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역겨움 논쟁, 이젠 역겹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정치권에 난데없는 ‘역겨움’ 논쟁이 일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일반인들이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추미애 장관 모습을 보면 너무너무 역겨워하는 게 일반적 현상”이라고 하자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이 맞받아쳤다. “국민의힘의 연이은 ‘막말 대잔치’를 TV 속에서 보시는 것이 국민 여러분께는 더 역겨울 것”이라고 한 것이다.막말이야 정치권에서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다만,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험악해지고 있어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고삐 풀린 미친 말”에 “고삐 풀린 미친 막말”로 대응하고 “지라시 만들 때 버릇”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쯤이면 이런 ‘막말 대잔치’를 봐야만 하는 국민들의 역겨움이 더하지 않겠는가. 역겨운 논쟁에 품격은 실종되고 말았다. 말의 수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말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모언(貌言)과 지언(至言), 고언(苦言), 감언(甘言)이다. ‘모언’은 화려한 반면 실속이 없는 말인 반면 ‘지언’은 속이 꽉 찬 진실된 말이다. ‘고언’은 듣기에는 거북한 직언이지만 약이 되는 말을 의미하며 ‘감언’은 듣기에는 편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을 끝내 병들게 하는 말이라고 했다.지금 감언보다 더 심각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는 바람에 화를 자초하고 있는 실정이다.중국 당나라 시대 때 풍도라는 재상이 있었다. 정치적 혼란기인 당나라 말부터 다섯 왕조 동안 여덟 개의 성을 가진 11명의 임금을 섬기며 벼슬을 할 정도로 처세의 달인이었다. 그의 처세관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로다.’ 입이 화근이니 말을 아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과 뜻이 통한다. 내가 휘두르는 혀 아래의 도끼는 결국은 나에게로 향한다. 말의 품격 저자 이기주는 그의 책에서 ‘말은 나름의 귀소본능을 지닌다’고 했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새겨 보면 무서운 말이다.막말을 막말로 맞받아치다보니 수위는 갈수록 높아만 간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가 2016년 9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현 미국대통령)가 자신들을 무지막지하게 공격하자 했던 말이다.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저급한 말에 대응해서 품위 있게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막말을 주고받는 것은 결국 똑같은 말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말그릇의 저자 김윤나는 “당신의 말에 당신의 그릇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을 하나씩 지니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말그릇의 상태에 따라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한다. ‘말솜씨’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이목을 끌기 위한 말하기를 사용하지만, ‘말그릇이 단단한 사람들’은 소통하는 말하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막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막말로 대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소통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콘서트장의 음악이나 농악의 꽹과리, 북소리는 엄청난 고음이다. 그럼에도 귀를 타고 들어온 소리는 온 몸으로 스며든다. 소리의 파장이 온 몸을 두드려도 즐겁다. 그렇지만 소음은 다르다. 높지는 않더라도 귀를 후벼 파는 불편함만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이야 때론 의도적으로 막말을 내뱉기는 하지만 나의 말이 국민들의 귀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은 왜 외면하나.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고 했다. 서로를 향해 “막말이 역겹다”고만 외쳐댈 뿐 천 명, 만 명 국민들의 역겨움은 왜 살피지 않는가.

좋은 것이 좋다고?

천영애시인 진실스러움이라는 말이 있다. 얼핏 들으면 진실과 비슷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진실이 아닌데 진실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일종의 거짓된 말과 행위를 가리킨다.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처럼 말도 점점 복잡해져서 얼핏 들으면 진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리는 말들이 많다. 거기에다 명료하게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성향 덕분에 이 진실스러움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우리는 자라면서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따지기를 좋아한다는 억울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명확하게 의사를 밝히지 않고 에둘러서 발언하는 외교적 언사처럼 두리뭉실한 말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모든 일상생활에서 자기 의사를 따박따박 밝히는 것은, 앞에서 ‘따박따박’이라는 말을 쓴 것처럼 대부분 부정적으로 읽힌다. 당돌하다라거나, 되바라졌다라는 말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표현하는데 세상 모든 사람이 모두 두리뭉실한 말만 한다면 정확한 대화조차도 불가능해진다.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각자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할 것이고, 따라서 그 말을 두고 설왕설래 또 다른 말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나는 이 진실스러움의 가면을 쓰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말이나 글의 논리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하지만 그 말을 뒷받침할 정확한 사실보다는 자기 생각을 주장만 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나 그들이 타인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할 때는 그 폐해가 심각하다. 사실확인이나 논리도 없이 그냥 자기 주장을 늘어놓는데 역시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유가 부족한 사람들은 그 말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거리에서 현학적인 말로 연설을 하며 대중들을 속였다. 그들의 현란한 말재주에 대중들은 속기 마련이고, 그들이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소피스트들의 현학적인 말을 궤변이라고 하는데, 궤변이란 상대편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을 말하며 이런 자들을 궤변론자라고 하기도 한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가 목표로 하는 지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요즘 애들 말로 하면 ‘답정너’이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올리도 없으며, 자기와 다른 생각도 전혀 받아 들이지 않는다.우리 사회에는 이런 궤변론자들이 의외로 많으며, 귀 막고 눈 막은 답정너들도 많다. 쇠귀에 경 읽기인 셈이다.그런데 이런 자들이 불화를 일으키면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것이 좋다고 입조차 막으려 한다. 좋은 것이 좋다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평소에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공자 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지만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 더 날카로운 날을 세운다. 그때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타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가? 분쟁을 싫어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탓이다. 분쟁을 피하는 사람은 잠깐은 너그러운 태도로 존중을 받을 수 있지만 그 태도가 지속되면 아무도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 사람에게서 나올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평소에 옳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는 사람은 위급한 일이 생기면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옳은 답을 구하려 하기 때문이다.우리 사회에 궤변론자들이 많은 것은 이 좋은 것이 좋다는 태도가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크고 작은 일에 잘잘못을 가린다면 궤변론자들이 대중을 현혹할 일은 줄어든다. 물론 하나하나 전부 옳고 그름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꼭 가려야 하는 일조차 좋은 것이 좋다고 넘어가면 그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썩은 무덤이 돼 스스로를 무너지게 할 것이다.

