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스페이스 루모스, 기획 초대전 윤길중 ‘오브제_소멸과 재생’

윤길중 작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는 기획 초대전 윤길중 ‘오브제_소멸과 재생’ 전시를 다음달 14일까지 진행한다.지난 4월 강원도에서 발생한 화재는 곳곳으로 번지며 깊고 아린 생채기를 냈다. 윤길중 작가는 화재가 난 뒤 일주일 후 그곳을 찾았다. 갑작스러 재해로 수명을 다한 ‘소멸’의 흔적들이 그를 부르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봄이었지만 긴 겨울처럼, 회색빛으로 얼어붙어 있었다.윤길중의 작업은 지난 오랜 시간동안 사물에 또 다른 생명을 부여하는 되살리기 ‘재생’에 있었다. 철거를 앞둔 집들과 버려진 낡은 집기들, 외딴 섬에서 쓰러진 채 살아가는 나무의 삶처럼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거나 중심에서 밀려나 방치돼 있는 것들은 그의 프레임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이번 전시에서 윤길중은 ‘불탄 오브제’와 ‘불태운 오브제’를 선보인다. 해외에서도 호평 받는 그의 작업 ‘보고(see) 보았다(saw)’에 등장하는 불태운 오브제들은 이미지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함으로써, 사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재생’을 위한 노력을 했다. ‘불행한 오브제’에 등장하는 불탄 오브제들은 갑작스런 재해로 생명을 다한 사물들, 그 어떤 노력으로도 되살릴 수 없는 ‘소멸’의 안타까움이 스며들어 있다.작가는 “우리 기억 속에 고정된 이미지의 사물을 보면 호기심이 작동하지 않는다”며 “사물이 놓인 배경과 구도와 프레임에 잠시 눈길을 주기는 하겠지만 그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물에 대해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사물에 변형을 줘 사진을 찍고, 관람자의 시선을 조금 더 붙잡아두기 위해 프린트된 이미지를 해체해 재조합 해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봉산문화회관 정진경 작가의 개인전 ‘다른시선-외면하지 않기’

정진경 작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에서는 다음달 26일까지 정진경 작가의 개인전 ‘다른시선-외면하지 않기’ 전시를 진행한다.봉산문화회관 기획 ‘유리상자-아티스타2019’ 전시공모선정 작가전은 동시대 예술의 낯선 태도에 주목한다. 올해 전시공모의 주제이기도 한 ‘헬로우! 1947’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비롯해 도시와 공공성을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 혹은 역할들을 지지한다.이번 전시는 정진경 작가가 ‘일상의 사물들을 바라보는 어느 시선이 어떤 메시지로 공감될 수 있을까’에 관한 물음과 해석이 담겨 있다. 또 지금, 여기의 일상 사물에 깃든 시대성과 내적 응답을 유리 공간에 담았다. 그리고 자신이 선호하는 예술적 설계를 떠올리며 사물을 드로잉하는 작가의 신체행위가 시공간적 상상과 공감의 흔적이 되게 하려는 설정이다.이번 전시는 자신의 드로잉 행위를 구조적으로 확장하는 지속적인 설계의 어느 과정을 사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상자 공간에 담으려는 작가의 시도로부터 시작된다.작가는 유리상자 내부공간에 대량 소비문화의 시대성을 기록하듯 일회용 생활용품들을 복제한 사물들을 매달았다. 그것은 페트병, 접시, 컵, 의자, 슬리퍼 등 쓰다버린 사물들을 흰색 명주실로 캐스팅해 실제 그리고 만든 입체 장치물이다. 이 사물들이 있는 전시공간을 둘러싼 유리 외벽에는 컬러 비닐시트로 단순하고 화려하게 디자인한 캔, 우산, 빨대, 플라스틱통 등의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다.작가는 편리하고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도록 만든 일회용 플라스틱 사물들에 대해 외면하기가 아니라 오히려 정감을 느끼며 그 사물의 조형미에도 매료돼 타인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로보는 자신을 발견했다.정진경 작2차원의 평면 회화를 해오던 작가는 그때부터 일회용 사물을 통째로 또는 그 일부를 캐스팅하는 행위를 지속했다. 더군다나 하얀 명주실로 그 사물들을 한 가닥씩 쌓아서 그것들의 형태를 다시 구축하는 행위는 단순 재현이 아니라 별것 아닌 것에서 특별한 가치를 찾아내는 일종의 ‘발굴’처럼 보이기도 한다.작가는 자신의 ‘다른 시선’을 구조적으로 시각화하기 위해 ‘일반적인 시각’을 화려하고 세련된 색상의 컬러시트와 디자인으로 은유했다. 눈에 띄도록 디자인된 ‘일반적인 시선’의 사이로 본질을 지향하는 ‘다른 시선’의 상징적 사물들이 보이도록 설계하면서, 4면의 여러 방향에서 외부 디자인과 내부의 사물, 건너편의 유리 벽 이미지, 그 뒤의 풍경 등 몇 개의 레이어가 겹쳐 보이며 관람자만의 다른 시선을 자각하도록 설정했다.정진경 작가는 홍익대 판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현재 대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범어아트스트리트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의: 053-661-3500.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세상읽기-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윤일현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손님이 찾아왔다.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산책하다가 들렀다고 했다.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기원전 50년 무렵에 쓰여서 르네상스의 새벽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루크레티우스의 장시(長詩)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였다. “좋은 책 읽으시네요.” “봄이라서 이 책을 잡아봤습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도 이 책 베누스(비너스) 여신에 대한 찬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헬레니즘 시대의 주요 철학 사조였던 에피쿠로스학파의 물리학, 우주론, 원자론, 윤리학을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다. 이 책은 스티븐 그린블랫 교수의 말처럼 다양한 주제가 한데 얽혀 있다. 강렬한 서정적 아름다움의 순간, 종교에 관한 철학적 명상, 쾌락, 죽음, 물질계, 인간 사회의 발전, 성의 위험과 즐거움, 질병의 본질 등에 관한 복잡한 이론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포조 브라촐리니가 1417년 독일 한 수도원의 먼지 덮인 서가에서 이 책 필사본을 발견했다. 그는 탁월한 인문주의자이면서 교황의 비서, 고대 유물 수집가, 라틴어 번역가 등으로 활동했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책 사냥꾼이었다. 그는 이 책을 필사하여 세상에 유포했다. 마키아벨리도 이 책을 필사했다. 토머스 모어, 몽테뉴, 갈릴레오, 프로이트, 다윈, 토머스 제퍼슨 같은 사람들에게서도 이 책의 자취가 발견된다.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그린블랫 교수는 역작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에서 이 책의 발견으로 교회와 봉건적 지배에 의해 자유를 빼앗기고 착취당했던 ‘암흑’의 중세가 마감되고 ‘재생’의 르네상스가 태동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린블랫 교수의 설명과 해설을 참고하며 이 책을 읽어보면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그 내용은 정말 참신하고 새롭고 놀랍다. 주요 대목을 몇 군데를 인용해 본다.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로 만들어진다. 사물은 이런 씨앗들로부터 형성되고 해체의 과정을 거쳐 다시 씨앗 상태로 돌아간다. 이런 씨앗들은 불변하며 분해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 수가 무한하다. 이들은 끊임없이 운동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모양을 이루며 다시 갈라지고 결합하기를 반복한다. 사물은 일탈의 결과로 나타난다. 일탈은 자유의지의 원천이다. 모든 체계화된 종교는 미신적인 망상이다. 이 망상의 근원은 깊게 뿌리박힌 인간의 염원과 공포, 그리고 무지에 있다. 인간은 소유하고 싶은 권력과 아름다움, 완벽한 안전에 대한 이미지를 투영하여 그에 따라 신들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꿈에 노예가 되고 만다. 종교는 일관되게 잔인하다. 종교는 항상 희망과 사랑을 약속하지만 그 깊은 내부에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핵심은 잔인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응징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어김없이 추종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 천사니, 악마니, 귀신이니 하는 것들은 없다. 이런 종류의 비물질적인 영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최고 목표는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이다. 인생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자신과 벗의 행복이라는 이 목적을 이루려는 것 이상으로 더 고귀한 윤리적 목적은 없다. 국가에의 충성, 신 또는 지배자의 영광, 자기희생을 통한 고된 덕의 수행 같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여타의 주장은 모두 부차적인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착각한 것이거나 기만인 것이다.”루크레티우스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 신들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내세에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해소해 주려고 노력했다. 주요 내용이 기독교의 중심 가치를 부정하는 에피쿠로스주의를 대변했기 때문에 교황은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나는 봄이 왔다고 고전을 읽는다는 사람의 눈빛을 떠올리며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와 ‘1417년 근대의 탄생’을 다시 읽었다. 종교적인 신념과는 관계없이 현자들의 탐구욕과 학구열을 느끼고 싶었다. 어수선한 혼돈의 시대에 근본 대책도 없이 개념 없는 발언을 일삼으며 저잣거리를 헤매고 다닐 수는 없다. 근본과 근원, 원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많아야 그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축적되고, 희망이 봄날의 새싹처럼 돋아날 것이다.

