리며 살 수는 없다/ 어깨를 겨누고 힘을 모으자// (중략)// 한 마리의 개미는 짓밟히지만/ 열 마리가 모이면 지렁이도 움직이고/ 십만 마리가 덤벼들면 쥐도 잡는다/ 백만 마리가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코끼리도 그 앞에서는 뼈만 남는다/ 떼밀리면 다시 일어나자!/ 맞더라도 울지 말자!/ 약골의 송곳 같은 가시를 보여주자!//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우리나라도 약골이라 불렸다/ 왜놈들은 우리 겨레를 채찍질하고/ 나라 없는 노예라고 업신여겼다.- 시집 『엉겅퀴꽃』 (창비, 1987)............................................세상에는 덩치와 키가 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힘이 센 사람도 있고 힘이 약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힘 좀 세다고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힐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분명 옳지 않은 일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약육강식의 피라미드가 존재한다지만 그들조차도 경우에 따라 나눔과 배려, 자족과 안분의 질서가 지켜진다. 하물며 사람이거늘 ‘약골’이라며 힘센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떼밀려 산데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진정한 강자는 함부로 남을 깔보거나 약자위에 부당하게 군림하려들지 않는다. 근력이 좀 세다고 우쭐하고 오두방정 떠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이겨내는 내공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거니와 다른 이에게 인정받지도 못하므로 결코 강자가 될 수 없다. 어떻게든 남을 이겨보려는 욕심만이 넘치므로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결과만 빚게 된다. 힘만 앞세우는 인간은 참으로 못났다. 그런 못난 자에게 계속 당하기만 한다면 자존감이 형편없이 떨어져 스스로 비굴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얻어맞고 떼밀리며 살 수는 없다’는 각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바라던 세상도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사는 거였다. 1929년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의거도 나라 잃은 학생의 설움이 일순간에 폭발한 것이다. 약골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할 때 약골의 송곳 같은 가시를 보여준 민족의 자존 회복 운동이었다.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힘을 모아야한다. 스크램을 짤 때는 대오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이번 일본의 졸렬한 경제보복에 대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원래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을 하는 것은 문명국가의 기본이다. 그간 정부의 미숙한 대응도 없지 않았고 어제의 원수라도 오늘 손잡는 것이 외교의 철칙이긴 하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일관된 규탄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한 방법이다. 이럴 때 대오에서 벗어나 “왜 공연히 말썽 피우느냐” “달라는 대로 줘버리지 그랬느냐” “잘 좀 달래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하지” 따위의 그들이 바라는 언동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내부의 적이 아니고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