만개/ 김일연

네 눈길이 닿으면 소스라치는 허공//그때에 못했던 말 지금도 말할 수 없어//참았던 울음보 터져/쏟아내는/꽃송이들「깨끗한 절정」 (2020, 서정시학)김일연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1980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빈들의 집’, ‘서역 가는 길’, ‘달집태우기’, ‘명창’, ‘엎드려 별을 보다’, ‘너와 보낸 봄날’, ‘깨끗한 절정’과 시선집 ‘저 혼자 꽃필 때에’, ‘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 단시조집 ‘꽃벼랑’과 일역시조집 ‘꽃벼랑’등이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시조의 틀을 옹색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틀 안에서 김일연 시인은 무한창공을 열어젖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 윤효는 방만한 언어 운용으로 독자를 잃어버린 요즘 시인들에게 등단 40주년에 새로이 펴낸 신작 시조집 ‘깨끗한 절정’의 일독을 권하고 있고, 문학평론가 권성훈은 고도의 언어, 고원의 차원에서 그의 시조를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김일연 시인의 시업에 대한 정당한 가치 부여라고 생각한다.만개는 꽃이 활짝 피었다는 뜻이다. ‘만개’는 단시조로서 더 보탤 것도 덜 것도 없는 소우주다. 시조가 가 닿을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초장과 중장, 종장 할 것 없이 완벽한 조형미를 이룬다. 이 혼돈의 시대에 왜 시조인가, 하는 점을 극명하게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 이래서 시조가 아름다운 것이다. 좋은 것이다. 길이 사랑하며 함께할 장르인 것이다.‘만개’는 그런 점을 잘 증명해 보이고 있다. 네 눈길이 닿으면 허공이 소스라친다고 한다. 두려움이나 놀라움 따위로 몸을 떠는 듯이 움직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네 눈길 때문에 허공마저도 소스라칠 정도이니 네 눈길은 종국에 우주를 전율케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화자가 하는 말은 초장의 정황 설정과 긴밀히 맞물리고 있다. 그때에 못했던 말 지금도 말할 수 없어, 라는 대목이 너무나 절절해서 그때에 했던 말 지금도 말할 수 있어, 로 한번 고쳐 읽어 보았다. 없고 있고의 경계를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다. 그만큼 중장은 이 시조에서 미학적 의미 형성의 등뼈 구실을 하면서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그때에 못했던 말 지금쯤이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참았던 울음보가 끝내 터져서 무수한 꽃송이들을 쏟아낸 것이다. 어떤 노래, 어떤 시가 이보다 더 간절할 수가 있을까?그는 또 다른 단시조 ‘나무 사람’에서 생태적 인간에 대한 궁구를 보인다.숲을 거닐다보면 어깨에 잎이 돋고//시원한 골바람에 가지 휘늘어지고//머리에 곤줄박이들 포르르 날아 앉는다단순한 서경이 아니다. 시의 화자는 숲을 거닐다보면 어깨에 잎이 돋는다고 조금 능청스럽게 말한다. 물론 나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무가 사람인지 사람이 나무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숲과 사람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어서다. 정말 어깨에 잎이 돋아날 것만 같은 느낌이 절로 든다. 시원한 골바람에 가지가 휘늘어지면서 머리에 곤줄박이들이 포르르 날아와서 앉게 된다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 정경은 그대로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진다. 곤줄박이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림에 흔하게 번식하는 텃새로서 친밀감이 있는 새다. ‘나무 사람’은 시적 인간과 생태적인 인간이 하나인 것을 보여주는 귀한 시편이다.현대인의 복잡 미묘한 생각이나 생활상을 그려내기에는 시조 형식이 너무 비좁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면 단시조 ‘만개’와 ‘나무 사람’이 수록된 김일연 시인의 근작 시조집 ‘깨끗한 절정’의 일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이정환(시조 시인)

몇 년 쯤 젊어지면 만족하시겠어요?