갤러리신리 키시오 스가 전 오는 31일까지

키시오 스가 ‘Law of Parallel Existence’갤러리신라는 오는 31일까지 키시오 스가 전시를 진행한다.키시오 스가(Kishio Suga, 1944~ )는 1970년대 일본 모노하(物派, Mono-ha)운동을 이끌었던 중심작가로 세계 현대미술계의 주요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944년 일본 모리오카에서 태어나 1968년 타마예술대학 회화대학원을 졸업하고 1967년 학생일 당시 일본신인화가의 등용문이었던 11회 세루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196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키시오 스가는 종래의 미술에 대한 사고와 작품 제작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거의 가공하지 않은 물(자연물과 인공물)을 종합해 공간에 배치했다. 사물과 사물, 사물과 장소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나아가 그것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념적 시각에 대한 질문을 추가해왔다.키시오 스가 ‘Latent Composition’당시 이와 같은 작가들을 모노하라 총칭했다. 키시오 스가는 모노하의 중심적인 존재로서 현재까지 자신의 방법과 사고방식을 엄수하면서 일관되게 작업을 전개해온 유일한 작가다.그는 서정성을 배제한 시멘트, 모래, 목재, 톱밥, 돌, 판자 등 일상적 사물이나 자연물과 인공물 간의 조합과 배치를 통해 ‘그것’과 ‘이것’에 의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논리적인 증거를 균형 있게 배치하고 ‘물(物)과 물(物)’ ‘물(物)과 장소’의 관계성을 신선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성은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가 되고 있다.1990년대 들어서 스가는 더 나아가 ‘사물’과 ‘인간의 지각행위’마저 통합해 ‘주위성’ ‘장소의 의식화’를 지향하고 있다. 사물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의 문제에 대해 과감하게 몰두하고 있다.인공물과 자연물을 조합해 쌍방을 두드러지게 해 관람자에게 어떤 장소 전체를 의식시키는 그의 작업은 대게 눈치 채지 못하는 공간에 잠재된 풍요로운 표정과 의미를 자유자재로 보여준다. 더구나 사물의 설치 방식은 완만하여 애매한 경계의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이번 전시에서는 199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문의: 053-422-1628.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