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중년을 넘어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심 좀 더 젊어 보이기를 원하는 듯하다.진료실에서 만나는 이들은 희끗희끗해진 머리, 잔잔한 잔주름이 잡힌 눈가, 내 천(川)으로 골이 져 있는 미간, 절반쯤 감겨 살짝 졸리고 피곤해 보이는 눈과 피부가 처지면서 불룩하게 튀어나온 눈밑, 깊게 골이 진 팔자주름, 처진 볼살 등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한 사람의 얼굴 속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있는 경우가 흔하다.진찰을 하면서 유심히 지켜보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거나 또 늙어 보이는 사람 등 다양한 경우를 보게 되는데, 사실 얼굴 전체 나이가 비슷하게 들어 보이는 경우는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문제는 얼굴 전체에서 눈이면 눈, 볼이면 볼, 유독 한 부위만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무엇인가 좋아졌으면 하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이런 사람들 앞에서 각자의 얼굴 상태를 함께 체크하고 어떤 방법의 수술을 하는 것이 좋은지 설명을 하고 나면, 몇 가지 질문을 받게 된다.그중 가장 많은 듣는 이야기가 “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으니, 자연스럽게 빨리 회복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한 번 수술하고 나면 다음에는 다시 안 해도 되도록 해 주세요”, “한 20년쯤 젊어지게 해 주세요”이다.사람들의 속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고민 끝에 힘든 결심을 하고 병원을 찾아왔으니 한 번 수술하고 나면 그 결과가 ‘늙어 죽을 때까지’이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수술한 것을 알아채면 안 되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 해 달라는 요구도 빠지지 않는다.그러나 인정하기는 싫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1. 지금 하고자 하는 이 수술이 이제껏 늙고 노화된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있지만, 앞으로 늙어갈 것까지 예방해 줄 수는 없다.2. 빨리 회복되고 자연스러운 결과를 보여준다는 시술(보톡스, 필러, 레이저나 실을 이용하는 리프팅)은 그 효과 역시 빨리 없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달을 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술한 티가 안 나면서 효과가 조금 덜해도 좋으니 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 역시 좋은 선택일 수 있다.3. 늙어 죽을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년 정도 유지되는 효과를 보려면 그만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멍이나 부기같은 불편함이 어느 정도 따르는 수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회복기간이 지나고 나서 그 수술 결과가 안정되었을 때, 이것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4. 이렇게 수술을 하고 나면 처음에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특히 윗눈꺼풀의 경우 인상이 변화가 있는 경우가 많다. 10~20년 이상 처져 내려온 눈꺼풀을 단지 1시간 내외의 수술만으로 해결했으니 어떻게 인상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눈썹과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눈썹을 위로 당겨 올려주는 수술을 하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운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도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자연스러워진다. 마치 ‘미운오리새끼가 백조가 되기까지’ 그런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이렇게 상세하게 설명을 하면, 어느 정도 수긍을 하고 수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환자에게 마지막 질문을 한다. “몇 년쯤 젊어졌으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적어도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는, 아니면 더 어려 보이는 얼굴 모습이 되기를 원한다.경험적으로 말하자면, 얼굴의 한 부위만 다른 부위보다 지나치게 더 젊어 보이게 되면 이것 역시 어색하다. 따라서 여기에도 전체적인 밸런스가 중요한 것이다.나이 사십이 넘어서면 자신의 얼굴에는 살아온 인생이 담기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노화로 인해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교정하는 수술은 더 조심스럽고 더 많은 것을 돌아보게 만든다.이제껏 살아온 기본적인 얼굴의 바탕에 변화를 주지 않고 얼굴 전체의 균형을 다시 잡아준다는 생각으로 수술계획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콩코드(Concorde)’ 비운의 여객기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품인 콩코드는 평균 속도가 마하 1.7로 일반 여객기보다 두 배 가량 빨랐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목이 집중됐지만 높은 생산비와 소음에 연료 소모량도 많았다. 탑승 비용이 커지면서 실용성과 경제성에서 비효율적인 면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판단에도 콩코드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오랜 기간 동안의 투자비용이 아까워서이기도 했지만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던 양국 정부의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2000년 폭발 사고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이후인 2003년 운항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손실이 커질 것을 알면서도 투자한 비용이 아까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현상을 ‘콩코드 오류(Concorde Fallacy)’라고 한다. 경제학에선 매몰비용의 오류라고도 하는데 잘못된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욱 깊이 개입해 가는 의사결정 과정을 말한다.이처럼 콩코드 오류는 투자금액이 많을수록 더 쉽게 발생한다. 한때 카메라 필름의 대명사였던 코닥이 대표적이다. 코닥은 과거의 노력과 명성, 그간의 투자비가 아까워 디지털카메라로의 변화를 거부했다. 코닥은 결국 시장에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때론 발 빠른 포기가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대규모 프로젝트 책임자들은 모른다.비슷한 의미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라는 게 있다. 흔히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능력 부족으로 자신의 실수를 알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1999년 코넬대학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 교수가 내놓은 이론이다.둘은 45명의 학부생들에게 20가지의 논리적 사고시험을 치르게 하고 자신의 예상 성적 순위를 제출하도록 했다. 결과는 성적이 낮은 학생은 예상 순위를 높게 생각했고 성적이 좋은 학생은 오히려 스스로를 낮게 평가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이들은 실험을 통해 능력이 없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인다는 가설을 세웠다. 첫째, 자신의 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둘째,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셋째,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생긴 곤경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 넷째, 훈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키운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알아차리고 인정한다.실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실제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우월감으로 이어진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진정한 능력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한다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조차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뛰어난 능력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다. 얕은 지식을 믿고 섣부른 판단을 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면 무서운 현상이다.몇 해 전부터 ‘근자감’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근자감의 특징은 자신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점에서 더닝 크루거 효과와 비슷하다.요즘 우리 사회에 더닝 크루거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넘쳐나고 있다. 정치인들과 일부 임명직 공무원들이 특히 그렇다. 이들을 보면 어떻게 자신의 능력 이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직무는 국민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주관적인 판단에 앞서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고쳐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을 통해 무능은 극복할 수 있다. 다만, 자신이 무능한지 조차 모를 경우엔 답이 없다. 책 한권만 읽은 사람들이 근자감을 바탕으로 전문가인양 설쳐대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찰스 다윈은 “무지가 지식보다 더 큰 확신을 갖게 한다”고 했다. 근거 없는 우월감, 자신감에 무리한 정책을 남발하는 누군가는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보수 아닌 윤석열에 선 긋는 국민의힘

국민의힘이 12일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위에 등극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여권 사람’이라며 선을 그었다.당 소속 인사가 아닌 윤 총장이 보수진영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것에 정치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그러면서 윤 총장이 유력 대권주자로 올라선 것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을 겨냥한 정치공세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추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섰다.이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후보 지지도 1위에 오른 윤 총장에 대해 “기본적으로 정부·여당 사람 아니냐”고 말했다.김 위원장은 비대위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정부·여당 사람으로서 지지도가 제일 높다는 것은 정부·여당 내에서 그 사람이 제일이라는 얘기”라고 했다.그는 “정부·여당 내에서 윤 총장 정도로 확실하게 자기 소신을 갖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높았다고 생각하지, 그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서 지지도가 높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김 위원장은 앞서 회의에서도 “현 정부에 소속된 윤 총장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가 높은 것은 국민이 이 정부에서 누구를 가장 신뢰하느냐는 것을 뜻한다”며 “윤 총장은 법에 따라 총장 임무를 공정하게 수행하겠다고 얘기했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밝혀온 사람인데 지나치게 정치권과 법무부 장관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다 보니 일반 국민이 심판해준 것이 여론조사 결과”라고 주장했다.이어 “각자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하면 거기에 협조적인 자세를 보여야지 그걸 일부러 정치적 감정을 갖고 자꾸 몰아붙이면 결국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당 의원들도 추 장관이 공격할수록 윤 총장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추 장관이 경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종배 정책위의장은 이날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추 장관이 전날 ‘윤 총장을 향해 차라리 사퇴하고 정치를 하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온갖 분란으로 사법권을 조롱 대상으로 전락시킨 법무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고 했다.주호영 원내대표(대구 수성갑)는 회의에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관계가 적인지 동지인지 잘 구별이 안 된다”며 “추 장관이 윤 총장을 건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한 달만 좀 참아주길 부탁한다”고 비꼬았다.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능수 ‘인(仁)을 밟다’

문지방을 밟고 넘는다. 바닥에 경사면이 느껴진다. 움푹 닳아 파인 면과 닳지 않아 불룩한 바닥 면이 시차를 두고 신발에 닿는다. 올려다보니 정문에 이인문(履仁門)이란 현판이 당당하게 걸려있다. 인(仁)을 밟고 있는 내 발끝이 잠시 무거워진다.수봉정(경북기념물 제102호)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자리한 수봉 이규인의 고택이다. 수천 평 면적에 수봉정, 홍덕묘, 전사청, 열락당, 무해산방, 중간 사랑채, 안채, 곳간 등이 정답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지형 따라 둘러쳐진 담장이 이웃과 인정을 나누었던 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준다. 경북문화재로 지정한 후 수리한 공간과 세월 따라 무너진 담벼락에서 지난날 융성했던 가문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불국사 가는 한적한 괘릉마을에서 이인문을 만났다. 고택의 담벼락에 기댄 대문이 성큼 앞으로 나서 나그네를 반긴다. 주위환경과 어우러진 문이 마치 균형을 이룬 한 폭의 그림 같다. 곡선의 처마 끝에 푸른 하늘이 매달려 아롱대고, 쪽문 지붕 위에는 귀면와가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풍상 어린 문턱으로 세월이 사람을 앞질러간다.이인문이라는 이름은 명나라 남경 사대문의 하나에서 따왔다. 건국이념에 따라 인(仁)사상과 관련된 명칭을 궁궐의 전각과 대문 이름에 붙인 것이다. 수봉정의 대문을 이인문이라 부르는 것도, 주인이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이자를 ‘밟을 이(履)’로 해석하여 참된 인을 이루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공자는 설문에서 인자는 사람 人변에 두 이二가 합쳐서 만들어졌다고 가르친다. 인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의미를 지녔다. 공자는 남을 사랑하는 것을 인 실천의 시작으로, 백성과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인 이행의 마지막으로 보았다.수봉 선생은 1859년에 태어나 78세에 돌아가신 경주 일원의 부자였다. 이재에 밝아 당대 만석꾼의 지위에 올랐다. 부를 형성하는 과정에 무리수가 따랐지만, ‘정승같이 쓰라’는 생활철학으로 만년엔 구제사업과 육영사업, 독립운동지원 사업에 흔쾌히 재산을 환원했다. 뿐만 아니라 여생 동안 인의 실천에 온몸을 던졌다.선생의 일생은 서당인 비해당과 약국인 보인재를 보면 알 수 있다. 비해당은 일제강점기에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고, 보인재는 빈곤한 병자에게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수봉정을 쳐다보니 켜켜이 쌓인 선생의 영혼이 말을 걸어온다. 아이들의 꿈을 키우고 가난한 환자들의 건강을 지킬 일이 후인들이 걸어갈 이정표 하나라고.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신돌석 장군이 을미의병을 일으켰을 때는 군자금과 생필품을 공급하였고, 독립의열단원으로 항일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육사에게 군자금과 피난처까지 제공해 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인이란 개인에서 출발하여 사회를 거쳐 나라에까지 확대될 때 제 의미를 갖는다는 사례들이다.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다. 인은 이해이고 양보이고 사랑이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옛날에는 군자라 불렀다. 인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세웠던 때보다 현대사회에서는 사회계층 수만큼 갈등 수도 증가하고 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몰입할수록 배려의 실천은 어려워진다. 인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고 실천할 때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이다.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사회이자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대문은 주인의 마음이며 사상의 표현이다. 남대문인 숭례문이 유교 사상의 표현이라면, 광한루 춘향사당의 단심문은 여인의 절개를 상징한다. 안동 도산서원의 유정문은 자연과 어울리려는 풍경을 뜻하고, 성주군 월항면 북비문은 이석문이 사도세자를 추모하던 정신을 나타내는 곳이었다.이인문이 남긴 가르침은 후손들이 설립한 경주중·고등학교에서 구현된다. 운동장에 서 있는 선생의 동상은 문에서 인격을 본받아서일까,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문으로 다가온다. 귀는 소리로 사람의 진실을 알아내는 ‘지혜의 문’, 눈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의 문’, 혀는 음식에서 건강을 찾아내는 ‘묘미의 문’, 코는 냄새로 자연을 이해하는 ‘신비의 문’처럼 보인다.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 석가는 가르친다. 사람의 도리도 마음에 달렸다. 문을 여는 걸쇠가 내부에 있듯이, 마음을 여는 손잡이는 내 안에 있다. 문을 닫으면 고립되고 열면 자유로워진다. 수봉 선생도 소작인의 아픔을 깨달으면서 마음을 비웠을 것이고 자신도 고립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렸을 것이다.대문의 문지방이 너덜너덜하다. 어짊을 밟아 올곧은 사람 인으로 거듭 태어난 선생의 모습 같다. 욕심의 문을 폐쇄하고 베풂의 문을 열기까지 걸린 세월이 증명하고 있다. 고택과 역사를 같이한 화단의 아름드리 반송에도 인을 닦던 주인의 고통이 옹이가 되어 울퉁불퉁하다. 대문에서 피어난 인의 향기가 방문객의 마음을 정화하는 듯하다.이인문을 나선다. 들판에서 개구리의 합창 소리가 요란하다.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던 아이들이 후손에게 인의 가르침과 실천을 잊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삐걱, 이인문이 열리면서 주인장이 방문객을 전송하는 듯, 등이 후끈해진다. 인과 함께 길을 나서니 마음이 편안하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중앙도서관, 사람책 열람행사 참가자 모집

대구중앙도서관이 오는 20일까지 온·오프라인 사람책 열람행사의 참가자를 모집한다.첫 번째 사람책 열람행사 ‘한 잔의 커피로 소통하는 바리스타’는 오는 20일 중앙도서관에서 운영된다.현대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커피에 대해 바리스타인 ‘이수현’ 사람책이 직접 들려준다.오는 24일 온라인으로 진행될 두 번째 사람책 열람행사 ‘한 편의 영화, 그 속의 명화’에서는 영화 ‘러빙 빈센트’에 등장하는 고흐의 명화에 대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에 대해 나눈다.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도서관 평생교육정보센터나 도서관 홈페이지(http://library.daegu.go.kr/jungang)로 확인하면 된다.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양태순 ‘규곤시의방’

영양 두들 마을에 갔다. 입구에서 보면 앞집 뒤로 뒷집의 지붕이 보이는 지형이다. 골목을 훑고 가는 바람이 가만가만 지나간다. 담장 안은 소란한 것을 멀리한다는 듯 고요가 내려앉은 처마가 푸르게 살아있다. 저절로 발소리를 죽이고 매무시를 단정히 하였다.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에서 해설사를 만났다. 그는 장계향이 반가의 여인으로 시가와 친정을 일으킨 서사, 시·서·화에 빼어난 실력, 자녀 교육에 있어 학식보다 착한 행동의 실천을,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아낌없는 지원을 한 군자라고 열변을 토했다. 한 가지를 잘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방면에 출중한 능력을 갖췄다니 뛰어난 사람임이 분명했다. 유교적 환경이 선한 영향을 주었겠지만 스스로 노력하고 수양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여중군자 장계향의 삶을 들여다본 시간이었다.이어진 전시실에는 여러 가지 음식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다양한 재료로 색과 모양을 내어 정갈한 기품이 있다. 동아누르미, 앵두편법, 빈자법 등 나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것들이 많다. 영양은 내륙 깊숙이 있는 지역인데 해산물과 생선에 대한 요리와 저장법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 시절 양반가에서는 언제나 손님을 맞이하고 접대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구나 싶었다. 요리 체험을 하고 싶었는데 예약을 안 해서 체험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석류탕’에 끌려서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 그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집에 와서 얻어온 음식디미방 책을 펼쳤다. 한글로 적은 책이라는데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부족한 고어 실력으로 띄엄띄엄 읽다가 물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관심 있었던 ‘석류탕’이라도 제대로 알아보자 마음먹고 다시 펼쳤다. 처음 나오는 생치부터 막혔다. 생치가 무엇인지 찾아보는데 몇십 분이 걸려 꿩고기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을 읽으려니 또 막혀서 문맥상 맞춰보고 네이버 검색하느라 한두 줄 읽기가 힘겹다. 기름지렁, 진가루, 노외다, 백자…. 찾을 것이 많아서 한나절은 족히 걸려 겨우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대강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다. 꿩고기나 닭고기, 두부, 버섯, 잣, 채소를 다지고 양념하여 볶고 밀병전을 만들어 다져놓은 속을 넣어 석류 모양으로 빚는다. 끝 문장에는 한 그릇에 서너 낱씩 넣어 술안주로 쓰라고 되어 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다소곳이 앉아 부끄럼타는 소녀 같아서 나를 홀린 ‘석류탕’이 술안주라니 말이다. 해독에 들인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350년 전엔 술맛이 종갓집의 평판에 일정부분을 담당하였으니 술안주인들 소홀히 할 수 있었을까. 정성을 들여 빚은 술과 고운 자태로 눈을 즐겁게 한 술안주로 차린 상은 손님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믿게 했으리라. 손님들은 돌아가서 그 가문이 반듯한 가문이라 소문을 내는데 입을 보탰다고 생각된다.부녀자들이 알아야 할 살림법이란 제목이 썩 어울리는 책이다. 알뜰살뜰 아끼고 부지런을 떠는 것은 좋은 일이다. 거기에 음식으로 가문의 이름이 빛나게 솜씨를 보탠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이 난 집은 인심이 후하다. 또한 예의를 중하게 여기고 사람을 귀히 대한다. 한 집안이 대를 이어가며 좋은 평판을 유지하는 것에 안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음식만 한 것이 없지 싶다.어머니는 음식 잘하기로 소문이 났었다. 종갓집이 아닌데도 일가 친척들은 무시로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때로는 몇 달씩 기거하는 사람도 있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으로 때마다 상에 올릴 찬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흠 잡히지 않은 상차림을 하려고 머리를 짜냈다. 생선은 꾸덕하게 말려 놓았다가 쓰고, 각종 채소는 볶고 찌고 무쳐서 찬을 만들었다. 봄에 뜯은 나물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일 년에 한 번은 마을 어른들을 대접하였다. 그날은 할아버지 생신이다. 며칠 전부터 막걸리 빚고, 메밀묵과 두부 만들고, 식해 만드느라 손을 재게 움직였다. 마침 12월이라 빠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치마에 불이 붙은 듯 종종거리느라 정작 본인은 밥 먹는 것도 잊었다. 맛있게 먹은 사람들은 다음날 음식 칭찬 수다방을 열었다.나는 어머니와 달리 음식 만드는 데 애정이 없었다. 그저 한 끼 때우는데 급급한 수준이다. 젊어서는 영양제 같은 알약으로 끼니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것이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솜씨가 없는 엄마 만나서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지금은 어머니의 음식을 배워 두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선 가난한 마음에게 위로를 전할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잘 만들었던 콩을 갈아서 만든 강정, 정과, 막걸리, 조청, 호박버무리가 그립다. 특히 메밀묵 쑤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어머니는 이미 강을 건너 나의 부름을 듣지 못한다.나는 아이들에게 음식 유산을 물려주고 싶다. 내가 없을 때 떠올리기만 해도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딱 한 가지면 족한데 나에게는 없다. 요리 프로그램을 기웃거리지만 무릎을 칠 만한 것이 없다. 아이들이 살면서 혓바닥을 감싸는 그리움 한 사발로 배를 든든히 채워 거뜬히 일어설 수 있는 음식이. 자꾸만 엄마의 손맛이 삼삼하다. 규곤시의방에서 그럴듯한 힌트를 얻을 수 있도록 열독해야겠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서예원 ‘석비’

구름이 지구를 수백만 번 감고 돌았으리라,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사계절은 또 몇 번이나 오고 갔을지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감각이 없어지고 주변의 풍광이 생경할 정도로 바뀌어갈 즈음, 낯선 두려움에 얼굴이 사색이 되어도 꿋꿋이 돌 위의 글씨를 붙잡고 버텨온 것이었다.깊은 땅에 거꾸로 처박혀 있어서 숨이 안 쉬어질 때면, 차분히 호흡을 고르고 예전 기억을 떠올렸으리라. 본인의 몸통에 아로새겨진 그때의 기록을 품고, 다시 빛 볼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1988년 추운 겨울에서야 땅속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니, 잘 견뎌냈다고 혼잣말을 내뱉어보았다.처음 만난 세상은 참으로 이질적인 시공간이었을 터. 기뻐할 새도 없이 포클레인으로 온몸이 들려져 길옆 개울에 무참히 버려지는 수모를 겪었다고 했다. 그러나 영겁의 세월 동안 돌 몸통에 끝까지 붙들어두어 잃지 않았던 글씨들 덕분에, 마침내 그 가치를 증명해 내기에 이르렀다.석비는 모든 수고로움을 의연히 견뎌내어, 새로운 시대에 빛을 보았다. 당대에는 이름 없는 비석이었을지 모르나, 현대에는 과거 신라의 역사와 발자취를 좇는 사람들에게 ‘울진 봉평리 신라비’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았다. 신라 법흥왕 시대에서 21세기 대한민국으로, 그렇게 새 삶을 살게 되었다. 새겨진 기록은 단순하지만 그 기록이 말해주는 당시 시대상 덕분에, 이 석비는 국보 제242호로 지정되었다.비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신라시대 비석들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그중에는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세운 비석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진흥왕이나 법흥왕처럼 왕으로 태어나 특별한 업적을 세우며 살진 않았을 테니.울진 봉평리 신라비도 그 관심의 일부였다. 석비 발견 계기를 읽고 그 보존도 단순하게 되어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는데, 방문해보니 생각보다 큰 규모의 전시관이 있었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안에는 고비(告碑)와 함께, 울진 봉평리 신라비 발견을 특종으로 다룬 옛 신문기사도 전시되어 있었다. 획기적 사료라는 헤드라인에서 당시 사람들의 흥분과 떨림이 전해져왔다.신라 법흥왕 때 울진 지역 주민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이들에 대한 처리와 형벌에 대해 회의하고 형벌을 집행한 내용이다. 현대로 치면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해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나는 석비를 통해 그 시대의 그 삶을 본다. 그 시절에도 제도를 갖추고 법을 집행하면서 온전한 나라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본다. 다시 돌 위에 간신히 남아 매달려 있는 글자들을 보았다. 바람과 물과 시간이 앗아가려 한 과거의 삶이 명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니, 새삼스럽게 엄숙해졌다.전시관 안 중앙에 보존되어 서 있는 그 위용을 한참 바라보았다. 발견된 날짜를 생일로 하면, 나보다 10개월 늦게 태어난 석비였다. 4면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땅 위에 제힘으로 온전히 발붙이고 서 있기 힘들어 보이긴 했으나, 중심은 잘 유지하고 있었다.감탄이 나왔다. 종이는 찢어지고 물에 젖고 불에 타서 영속성이 떨어진다. 돌은 다르다. 엄청난 충격으로 산산조각 나지 않는 이상, 제 모양을 유지한다. 오죽하면 바람도, 물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천천히 돌의 표면에 흠집만을 내지 않던가.천년의 세월을 이겨낸 비석도, 문명도, 참으로 위대하다. 천 년 전의 사람들이 글자라는 도구로 천 년 후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까닭이다.‘우리가 살던 세상은 이런 모습이었어. 거기는 어때?’바람은 불고, 물은 흘러갔다. 사람은 생과 사를 반복하고, 시대는 변해왔다. 높이 204㎝의 공간에 거벌모라의 숨결을 그대로 담은 채, 비석은 그 오랜 생을 달려온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았음을.우리 사이에는 긴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도 바로 앞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건, 1천500년을 살아낸 이 비석 덕분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놓인 결과이며, 결국 역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신라인들도 우리보다 조금 일찍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 뿐. 결국 우리는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고 삶과 애환을 공유하는 같은‘인간’임을, 이 석비(石碑)를 통해 안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달 7일부터 시작한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26일 끝났다. 문재인 정권 중간평가라는 의미는 결국, 역시나 여야의 정쟁의 장으로 번지면서 빛이 바랬다. 국감 기간 동안 정책 대안 마련은커녕 호통과 막말로 정치 공방만 벌였다. 그 공방 속에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민감한 사안은 묻혀버렸다.이번 국감으로 문뜩 떠오른 한자어가 있다. 견강부회(牽强附會)와 후안무치(厚顔無恥)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비유하는 한자어가 견강부회이다. 후안무치는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뻔뻔스러워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은 말한다.똑같은 이슈를 두고, 똑같은 국감증인의 말을 두고 여야가 자기들 입장에 맞게 견강부회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부끄러움 없이 뻔뻔하다보니 갈수록 얼굴은 두꺼워지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이 감사 도중에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고성에 삿대질은 물론이고 의사봉까지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도 서로 사과하기는커녕 유감표명도 없었다. 낯 두꺼운 일은 그들이 했는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네가지 마음씨로 설명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이 중 수오지심은 자신이 착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고 남이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사실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점 중 하나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은 사람만이 가진 감정이다. 남우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걸 국회가 나서서 보여줘서 안타까울 뿐이다. 욕설에 막말에 후안무치한건 그들인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나.얼마 전에 나온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이주연 저)라는 책에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회와 공동체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지켜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회를 지탱해온 염치마저 없어진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갈수록 살만한 세상이 돼가고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서일 게다.‘염치 불구하고’라고 흔히 쓰는 말은 ‘염치 불고(不顧)하고’의 잘못된 표현이다. 불고(不顧)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이다. 돌아보면 염치 불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이젠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공식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염치 불고하고 하는 말이다. 먼저 어떤 의혹이 제기되면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다. 의혹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면 “재판에서 밝히겠다”고 하고, 법원 판결이 난 후에는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한다. 대법원의 판단 후에도 할 말은 있다.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한다.하긴 염치없는 정도를 넘어 후안무치한 이들에게 맹자의 수오지심을 이야기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고 빈대도 콧등이 있고 미꾸라지도 백통이 있다고 했다. 아주 작은 벼룩에게도 양심은 있다는데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부분 지도층 인사들이다. 이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게 염치고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후안무치한 이들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건 오히려 일반 국민들이다. 이젠 국민들도 부끄러움에 대해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수오지심은 붙들고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일수록 부끄러움을 모른다. 권력, 재물, 명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수오지심은 없어진다. 이들에게 맹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 자신의 착하지 않고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갈수록 낯짝 두꺼워지고 있는, 지도층이라고 폼 잡는 그들에게 물어본다. 너는 사람인가. 그러면서 돌아본다. 나는 어떤가.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통일을 실천하는 사람들 대구본부 통일세미나

통일을 실천하는 사람들 대구본부(대표 신경호)가 20일 오후 2시 대구 그랜드 호텔에서 대구지역 시민단체 대표와 통일천사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미중 패권 전쟁과 한반도 통일’을 주제로 시민참여 통일 세미나를 했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깊어가는 이 가을에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인생은 무언가, 또는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엮어지는 드라마를 닮았다. 그때 그 사람을 또는 그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되어 있을 까닭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와 같은 만남을 그저 운명이라고만 치부해 버리고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병주의 ‘허망과 진실’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1979년 가을 나는 병상에서 상, 하 두 권을 단숨에 독파했고, 이후 몇 차례 반복해서 읽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책을 꺼내 밑줄 친 부분들을 다시 읽어 본다. “허망 그 자체가 진실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허망의 프리즘을 통하지 않곤 어떤 진실도 붙잡을 수가 없다. 허망하기에 진실이 아름답다는 것은 결코 역설이 아니다. 허망을 배운 사람은 이미 지옥을 보아버린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 허망을 뚫고 찾아낸 진실만이 지옥을 견디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란 인식이 굳어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이런 구절을 보면 호흡이 빨라지고 알 수 없는 힘이 꿈틀거린다.니체 편에 줄 친 부분도 다시 읽어본다. “사람은 탁한 강물이다. 이 탁한 강물은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받아들이려면 바다가 되어야 한다.” 이병주가 뽑아낸 차라투스트라의 이 말을 몇 날 며칠 되씹고 곱씹기도 했다. “바다가 된 사람이면 초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너무 좋아 홀로 감포 앞바다를 찾아갔던 일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는 평생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어떤 사람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고동락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어떤 사람은 잠시 만나 공원의 벤치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나눈 사이밖에 안 되지만 생각할수록 가슴 저리고 간절히 보고 싶다. 위대한 열정, 위대한 정신의 만남은 인류사와 문화예술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독일 헌법의 도시 바이마르에는 위대한 예술가의 우정도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프리드리히 실러는 1788년 어느 부인의 집에서 처음 대화를 나눴다. 이 만남을 통해 괴테는 궁핍한 생활을 하던 실러에게 예나 대학 역사학 교수 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그후 어느 학술대회에서 만나 우연히 함께 길을 걸으며 장시간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의 학문적 공통점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자연과학의 세분된 연구 방법에 반대하고 통합적인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자연을 어떻게 재현할지에 관한 방법론은 서로 달랐다. 괴테는 현실적인 체험에 근거해 자연을 재현할 수 있다고 봤다. 실러는 이념에 근거해 자연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두 사람은 서신과 방문 대화를 통해 서로 격려하며 문학적 공동작업을 진행했다. 두 사람의 만남 이후 독일 고전주의는 무르익게 된다. 1799년 실러는 예나를 떠나 괴테가 있는 바이마르로 옮겼고, 이때부터 찬란한 ‘바이마르 황금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두 사람은 독일예술의 중심인 바이마르 극장을 공동 운영하면서 작품 선정과 각색 논의 등을 같이 진행했다. ‘빌헬름 텔’은 폭정에 저항한 스위스의 독립운동 이야기인데 괴테의 권유로 실러가 썼다. “진정으로 강한 자는 혼자일 때 가장 강합니다.” 이 구절은 아직도 내 머리와 가슴에 온전히 남아 삶의 고비마다 내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매게 한다. 1805년 실러가 45세로 세상을 뜨자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과 생산적인 협력은 끝나고 독일 고전주의도 종언을 고하게 된다. 현재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는 괴테와 실러가 마주 손을 잡고 있는 동상이 있다. 어떤 사람이 괴테에게 "당신과 실러 중에 누가 더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더 위대한 어느 한 사람보다는 누가 더 위대한지 모르는 두 사람이 있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괴테가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인생은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엮어지는 드라마’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 단테와 베아트리체 같은 운명적인 만남은 어렵다. 그러나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면서도 사람보다 더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음 먹고 손을 뻗기만 하면 도처에 좋은 책이 있다. 책은 행복감을 높여주고 술과 담배를 줄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책을 잡자. 좋은 책은 이 풍진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삶의 등대이기 때문이다.

구미시 올해의 ‘자랑스런 구미사람 대상’ 후보자 접수

구미시가 올해의 자랑스런 구미사람 대상 후보자를 모집한다.올해로 25회째를 맞는 자랑스런 구미사람 대상은 살기좋은 구미건설과 향토문화 발전에 뚜렷한 공적을 쌓은 자랑스런 구미인을 발굴해 시상하는 행사이다.후보자 접수기간은 12일부터 11월2일까지이다.자격 요건은 추천일 현재 구미시민으로 3년 이상 거주한 사람이거나 구미시가 등록기준지(본적)인 출향인사이다.추천대상은 지역발전을 위한 활동경력이 10년 이상으로 공적이 현저하고 전체 시민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나 세계대회 입상 등 대외적으로 구미시의 명예를 현저히 높인 사람이다.추천서는 구미시청 홈페이지 ‘고시/공고’ 게시판의 공고문에서 다운받아 구미시청 총무과(054-480-6754)로 우편이나 방문 접수하면 된다.수상자는 추천서 접수 후 수상자격, 관련서류 검토 등을 거쳐 12월 중 시상심의위원회에서 3명 이내로 선정하며 시상식은 연말에 개최할 예정이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어른이 필요한 때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어른이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다. 이는 뒤집어보면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단순히 나이만 들었다고 어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란 뭔가. 국어사전에선 ‘1)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결혼을 한 사람’으로 정의해두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른이라고 이야기할 경우엔 단순하게 성인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나이, 지위, 신분이 높다고 해서 어른이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른은 자기가 한 말, 자기가 하는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어른이라면 적어도 인생 선배로서 다음 세대들을 보다듬고 품어주고 때론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야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을 수 있을 터다. 어른의 정의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의 교육학자이자 사상가인 우치다 타츠루가 이야기하는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명확한 방법이다. 그가 쓴 책 ‘어른 없는 사회’(김경옥 옮김, 민들레)에선 다음과 같이 ‘어른’과 ‘아이’를 나눈다. “길에 떨어져 있는 빈 깡통을 줍는 일은 누구의 의무도 아닙니다. 자기가 버린 게 아니니까요. 버린 녀석이 주워야지 지나가는 사람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 일은 모두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이’입니다. 어른은 다릅니다. ‘어른’이란 그럴 때 선뜻 깡통을 주워서는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자기 집으로 가져가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품 수거일에 내다 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른입니다. 아이는 시스템 보전이 모두의 일이므로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시스템 보전은 모두의 일이므로 곧 자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엔 어른이 없다”고 한다. 그는 모두가 어른일 필요는 없지만 다섯 명 중에 한 명 정도만 그런 어른이면 사회제도는 어떻게든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지금 일본은 그 ‘아이’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사회라는 것이다. 어른 비율은 5%에 불과해서 일본사회의 시스템이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한국사회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국사회를 잠시 돌아보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경제 선진국이라는 위상은 하강 국면의 벼랑 끝에 서있다. 거기에다 장기화 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실물경제마저 직격탄을 맞고 있지 않은가. 정치판에서는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투쟁만 보인다. 보수와 진보 극단의 양 진영으로 갈라서서 이념논쟁만 벌이고 있다. 자기들이 누리는 것이 원칙을 저버린 특혜인지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특권의식에 젖어있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을 과연 어른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갈수록 커지는 불평등과 격차, 늘어나는 자살률, 줄어드는 출산율 등에 큰 그림을 그리는 어른이 없다. 삶에 찌들고 좌절감에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줄 어른이 없다. 물론 말 한마디 했다간 상대 진영으로부터 여론몰이에 뭇매를 당할 수도 있는 터라 몸을 사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지만 침묵으로 뒷짐만 지고 모른 체 한다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100세 시대가 눈앞이다. 은퇴 후 어른으로 살아가야할 날들이 확 늘어났다. 자칫 권위적이거나 나의 생각 또는 나의 사고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만 한다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꼰대가 아닌 어른 소리를 들으려면 해야 할 말은 목소리 높여 할 줄 알아야 한다. 꼰대가 아닌 어른이라면 ‘인플루언서’가 되어 이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영광만 되뇌고 있으면 어른이 되지 못하고 꼰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두 분의 어른이신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그리운 것이다. 사회가 어렵고 갈등이 심해질수록 세대 간의 공감이 중요해진다. 그 역할은 어른이 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어른이 필요하다. 할 말을 제대로 하는 묵직한 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